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라스트 나잇>│권태기라는 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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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마주보지 않는 연인이 있다. 이미 결혼 3년차의 부부지만 아이도 없고 시부모의 간섭에서도 자유로우며 경제적인 어려움도 없는 이들은 연인이라 하는 것이 더 적합할 것이다. 대학시절 만나 4년의 연애 후 결혼한 조안나(키이라 나이틀리)와 마이클(샘 워싱턴)은 사랑을 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마주치고 싶지 않지만 결국 오고야 마는 그 시기와 직면했다. 사소한 일로 의심하고, 입만 열면 시작되는 짜증은 기필코 미간을 찌푸리게 만든다. 열정이 사라진 키스로 무마하려는 언쟁은 필시 “관두자”로 끝난다. 결국 그들에게도 권태기라는 유령이 찾아온 것이다. 그런 그들을 시험하려는 듯 마이클은 매력적인 동료 로라(에바 멘데스)와 출장을 떠나고, 조안나는 남편에게도 말하지 못한 옛사랑 알렉스(기욤 까네)와 재회한다. 서로 닿을 수 없는 상태에서 강력한 유혹에 놓인 이들은 어떤 결말을 맞을까. 이들의 방황에 결말이 있기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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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섬세하면 영화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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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누구나 한다. 길에서 마주친 그와, 소개팅에서 만난 그녀와, 함께 일하는 동료와 우연이라는 팩트보다 운명이라는 정의가 앞서는 만남. 결국 멜로 영화는 이성보다 앞서는 감정의 순간을 얼마나 순도 높게 증류했느냐에 따라 보는 이의 심장 혹은 눈물샘을 자극할 것이다. 자신도 어떻게 규정할 수 없는 무형의 찰나를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바꿔놓는 것, 거기에 멜로 영화의 성패가 달려있다. 그 점에서 은 매우 성공적이다. 옛 애인의 전화를 받고서 설레는 조안나의 시간은 어떠한 설명 없이 흐르는 것만으로 들뜬다. 어느 때보다 세심하게 바르는 바디로션에서, 공들여 고르는 속옷에서, 집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확인하는 거울에서 그녀의 설렘은 최고조를 향하고 결국 알렉스를 만났을 때는 보는 이마저 그녀의 떨림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동시에 강하게 거부하지도 당당하게 받아들이지도 않으면서 동료의 성적 매력에 끌리는 마이클의 하루는 조안나의 밤과 함께 교차되면서 떨어져 있지만 같은 상황에 놓인 이들의 긴장을 고조시킨다.

마시 태지딘 감독은 여성인 만큼 여자들의 감정을 담아내는 데에 강점을 보인다. 불륜이라고 쉽게 치부할 수 있는 감정을 만들고 옮기고 묻어 버릴 수 밖에 없는 조안나와 로라는 그 어느 쪽도 쉽게 지지하거나 비난할 수 없게 할 만큼 설득력을 가진다. 그 결과 여자들의 반응에 따라 행동하는 남자들은 소모품처럼 보이기 쉽지만 사랑이나 연애에 있어 더 사랑하는 쪽이 약자가 되어 강자가 제시하는 게임의 룰에 끌려 다니는 것을 생각하면 이 또한 무리는 아니다.

아직도 “우리가 지금도 그때처럼 같을까”를 묻는 조안나에게 “이젠 서로 편하잖아”를 대답으로 내놓는 마이클이라면 누가 누구와 잤느냐의 문제는 오히려 간단할 수 있다. 그러나 서로에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그날 밤 이후에도 여전히 얼굴을 마주대고 일상을 보내야 하는 커플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서로를 쳐다보지 않는 순간 오히려 진심을 내비치고 마는 오래된 연인은 문제와 대면하기보다는 모르는 척 하기를 택할까. 영화가 결국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라스트 나잇’ 그 이후다. 은 엇갈린 만남을 도덕적 잣대로 섣불리 단죄하거나 쉽사리 감상에 젖지 않고 그 이후 펼쳐질 감정의 파고를 짐작케 만든다. 서로에게서 눈치 챈 이상한 공기를, 낯선 냄새를, 권태기가 낳은 곪은 상처를 감지한 오래된 연인의 지옥을 말이다. 칼을 들지 않고도 그 상처를 베어내어 놓는 섬세한 방식만으로도 영화는 제 몫을 다한다. 4월 7일 개봉.

글.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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