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IMFF 2012│조성우 음악감독 “일주일짜리 영화 음악은 의미가 없다”
JIMFF 2012│조성우 음악감독 “일주일짜리 영화 음악은 의미가 없다”
올해 제천영화음악상 수상자는 제 2회부터 6회까지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의 집행위원장을 역임한 조성우 음악감독이다. 영화 이후 중국, 일본 등 아시아를 무대로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고 있는 그를 제천에서 만났다. 조성우 음악감독은 여전히 영화제에 대한 뜨거운 애정을 감추지 않으며 격려와 걱정을 건넸다.

수상을 축하한다. 누구보다 영화제에 애정이 깊으신 분이시라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조성우: 국내에선 작품이 아니라 개인에게 공로상처럼 음악상을 주는 게 이것 밖에 없고 앞서 훌륭하신 선배님들이 이 상을 받으셨는데 그 뒤를 잇는 거 같아 기분이 좋다.

최근 어떻게 지내고 있나.
조성우: 아직 개봉하진 않았는데 허진호 감독이 연출하고 장동건, 장쯔이, 장백지가 출연하는 중국영화 의 음악을 지난주에 마무리했다. 예전엔 여러 일을 많이 했는데 요즘엔 이 작품과 학교 강의에 전념했다. 내년부터 작품 활동을 더 하려고 한다.

해외에서의 작업은 기존 작품과 차이가 있을 것 같다.
조성우: 우리 음악을 중국 시장에 알린다는 부담감도 좀 있어서 다른 때보다 긴장을 많이 했다. 나라마다 산업적인 환경도 다르고 민족성, 문화도 다르기 때문에 작업 환경이 조금씩 다르고 중요시해야 할 측면도 다르다. 중국의 경우에는 영화 시장이 워낙 크다. 한 작품의 제작비가 300억, 400억 규모니까 음악도 규모가 큰 음악을 선호한다. 일본은 아티스트를 우대하는 나라다 보니 그만큼 창의력을 중요시한다. 그래서 일본은 예술적인 요구사항이 많고 중국은 규모에 대한 주문이 많더라.

“음악을 많이 쓴다고 해서 사람들 기억에 남는 게 아니다”
JIMFF 2012│조성우 음악감독 “일주일짜리 영화 음악은 의미가 없다”
JIMFF 2012│조성우 음악감독 “일주일짜리 영화 음악은 의미가 없다”
지난해 로 제 48회 대종상영화제 음악상도 수상했는데, 음악이 많이 쓰인 영화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인상이 강하게 남았다.
조성우: 음악을 듣고 영화 장면이 떠오르면 성공적인 영화 음악인데 보통은 음악이 영화에서 기능적인 역할에 그칠 때가 많다. 그냥 슬프게 한다든지, 웃기게 한다든지, 놀라게 한다든지 하는 식이면 기억에 남지 않지. 사실 영화에서 음악은 영상 스타일을 만들어내기도 하지 않나. 예를 들어, 서부 영화에서 엔니오 모리꼬네의 휘파람 소리 같은 건 영상과 아주 긴밀하게 연결되는 청각적 이미지를 만들어내는데 그렇게 스타일을 만들어 놓으면 영상을 기억시켜 주는 장치가 되는 거지.

음악이 확 드러나지 않는데 영화 전체를 감싸고 있는 느낌이었다. 대사가 많지 않고 침묵과 풍경의 이미지가 중요한 영화였는데 음악으로서는 어떤 것을 표현하고 싶었나.
조성우: 음악을 많이 쓴다고 해서 사람들 기억에 남는 게 아니다. 음식을 할 때 설탕을 많이 넣어도 단 걸 못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음악도 너무 많이 쓰게 되면 좋아도 좋은 걸 모르게 되는데 는 절제했기 때문에 음악이 한 번 흐를 때 관객에게 굉장히 효과적으로 다가간 것 같다.

이번 특별전에서 상영되는 작품들은 직접 골랐나.
조성우: 프로그래머들이 고른 건데 워낙 감각이 있어서 잘 고른 거 같다. 는 한국에서 오리지널 스코어를 두드러지게 표현했던 첫 번째 작품이라 의미가 있고 은 음악이 영화 전체의 감정을 지배적으로 움직여서 음악 덕을 많이 본 경우다. 는 스타일이 강해서 멜로디를 들으면 영상이 떠오르는 작품으로서 가장 잘 된 거라고 자평하는 작품이다.

은 세션의 역할이 컸던 작품으로 기억한다.
조성우: 시크릿 가든과 작업했는데 아일랜드 더블린까지 직접 가서 녹음을 했다. 그 영화는 전형적인 장르 영화고 음악도 장르적이긴 하지만 음질의 측면에서 좋았다. 지금은 한국과 유럽 차이를 못 느끼지만 그 당시엔 유럽의 녹음 기술이 선진적이었는데 유럽 오케스트라를 한국 영화에 쓰는 건 쉽지 않았다. 그런데 직접 현지 오케스트라를 동원해 녹음해서 당시 다른 영화에 비해 사운드의 격이 좋았던 것 같다.

작업 제의를 많이 받을 텐데 수락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조성우: 90년대 후반, 처음 시작할 때는 기준이 명확했다. 외국 음악 안 쓰는 것. 감독이나 제작사가 팝송을 주제곡처럼 쓰자고 하면 그건 내가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다음엔 지나치게 장르적이고 상업적인 영화의 경우 음악이 너무 기능적으로 가야하기 때문에 피했다. TV 드라마도 안 하는데 작곡가가 기능적으로 너무 빤하게 사람 감정을 지배하는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별한 스타일을 요구하고 소위 작품성이 있는 영화를 선호했다. 지금은 중국과 일본 등 아시아권에서 작업을 하려고 한다. 내 음악적 감수성이 다소 익숙해진 한국이 아닌 바깥에서 모색하고 싶다.

그랬기 때문에 ‘영화 음악=팝송 삽입곡’이라는 공식에서 벗어나 오리지널 스코어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방향으로 바뀔 수 있었던 것 같다.
조성우: 처음부터 그런 목표를 갖고 한 거지. 처음 시작할 때는 영화감독이나 제작자들이 영화 음악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은 한 마디로 ‘도찐개찐’이었다. 음악에 대해 기대하는 건 그냥 기능적인 것이었지 특별히 창작력을 갖고 스타일이 뛰어나고 예술성이 높은 작곡가를 한국 영화는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러려면 돈이 많이 들어가는데 그렇게 해봐야 결과는 빤하다고 생각했고. 당시 나는 영화 음악이 정말 새로운 걸 보여주지 않는 한 늘 제자리밖에 안 될 거라는 불안감, 현실에 대한 자괴감이 많았다. 그러다보니 창작 음악으로 영화 음악에 기여를 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지. 단순히 배경음악이나 기능적인 차원에서 머물러선 안 된다는 자각을 일찌감치 하고 해외 아티스트와 같이 작업을 한다든지 국내 좋은 음악가를 인큐베이팅 했다. 내가 좋아했던 음악가는 엔니오 모리꼬네나 반젤리스, 존 윌리엄스 같은 사람들이고 그들의 음악을 들으면서 그렇게 되려고 했는데 여기 앉아서 일주일짜리 영화 음악을 하고 있으면 의미가 없으니까.

“영화제 규모를 키워서 승부하는 건 바보짓”
JIMFF 2012│조성우 음악감독 “일주일짜리 영화 음악은 의미가 없다”
JIMFF 2012│조성우 음악감독 “일주일짜리 영화 음악은 의미가 없다”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지만 대학에서는 다른 공부를 했고 영화 음악 일과 학생들 가르치는 일을 병행했다.
조성우: 원래 꿈은 철학자였다. 지금도 마찬가지고. 그런데 학교에서 교수로 철학을 가르치고 논문 쓰는 일들이 너무 관습적이고 식상해 보여서 나를 좀 더 자극시키는 일이 없는지 고민했다. 그러던 차에 허진호 감독이 갑자기 영화를 하게 되고 음악을 해달라고 해서 해준 게 의외로 반응이 좋았고 그 뒤로 , , , 같은 작품들이 다 좋은 평가를 받았다. 어느 순간 보니 이게 직업이 됐더라. 원래 철학을 20년 넘게 공부하고 가르치는 게 일이었는데 마침 운이 좋게 기회가 왔고 결과도 좋게 나오면서 바뀐 거다. 그래서 학교는 뒷전으로 가고 음악이 직업으로 가서 20년 동안 오로지 영화 음악을 바라보면서 살게 됐다. 하지만 아직도 정리를 못 했는데 지금부터 해야지.

앞으로는 교수나 연구자로서의 삶에 좀 더 집중할 계획도 있나.
조성우: 있지. 정리하지 않은 상태로 앞만 보다보니 어느덧 나이가 많이 들었더라. 물론 영화 음악 하는 게 보람되고 이 일을 하면서 만난 좋은 사람들이 내 인생을 좋게 만들어주었지만 정리하지 않고 계속 가니까 그게 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집행위원장 일도 그두고 음악 작업이나 사업을 정리했다. 나를 돌아볼 시간이 필요해서. 다른 건 다 덜어내고 철학과 음악에만 신경 쓰고 가보려고 한다. 경험을 살려서 철학 관련 책도 출판할 생각이고. 교수가 되고 그럴 생각은 없는데 공부를 더 많이 하고 글 쓰는 일에 더 신경을 쓰고 싶다.

집행위원장에서 물러나고 두 번째 맞는 영화제인데 외부에서 보는 시선은 좀 다를 것 같다.
조성우: 이 영화제에 대한 애정이 굉장히 깊다. 집행위원장이 바뀐다 하더라도 워낙 안정된 하부조직을 갖고 있는 영화제라 방향성이야 일부 바뀔 수 있겠지만 기본적인 장점은 유지가 잘 될 거라는 확신을 갖고 물러났다. 그리고 너무 오래 있었기 때문에 명예위원장이라는 이름으로라도 한 발을 걸치게 되면 혼선을 일으킬 수 있단 생각에 완전히 은퇴하고 작년엔 일부러 오지도 않았다. 물론 오래 일한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불만도 많지. 기본적으로 이 영화제는 규모를 키워서 승부하는 건 바보짓이라고 생각한다. 특성화를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야하고 그래서 지금까지 성공해 왔던 건데 그런 방향에서 변질이 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확실히 예전에 비해 규모에 대한 강박이 느껴지는 면도 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는 생각도 든다.
조성우: 규모의 등수를 넘어서는 건 제천이라는 지역의 특성상 쉽지 않다. 부산과 제천은 도시 인프라의 규모가 다른데 순리 상 어쩔 수 없다. 또 공연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내부 자산을 통해 배우고 준비하고 발전시키는 게 중요하다. 외주 업체에 돈을 주고 기획을 맡기는 건 영화제 자산이 없어지는 거라고 생각한다. 좀 더 특화된 공연 기획에 대한 고민을 영화제 핵심 인력들이 직접 하면서 노력과 노하우를 쌓아야 하고 음악 영화에 전문성을 가진 프로그래머 팀도 키워가야 한다. 만약 그게 끊기면 이 영화제는 몇 년 못 간다. 음악 영화에 대한 특성화를 고민하고 다양성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가야지 규모에 천착해서 패권주의로 가면 스스로 무덤을 파는 일이다.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글. 제천=김희주 기자 fifteen@
사진. 제천=이진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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