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작은 연못>│잊지도, 고개를 돌리지도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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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7월, 한국전쟁 발발 한달 후. 평화로운 시골마을 대문바위골에 갑자기 군인들이 들이닥친다. 바깥 세상에 난리가 났다지만 전쟁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던 마을 사람들은 미군 작전 지역이니 당장 떠나라는 명을 받고 무작정 피난을 떠난다. 젖먹이를 들쳐 업고 거동이 불편한 노모를 지게에 태워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는 길을 떠나면서도 저항 한번 못했던 이들 앞에 “어떤 피난민도 전선을 넘지 못하게 하라. 전선을 넘으려는 자는 모두 사살하라”는 미군의 지침이 내려진다. 그리고 태양이 작렬하는 철길과 굴다리에 갇힌 채, 날아오는 총탄을 막을 것이라고는 이불 한 채 뿐이었던 5백여 명의 민간인을 향해 사흘 동안 12만개의 총탄이 퍼부어진다.

한국전쟁 당시 학살되었던 민간인은 약 13만 명, 그 가운데 충북 영동의 노근리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은 이상향처럼 구현된 평화로운 시골 마을의 풍경으로부터 시작된다. 어른들은 원두막에서 바둑을 두고 아이들은 풍금 주위에 둘러서서 노래를 부르며 서울 가면 창경원에 가 보겠다는 꿈을 기른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풍경들은 그것이 언제 어떻게 깨어지는가에 대한 불안감을 더하며 관객의 심장을 무겁게 누른다. 그리고 ‘양민’과 ‘학살’이라는, 나란히 존재할 수 없는 단어들의 조합은 현실이 된다.
영화 <작은 연못>│잊지도, 고개를 돌리지도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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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알아야 하지만 아무도 모른다
영화 <작은 연못>│잊지도, 고개를 돌리지도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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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다큐멘터리라기보다는 연극과 동화적 스타일이 더 짙게 배어 있는 은 그 생지옥과도 같던 죽음의 순간들을 적나라하고 잔인하게 파헤치지는 않는다. 대신 영화는 우리가 숫자로만 기록해온 그 많은 생명들이 모두 누군가의 남편이자 아내, 자식이자 부모였음을 상기시킨다. 지도자가 먼저 몸을 피해 버린 나라에서 사냥당하는 짐승처럼 그들이 죽어가야 했던 이유는 하나 뿐, 그 곳에 살아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우리에게 너무나 가까워서 제대로 보지 못했던 역사의 한 허리를 뚝 잘라 내놓은 이 작품을 본다는 것은 블록버스터 전쟁 영화에서의 죽음을 관람하는 것과는 비할 바 없이 고통스런 경험이기도 하다.

결국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몇몇 사람들은 눈알이 빠지고 얼굴 전체가 일그러진 채 한 날 한시에 먼저 간 이들의 제사를 지내며 평생을 살아내야 했지만 한미 양국 정부가 노근리 사건 자체를 인정한 것은 2005년에 이르러서였다. 중견 연극 연출가 이상우 감독은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건 좀 알고 넘어가야 하지 않느냐”는 마음으로 8년이라는 긴 여정을 치러냈다. 故 박광정을 비롯해 문성근, 문소리, 전혜진 등 142명의 배우는 노 개런티로, 229명의 스태프들은 현물 투자로 영화를 만들었으며 관객들은 필름 구매 이벤트를 통해 프린트 제작에 참여해 마음을 더했다. 한국전쟁 발발 60주년, 그러나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이 점점 잊혀가는 세상에 나온 작품이기에 더욱 귀하다. 4월 15일 개봉.

글. 최지은 fiv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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