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순 “아이들을 위해 카메라 앞에서 춤도 췄다”
박희순 “아이들을 위해 카메라 앞에서 춤도 췄다”
한 때 축구스타였지만 지금은 사기꾼 소리를 듣는 원광(박희순)은 인생 한 방을 노리고 동티모르로 건너간다. 맨발로 축구하는 동티모르 아이들에게 짝퉁 축구화를 팔아 돈을 벌려던 원광은 그들의 순수함에 감화되어 결국 유소년 축구팀을 결성하고 국제대회까지 진출한다. 동티모르 유소년 축구팀을 이끌고 있는 김신환 감독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은 이렇듯 새로울 것 없는 소재를 비교적 예상 가능한 방식으로 전개시킨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아름다운 것은 “아이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박희순의 말처럼, 주인공으로 캐스팅 된 실제 유소년 축구팀 선수들 덕분이다. 라모스(프란시스코)의 드리블 실력은 부족한 연기경험을 극복할 만큼 놀랍고, “카메라가 멀리서 찍는데도 끝까지 감정을 놓지 않는” 조세핀(말레나)은 눈물연기와 애교로 무장한 막내 홍일점이다. 무엇보다도 해맑은 미소로 질퍽한 운동장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은 관객들에게 잠시 잊고 있었던 희망을 안겨준다.

또, 동티모르 아이들과의 의사소통을 위해 한국어, 인도네시아어, 떼뚬어(동티모르어)까지 섞어 쓰는 박희순의 연기가 없었다면 은 다큐멘터리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기본적으로 김신환 감독의 말투에서 모티브를 얻었지만, 이미 영화 에서 코믹연기를 선보였던 박희순은 자신만의 스타일로 원광의 말투를 소화한다. 거기에 외교관 역을 맡은 고창석의 능청스러운 연기가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 자칫 감동으로만 흐를 수 있는 영화에 코믹한 양념을 뿌리며 이야기를 지루하지 않게 만든다. 다음은 언론시사회 직후 이루어진 기자간담회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영화는 6월 24일 개봉한다.
주인공으로 발탁된 동티모르 아이들과 함께 영화를 관람했다. 아이들의 반응은 어떤가.
박희순 : 난 이미 영화를 본 상태라, 오늘은 아이들을 살펴봤다. 남자 아이들은 자기 얼굴이 크게 나와서 마냥 좋다고 웃는데, 조세핀을 연기한 말레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눈물을 흘리더라. 촬영할 때도 다른 아이들은 카메라가 멀리서 찍거나 혹은 나만 비추는 장면에서는 장난치거나 대충대충 연기하는 경향이 있는데, 조세핀만 유일하게 계속 내 눈을 쳐다보면서 감정을 잡았다. 그래서 조세핀이 우는 걸 보고, 나도 좀 눈물이 났다.
김태균 감독 : 어제 아이들이 한국에 도착했다. 동티모르에서 여기까지 비행기로는 9시간 거리지만, 비행기를 갈아타고 대기하는 시간 때문에 거의 1박 2일이 걸렸다. 오늘 입을 옷도 함께 쇼핑했고, 앞으로 아이들과 함께 시사회를 다니면서 무대인사를 할 예정이다.

“개구쟁이 같은 상상력들이 영화에 많이 반영돼 있다”
박희순 “아이들을 위해 카메라 앞에서 춤도 췄다”
박희순 “아이들을 위해 카메라 앞에서 춤도 췄다”
주인공 4명이 실제 김신환 감독의 유소년 축구팀원이라고 들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라모스 역할을 맡은 프란시스코의 축구 실력이 눈에 띄던데, 축구 실력을 위주로 캐스팅했나.
김태균 감독 : 캐스팅이 쉽지 않았다. 조감독을 포함한 제작팀에게 먼저 동티모르에 가서 오디션을 진행하라고 했는데, 아이들이 안 모인다고 하더라. 그 곳은 영화를 찍는다는 개념 자체가 없으니 신문 광고나 현수막도 소용없었다. 그래서 실제 동티모르 유소년 축구팀원을 출연시키기로 결정했고, 라모스 역은 축구 실력이 뛰어나야 하니 그것을 중심으로 뽑았다.

축구 실력은 뛰어나지만 연기 경험이 없는 아이들이라 촬영이 수월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김태균 감독 : 연기 연습을 시켰다. 연극 학교처럼 역할 놀이를 하다 보니 아이들이 연기에 점점 익숙해졌고, 그렇게 (연기가) 완성된 것 같다.

연기 지도나 촬영에 있어서 무엇보다 가장 큰 장벽은 언어였을 것 같은데, 아이들과의 의사소통은 어땠나.
박희순 : 아이들과 길게 대화하지 않는다. ‘좋아? 안 좋아?’ 정도의 짧은 대화를 나눈다. 의사소통이 안 되니까 돌발적인 상황도 많이 발생했다. 아이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내가 카메라 앞에서 춤도 추고, 이 쪽(카메라)을 보라고 손가락질하기도 하고.

원광(박희순)이 아이들을 모아놓고 ‘알았어?’라고 하는 부분에서 한 아이가 한국말로 ‘알았어’라고 받아치는 장면이 있다. 일부러 한국어 대사를 넣은 건가, 아니면 이것도 돌발적인 상황이었나.
박희순 : 돌발적인 상황이었다. 원래 그런 대사가 없었는데, 그 친구가 돌발적으로 ‘알았어’를 하더라. 이거 재밌겠다 싶어서 즉석에서 넣은 장면이다. 아이들이 천진난만하기 때문에 동심에서 나올 수 있는 개구쟁이 같은 상상력들이 영화에 많이 반영돼 있다.

“박희순 씨는 축구에는 원래 소질이 없는 것 같다”
박희순 “아이들을 위해 카메라 앞에서 춤도 췄다”
박희순 “아이들을 위해 카메라 앞에서 춤도 췄다”
김신환 감독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영화로 만들면서 재구성한 부분들도 있을 텐데, 어디까지가 실화인가.
김태균 감독 :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구분하는 건 사실 어려운 부분이다. 일단 동티모르 유소년 축구팀이 6전 전승으로 기적 같은 승리를 이뤄낸 건 완벽한 사실이다. 그것 때문에 영화화하기로 결심한 거고. 박희순이 한국어나 인도네이사어를 섞어 쓰는데, 이건 김신환 감독 스타일이다.

그렇다면 영화적 재미를 위해 특별히 추가한 부분은 뭔가.
김태균 감독 : 원광이 아이들에게 하루에 1달러 씩 나눠 내라면서 짝퉁 운동화를 파는 부분이다. 실제로 김신환 감독이 축구화를 이런 식으로 팔지는 않았다. 영화적인 재미를 위해서 만들어 낸거다. 하지만 아이들과 가까워지고 축구를 가르쳐주면서 그들의 아버지가 되는 감정들은 김신환 감독에게서 영감을 많이 얻었다.

2006년 동티모르로 건너가 김신환 감독과 함께 생활했는데, 어떤 이야기들을 들려주던가.
김태균 감독 : 아이들에게 고기국물을 먹이고 싶다는 말이 감동적이었다. 아이들이 축구선수로서 재능도 있고 한창 클 시기인데, 현실적으로 동티모르에서는 두 끼밖에 먹지 못한다. 그래서 모든 NGO단체나 구호단체를 찾아다니면서 유효기간이 지난 거라도 좋으니 비타민제를 달라고 부탁하고, 한국에 있는 동료들한테 전화해서 집에서 먹다 남은 영양제를 보내달라고 해서 아이들에게 먹였다고 하더라. 그런 말을 들었을 때 굉장히 뭉클했다.

실제 주인공으로서 영화를 본 소감이 궁금하다.
김신환 감독 : 옛날 생각이 났다. 오늘 영화를 보면서 두 번 울었다. 비행기 티켓을 구했다고 인기(고창석)가 아이들에게 뛰어오는 장면, 그리고 아이들이 히로시마 경기에서 골 넣고 좋아할 때, 두 장면에서 눈물이 났다.

자신의 모습을 연기하는 박희순은 어떻게 봤나.
김신환 감독 : 처음에 박희순을 봤을 땐, 나하고 이미지가 영 다른 것 같았다. 이 사람이 과연 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막상 따라다니면서 연기하는 모습을 보니 장난이 아니더라. 그 더위 속에서도 짜증 안내고 연기하는 데 존경스러웠다. 그런데 축구에는 원래 소질이 없는 것 같다. 연기는 참 잘하는 배우인데. (웃음)

“동티모르 야외에 큰 스크린으로 많은 사람들과 함께 보고 싶다”
박희순 “아이들을 위해 카메라 앞에서 춤도 췄다”
박희순 “아이들을 위해 카메라 앞에서 춤도 췄다”
이번 영화를 위해 따로 축구를 배웠다고 들었는데.
박희순 : 풍생 고등학교 축구팀 감독님한테 하루 4시간씩 2개월 동안 개인 레슨을 받았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나온 건 없다. 감독님이 다 편집했다. 나는 인조잔디에서 레슨을 받았는데, 동티모르 운동장 바닥은 고르지 않다. 그러고 보면 아이들이 축구를 참 잘하는 거다. 저런 바닥에서도 날아다니는 것 보면. (웃음)

동티모르에서 촬영하면서 더위를 비롯해 굉장히 고생이 많았을 것 같다.
박희순 : 자외선이 굉장히 강하다. 운동장에서 축구하는 장면을 찍어야 되는데, 햇볕을 피할 수 없어서 그대로 다 맞았더니 머리카락이 노랗게 탈색됐다. 그리고 스태프 한 명이 동티모르에 가자마자 말라리아에 걸려서 고생했는데, 그 곳에서는 말라리아가 감기처럼 왔다가는 거라고 하더라. 3~4시간 걸리는 곳을 가려면 산을 몇 개나 넘어야 하고 거기다 비포장 도로다 보니까, 먼 거리 촬영은 되도록 자제했다.
고창석 : 나는 외교관 역할이라 상대적으로 편하게 촬영했다. 그리고 40도가 넘는 열악한 환경에서 매일 뛰어다니는 신을 찍었는데도 1kg도 안 빠지더라. (웃음) 내 자신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축구는 국경이 없는 소재인데, 혹시 해외에서 상영할 계획이 있는지 궁금하다.
김태균 감독 : 처음부터 그럴 가능성을 열어놓고 촬영했다. 일본이 경기에서 지는 영화인데도, 일본 배급사에서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러면 영화 속 배경인 동티모르에서도 상영할 가능성이 있는 건가.
김태균 감독 : 우선 계획은 있는데, 그 규모를 두고 고민하고 있다.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야외에 큰 스크린을 마련해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보고 싶다. 문맹인도 있기 때문에 자막 뿐 아니라 더빙작업도 해야 되고. 아무튼 꼭 해내려고 노력중이다.

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박희순 : 요즘 시끄럽고 자극적인 사건이 많이 발생하는데, 머리와 가슴을 정화할 수 있는 영화다.
고창석 : 한 그릇 밥 같은 영화라고 확신한다. 간만에 나온 착한 영화기도 하고.

글. 이가온 thirteen@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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