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돈의 맛>│비싼 유리상자 안의 인형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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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고의 문이 열리자 산처럼 쌓인 돈다발이 눈앞에 펼쳐진다. 침을 꼴깍 삼킬 수밖에 없는 비서 주영작(김강우)과 달리 윤 회장(백윤식)은 너무 익숙해서 지겹다는 얼굴이다. 재벌 백씨 집안의 안주인 백금옥(윤여정)과 결혼해 그룹의 온갖 지저분한 일을 해온 윤 회장은 돈과 모욕을 맞바꾼 삶을 이제 그만 끝내고 싶다. 필리핀인 하녀 에바(마우이 테일러)와 함께 떠난 윤 회장을 대신해 검은 뒷일을 하게 된 영작. 돈과 권력의 맛에 젊은 육체는 점점 길들여진다.
영화 <돈의 맛>│비싼 유리상자 안의 인형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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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에 아침드라마를 끼얹어 유리 상자에 담으면
영화 <돈의 맛>│비싼 유리상자 안의 인형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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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우리 그런 사람들한테 그러면 안 돼”라며 세상의 ‘그런 사람들’과 철저하게 분리되는 최상류층 사람들이 벌이는 소동극이다. 돈의 맛에 취해 살아 온 윤 회장은 자신의 지난 삶을 “모욕”이라는 단 한 마디로 정의한다. 아내 백금옥은 모욕을 준 자고, 아들 윤철(온주완)은 모욕을 방관한 자며, 딸 윤나미(김효진)는 모욕을 몰랐던 자고, 주영작은 모욕을 계승하는 자다. 영작의 젊고 탐스러운 육체가 작은 무덤을 이룬 돈 더미 앞에 털썩 무릎을 꿇는다. 젊음은 유한하지만 모두에게 주어지는 것이고 섹슈얼한 육체는 어느 정도 노력으로 획득할 수 있다. 이 젊음도 육체도 살 수 있는 돈은 어떤가? “그래서 여러분이 평생 월급쟁이인 거예요”라는 대사로 관객에게 묻는다. 당신들이라면 돈의 맛을 거부할 수 있냐고. 한 번 본 그 맛을 끊을 수 있냐고. 하지만 이 물음의 울림은 크지도 깊지도 않다. 완벽하게 통제된 미장센과 만듦새는 분명 화려하지만 이야기는 그만큼 압도적이지 않다. 의 인물들은 적나라하게 분탕질을 치지만 마치 현미경 렌즈 속이나 밀봉된 유리 상자 안의 인형극처럼 멀게 느껴진다.

이 흥미로워지는 순간은 오히려 영화가 끝난 뒤다.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동안 온 몸을 휘감는 정체불명의 기분에 대해 스스로 묻고 답하는 시간이 이 영화를 문제작으로 만든다. 임상수라는 작가의 정체, 전작 와의 연결 고리, 무엇보다 동시대의 풍경을 취하면서 시대정신을 망각하는 소재주의의 위험까지 물음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답을 내리는 순간 수긍하거나 불쾌해진다. 셰익스피어에서 아침드라마로 이어지는 막장극 서사에 돈과 에로티시즘의 황홀경을 두른 에 대해 임상수 감독은 “의 정신적 후속작”이라 밝혔다. 하지만 ‘에의 재도전’이 더 정확할 듯하다. 원작의 틀에 갇히지 않았기에 은 더 자유롭지만 그로 인해 지나친 자의식이 드러난다. 임상수 감독은 우리가 최상류층의 삶을 궁금해 한다는 걸 알만큼 영리하다. 동시에 질문을 던지는 자에 그치지 않고 관객보다 먼저 답을 내릴 만큼 성급하다. 특유의 이죽거림과 건조함에 유머가 더해져 ‘임상수 영화’에 호의적이지 않았던 관객에게는 좀 더 맛있는 영화가 될지 모르겠다. 다만 문제적 작가 임상수의 불편함을 좋아했던 이들에게는 다소 느끼할 지도. 5월 17일 개봉.

글. 김희주 기자 fift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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