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아주담담’이라기보다는 ‘쾌도난담’이라는 타이틀이 어울릴 것 같다. 제 15회 부산국제영화제(이하 PIFF) 아주담담 ‘소설로 말하는 영화’에 참석한 김연수, 김중혁 두 소설가의 대화는 그만큼 거침없었다. 무례하거나 공격적이었다는 뜻은 아니다. 이미 에서 재기 넘치는 영화 칼럼을 연재한 바 있지만 이 두 작가는 시네필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영화 마니아가 아니라는 바로 그 지점에서 그들의 영화 이야기는 훨씬 유연하고 흥미롭게 이어질 수 있었다. 다음은 11일, 김혜리 기자의 사회로 진행된, 김중혁의 소설처럼 유쾌하고 김연수의 소설처럼 디테일한 대화의 기록이다.

두 작가가 영화를 좋아하는 건 아니라고 알고 있다. 그럼에도 생활인으로서, 또한 창작자로서 영화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궁금하다.
김연수 : 생활 속 영화라고 하니 불법 다운로드 같은 생활의 지혜를 물어보는 것 같은데 나는 굿다운로더다. 하하하. 사실 소설을 쓰면서 영화를 즐겨보지 않은지 꽤 됐다. 기대하는 마음으로 영화관에 가서 작품이 기대에 충족되는지 안 되는지 보는 과정이 에너지를 소모시킨다. 하지만 어렸을 때는 일주일마다 봤다. 어릴 적 살던 김천에는 아카데미 극장이 있었는데 일요일 오전 10시에 문화교실이라고 해서, 학생들을 위해 저렴하게 영화를 보여줬다. 그 때 이소룡의 액션 영화나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서부영화를 매주 가서 봤다. 그 땐 빨아들이듯 영화를 봤다. 대학 때도 많이 봤고. 하지만 소설을 쓰는 요즘은 그렇지 못하다. 소설과 영화가 적대적인 매체는 아니지만 각 매체를 향유하는 신체적 방식이 다른 것 같다.
김중혁 : 대학 때는 나름 영화광이라 시네마테크를 돌아다니며 봤다. 그 때 본 영화가 영화감상의 취향을 좌우하는데 타란티노 류의 영화를 좋아했다. 그런 것들이 소설의 밑바탕이 되었고, 최근에는 대중적인 영화를 많이 본다.

“영화를 보는 것이 소설 쓰는 입장에는 도움이 안 된다”
[PIFF+10] 김중혁, 김연수의 영화 이야기
[PIFF+10] 김중혁, 김연수의 영화 이야기
최근 나온 작품이 인데 그런 좀비 영화들도 많이 봤겠다.
김중혁 : 좀비 영화를 많이 좋아한다. 물고 뜯고 씹고 그런 거. 하하하.

김연수 작가가 영화를 싫어하는 건 너무 빤하거나 아귀가 안 맞는 내러티브를 견딜 수 없어서라고 알고 있다.
김연수 : 그러니까 여기 PIFF에 와서 본 영화들과는 다른 종류의 영화에 대한 이야기다. 일반 상업 영화의 경우 이야기가 예측 가능하게 흐르지 않나. 전위적 장르의 경우 우리를 낯설게 하고 불편하게 하는데 그런 것을 위해서는 돈을 잘 쓰지 않는다. 결국 너무 낯설지 않으면서 너무 빤하지 않은 정도의 이야기들이 책을 사게 하거나 영화 관람료를 내게 한다. 물론 소설도 마찬가지지만 영화 쪽은 그런 게 더 많이 나오는 것 같다. 그런 영화를 보는 것이 소설 쓰는 입장에서는 도움이 안 된다고 봤다.

김중혁 작가는 어떤가. 이야기꾼으로서의 영화감독을 부러워한 적은 없나.
김중혁 : 이야기로서는 영화가 가진 특성이 더 좋다고 본다. 소설이 과연 이야기인가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장편소설에 대해 서사가 중심이라고 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영상물은 하나의 이야기가 꾸준히 이어지며 서사를 이루지만 소설은 서사 중심이라기보다는 하나의 묘사나 장면에 집중된다. 그곳에서, 상상력을 부리는 거다. 그 서사 너머의 무언가가 매력적이기에 나는 소설 쪽으로 간 거다.

다르다고 하지만 영화의 절반가량이 어떻게든 문학 작품을 바탕에 깐다고 한다. 소설가로서 문학을 영화로 각색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보나.
김중혁 : 나는 소설 원작을 먼저 보면 영화를 보지 않고, 영화를 먼저 보면 원작 소설을 읽지 않는다. 다른 매체지만 그 안에 있는 스토리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흥미가 생기기 않더라. 다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가 재밌을 거 같으면 영화를 안 보고 소설을 본다.
김연수 : 나는 두 가지가 다른 장르라고 생각해서 좋아했던 책이 영화로 나오면 찾아보는 편이다. 그 중 하나가 인데 사실 이건 영화로는 만들 수 없는 소설이다. 답을 맞히는 과정 안에 주인공의 인생 전체가 나와야 하는 건데 영화에서는 너무 많은 부분이 생략되어 있다. 그에 반해 의 경우에는 소설에 없는 부분을 연기로 메우면서 전혀 다른 작품을 보는 기분이었다. 워낙 원작이 빈틈이 많기도 했지만. 어떤 건 영화가 좋고 어떨 땐 소설이 더 좋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소설이 더 좋은 것 같다.
김중혁 : 개인적으로 폴 오스터를 좋아하는데 그의 작품 중 정말 환상적인 이란 작품이 영화화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심지어 마지막에 폴 오스터가 카메오로 나온다는 얘기도 들어 찾아 봤는데 영화가 너무 조악했다. 생각한 이미지와 달랐다. 이건 돈을 퍼부어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문학과 소설의 문제를 알게 된 첫 작품이다.

“창작에만 몰두할 수 있는 감독이 부러웠다”
[PIFF+10] 김중혁, 김연수의 영화 이야기
[PIFF+10] 김중혁, 김연수의 영화 이야기
본인들의 소설이 영화화되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나.
김연수 : 나 같은 경우는 내 소설 판권을 사 갔다. 라는 책이다. 사간지 오래됐는데 안 나오고 있어서 어려울 거 같다.
김중혁 : 영화 판권이 팔렸다고 기쁜 목소리로 얘기하던 때가 5년 전이다. 하하. 그러면 이제 판권에 대한 권리를 잃을 시기 아닌가? 재계약하는 기간인데 누가 살까?
김연수 : 사더라, 그래도. 그 때 경쟁이 많이 붙었다. 한두 명이 아니었다. 세 명 정도? 하하하.
김중혁 : 내게는 안 물어보나? 내게는 안 들어왔다. 하하. 내 소설 자체가 이야기로서의 매력은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소설이 아닌 내 에세이에 대해 분위기가 좋다며 그걸 단편영화로 만들어보자고 하더라. 그 이후 연락이 없다. 하하하.

본인은 이야기로서의 매력이 없다고 하지만 김중혁 작가의 작품은 어떤 일관된 분위기가 있다. 옴니버스 영화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던데.
김중혁 : 대부분의 독자들은 내 소설의 결말이 싱거워서 본 듯 만 듯하다는데, 그게 내가 생각하는 소설의 매력이다. 그래서 내 건 영화화가 어려울 것 같다.

표현의 차원에서도 그렇지만 창작이라는 부분에 있어서도 영화와 소설은 다르다. 영화는 팀플레이인데, 소설은 고독한 작업 아닌가.
김연수 : 에 출연하면서 홍상수 감독님이 영화 만드는 걸 봤는데 매우 부러웠다. 작가의 경우 괴롭힐 사람이 많지 않다. 가족을 주 타깃으로 잡지. 아니면 편집자 정도? 성질을 내거나 작품이 될 때까지 말을 못 걸게 하고, 약속 깰 때가 있다. 그런데 홍상수 감독님을 보니 모든 게 스태프 잘못이더라. 하하하하. 문제가 생기면 스태프가 해결해야 하고 감독님은 창작에만 몰두하고. 그 때 진심으로 부러웠다.

하지만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 투자 받으러 다니고 하는 거 보면 안 부러울걸?
김연수 : 그런데 홍상수 감독님이 그러더라. 이제는 투자 받아서 영화 안 만들고 돈에 맞춰 영화를 찍겠다고. 하지만 사실 소설은 영화처럼 시간을 맞출 필요는 없지. 다른 잡다한 수많은 일을 신경 쓰지 않고 종이만 있으면 되고. 비교가 안 되게 간소한 예술 장르이긴 하다.
김중혁 : 모든 작가가 그렇게 괴로워하며 쓴다고 생각할까봐 부연하면 나는 즐겁게 쓴다.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지 않는다. 밖에서 엄살을 떠는 것 같아서. 소설 쓰느라고 남들 안 괴롭히고 집에서 스스로를 괴롭히는 타입인데 이젠 그것도 안 하려고 한다. 그리고 협업에 대해 말하자면 나는 협업을 좋아한다. 김연수와 회사 생활을 함께 했었는데 그는 팀장이고 나는 그 밑에 있는 팀원이었다. 그 때 김연수는 자기 자리에만 앉아있고 나는 이 팀 저 팀 돌아다니며 수다 떠는 게 일이었다. 이쪽 아이디어를 빼내서 저쪽 팀에 넘기고. 하하하.
김연수 : 자리에 있질 않았다. 회사라는 공간이 왜 있고, 자기 자리가 왜 있는 건가. 앉아서 일하라고 만든 자리인데 거기에 없는 거다. 우리 팀에 김중혁 밖에 없는데 자리에 없으니 나는 협업이 안 되지. 혼자 일해야 하고.
김중혁 : 팀과의 협업은 자동으로 되는 거다. 그리고 그 때 김연수는 일을 했느냐 하면 그 때 회사에서 앉아 쓴 로 동인문학상 탔다.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와서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두 사람을 수다스럽게 만드는 영화감독은 없나?
김중혁 : 김연수와는 20년이 넘게 친구로 지내며 가장 이야기하지 않는 주제가 영화인 것 같다. 소설이나 음악 이야기는 많이 하는데 영화는 취향도 다르고 좋아하는 감독도 다르다.
김연수 : 그나마 어렸을 때 추석에 하는 성룡 영화를 보고 나면 의견이 일치했다. 보고 나서 쿵푸 동작 흉내 내고.

김중혁 작가는 기타노 다케시나 히치콕, 팀 버튼을 좋아하는 걸로 아는데.
김중혁 : 김연수는 안 좋아할 걸.
김연수 : 나는 영화를 안 보는 편이지만 저쪽(김중혁)은 많이 본다.
김중혁 : 매주 상업 영화 위주로 본다. 에 격주로 칼럼을 쓰다 보니 볼 수밖에 없었는데 김연수는 칼럼이 끝나니 바로 영화를 보지 않았는데 나는 습관이 남아서 보게 된다.

“남자배우의 포스가 여배우의 섹시함보다 좋다”
[PIFF+10] 김중혁, 김연수의 영화 이야기
[PIFF+10] 김중혁, 김연수의 영화 이야기
가끔 둘이서 영화를 보러 갈만도 한데.
김연수 : 영화관에 가는 게 일 년에 한 번 두 번 정도다. 아주 특별한 행사라 김중혁과는 그런 특별한 행사를 하고 싶지 않다.

배우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영화와 소설의 차이는 배우라는 차원을 거친다는 것이기도 하다. 혹 좋아하는 배우는 없나.
김중혁 : 나는 아까 말한 것처러 팀 버튼이나 기타노 다케시를 좋아해서 배우 중에서는 조니 뎁이나 기타노 다케시를 좋아한다. 한국 감독 중에서는 류승완 감독이나 장진 감독을 좋아하기 때문에 배우로서의 류승완도 좋아한다. 최근에는 송새벽이 좋고.

여배우는 안 좋아하나?
김중혁 : 예전에 김성수 감독님의 소개로 정우성을 볼 기회가 있었다. 정말 뒤에 아우라가 있더라. 그 때 감독님께서 정우성 씨에게 굉장히 훌륭하신 소설가님이라고 내 소개를 해서 정우성 씨가 내게 인사를 하는 거다. 나는 사인을 받고 싶었는데 굉장히 훌륭하신 소설가님이 한낱 배우에게 사인을 받을 수 없어서 너무너무 안타까웠다. 하하하. 정우성을 보며 남자배우의 포스가 여배우의 섹시함보다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연수는 어떤가. 작가 겸 배우로서 직접 여배우들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김연수 : 가까이서 보니 여배우님들은… 참 좋았다. 사람들마다 다양한 감정의 스펙트럼이 존재하는데 그분들은 자기를 표현하는데 능해서 자신이 가진 가장 화려하고 외향적인 성격을 보여주신다. 그래서 시간이 정신없이 지나간다. 너무 좋아서. 하하하. 술자리에 가면 앉자마자 끝나고. 시작할 때 고사 지내고 고현정 씨, 엄지원 씨 등등이 다 와서 두 시간에 걸쳐 술을 마시고 2차로 문인 술자리에 갔는데 적응 안 되더라. 현실이 막…. 아무튼…
김중혁 : 내가 그 자리에 있었는데 너희는 왜 그렇게 생겼느냐는 표정으로 우릴 보더니 10분 먹고 엎드려 자다가 깨서 가더라.
김연수 : 영화 처럼 현실이 찢어지면서 새로운 본 모습이 보이는 기분이었다.

마지막으로 두 사람의 근황을 듣고 싶다. 김연수는 을 쓰는 걸로 알고 있는데.
김연수 : 그건 워낙 긴 장편으로 드문드문 쓰고 있다. 그 전에 라는 작품을 먼저 낼 거다. 은 그 다음에 나올 거고.
김중혁 : 이라는 장편이 나왔는데 그게 오래 전에 쓴 거라 현재 바로 계간지에 이라는 장편을 연재하고 있다. 밝고 웃긴 소설이다. 여러분께서 그렇게 말씀해주시더라. 하하. 나와 김연수가 낸 영화 에세이집 제목이 인데 그게 내 소설의 핵심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 때 제목을 김연수가 지었고 나는 되게 싫어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내 글에 나오는 구절이더라.
김연수 : 내가 봐도 김중혁 소설에 좋은 부분이 있는데 본인이 잘 모른다. 제목 얘기할 때 막 화내더라. 손발이 오글거린다고. 네 글이야!
김중혁 : 어쨌든 지금 연재하는 소설도 ‘대책 없이 해피엔딩’인 이야기가 될 것 같다. 도발적일 정도로 밝은 이야기.
김연수 : 이렇게 가증스러운 캐릭터가 누가 있을까. 그 때 내가 지은 제목에 대해 강하게 저항하더니 이제는 자신의 키워드가 ‘대책 없이 해피엔딩’이라고 하다니. 성격 유연해서 좋겠다.
김중혁 : 깨달음은 갑자기 오는 거다.

사진제공. PIFF
[PIFF+10] 김중혁, 김연수의 영화 이야기
[PIFF+10] 김중혁, 김연수의 영화 이야기
글. 부산=위근우 기자
편집. 부산=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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