영화 <베를린>│뼈와 살이 으스러지는 곳
“빨갱이 잡겠다”는 열혈 요원이 “조직의 짐”이 될 정도로 바뀐 시대는 국정원에게도, 북한 대사관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북한에 새 지도자가 등장한 뒤로 혼란스럽기는 북이나 남이나 마찬가지. 북에서는 군부 권력 최상층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고, 외화벌이의 일등공신이었던 기존의 대사관 인력들은 본국의 위협을 감지한다. 남에서도 북의 수상한 낌새를 눈치 채고, 김정은의 권력 승계 이후 행방이 묘연해진 김정일의 비밀 계좌를 알아내기 위해 혈안이다. 이 모든 것이 벌어지는 베를린에 북한의 특수요원 표종성(하정우)과 그의 아내 련정희(전지현), 국정원 요원 정진수(한석규)가 있다.

관람지수 10.

류승완 감독의 업그레이된 장기 – 8점

영화 <베를린>│뼈와 살이 으스러지는 곳
<베를린>의 세 사람은 모두 자신이 하는 일의 지배를 받고 있다. 대사의 명령에 따라 “더러운 일”을 해야 하는 통역관 련정희의 내면은 허물어지는 중이며 공화국 최고의 영웅 표종성은 훈련받은 직분에 따라 아내조차 완전히 믿지 못한다. 정진수 또한 오랜 시간을 함께 한 동료의 죽음에 슬퍼할 새 없이 직업적인 본능을 따른다. 칼날 끝에서 위태롭게 유지되던 이들의 삶은 동명수(류승범)의 등장으로 헝클어진다. 북한 군부에서 최고 권력을 가진 동종호의 아들인 그는 개인적인 욕망으로 베를린을 재편하려하고, 새로운 판은 비극을 예고한다. 그 아수라장을 설계한 영화의 규모는 방대하다. 반제국주의 아랍연맹, 러시아 무기 브로커, 모사드, CIA, 북한, 국정원까지 개입된 국제적인 첩보전의 스케일은 베를린이라는 공간의 외연을 확장시킨다. 그러나 류승완 감독은 비밀 계좌, 암살, 망명 등 첩보를 엮는 긴박감이나 규모의 역학을 운용하는 것보다 몸과 몸이 부딪치는 관계로 좁혀 들어갈 때 더 실감을 가진다. 손에 잡히는 것은 통조림이든 전화선이든 모조리 무기가 되는 표종성은 제이슨 본에 비견될 만하고, 그와의 격투에서 척추가 부러지는 상대의 부상이 엄살로 느껴지질 않을 만큼 액션의 파괴력이 상당하다. 뼈와 살이 으스러지는 액션이 가지는 통감은 유럽을 누빈 스케일보다 더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1월 29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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