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하게 등을 맞댄 두 남녀. 따스한 햇살이 비추고 잔잔한 미소가 둘의 얼굴에 머물러 있다. 11월 26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 <나는 행복합니다>(블루스톰 제작, 윤종찬 감독)의 포스터는 그야말로 행복해 보이는 현빈과 이보영을 가득 담았지만 정작 영화에서 이들이 웃는 모습을 보기란 쉽지 않다. 13일 왕십리 CGV에서 공개된 영화 <나는 행복합니다>는 제목이 가지는 역설의 수위가 어디까지 높아질 수 있는 지 보여줬다.

도박에 미친 형이 남기고 간 빚과 치매에 걸린 어머니가 가진 것이 전부인 만수(현빈)는 결국 현실을 이겨낼 수 없어 과대망상증에 걸리고 만다. 역시 직장암 말기인 아버지 병수발로 얻은 빚과 다크서클 외엔 가진 것이 없는 간호사 수경(이보영)도 하루하루가 지옥 같긴 마찬가지다. 정신병동에서 환자와 간호사로 만난 둘은 서로에게 작은 위안이 되지만 삶은 이마저도 용납하지 않고, 악독하게 둘을 몰아붙인다. 흐리멍텅한 눈빛에 더벅머리 현빈과 부르튼 입술, 아무렇게나 걸친 옷에 퀭한 얼굴의 이보영은 낯설지만 <나는 행복합니다>에서 두 배우는 훌쩍 성장한 모습이다. 제 13회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선보인 지 1년 만에 다시 관객들과의 만남을 앞두고 있는 현빈, 이보영, 윤종찬 감독이 영화 <나는 행복합니다>를 말했다.

<밀양>, <서편제> 등의 원작소설로 유명한 고 이청준 작가의 소설 <조만득 씨>를 영화화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윤종찬 감독
: 현실의 무게를 못 이겨 미친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 원작이 재미있게 느껴졌다. 각색을 하면 한 편의 영화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했다. 이청준 작가에게 들은 바로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다. 작가가 친구에게 들은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글을 쓰게 됐다고 하더라.

“영화에는 현빈이 아닌 만수의 모습을 담는 것”

<나는 행복합니다>라는 제목과는 다르게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
윤종찬 감독
: 역설적으로 쓴 제목으로 알아주셨으면 한다. 만수는 불행한 현실과 다르게 미쳐서 행복했기도 했고. 삶이라는 건 굉장히 무심한 것 같다. 사람이 짐을 가지고 있거나 미치거나와 상관없이 삶은 흘러간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다시 현실로 돌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사실 삶을 사는 존재 자체로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무거울 수도 있는데 관객들은 어떤 측면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만수와 수경이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는 걸 보면서 복잡한 요즘 같은 때 어려움을 겪고 있을 많은 이들에게 역설적으로 위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과대망상증 환자라는 특이한 캐릭터를 맡았다. 준비과정이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 또 배우들은 그런 강렬한 캐릭터를 연기한 이후에는 일상으로 복귀하기까지 어려움을 겪기도 하던데.
현빈
: 과대망상증이라는 걸 경험해 보지 못해서 감독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또 촬영 시작 전에 정신병원에 가서 과대망상증 환자를 만나기도 했다. 감독, 이보영과 함께 정신병에 관련된 영화들을 보면서 이런 저런 대화를 많이 했는데, 그런 것들이 간접적으로 도움이 되었다. 촬영 하면서도 감독과 과대망상증 환자의 눈빛, 손짓 하나까지도 다 리허설을 하면서 찍었다. 원래 영화의 캐릭터에서 빨리 깨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영화의 경우에는 조금 더 연장이 됐던 것 같다. 만수의 눈빛이 초점이 없고, 흐리멍텅한데 한동안 그렇게 지냈더니 다른 영화를 촬영할 때도 그 눈빛이어서 지장이 있었다. (웃음)

만수라는 캐릭터는 현빈이라는 배우의 한계를 시험한다고 느껴질 정도로 가학적이기도 하다. 연기 변신을 꾀하고 작품을 선택한 것인가?
현빈
: 처음 본 시나리오는 원래 만수가 내가 할 수 있는 나이대의 인물도 아니고 상황도 달랐다. 그런데 이 암울하고 처절한 시나리오를 계속 실소를 머금고 보게 되더라. (웃음) 내가 왜 이걸 웃으면서 보지라는 생각 묘한 매력을 느꼈다. 만수라는 캐릭터를 내가 잘하겠다, 잘 표현할 수 있겠다, 이런 생각은 전혀 없었다. 또 연기변신을 하겠다고 택한 건 아니다. 감독의 욕심 중 하나가 영화게 기존에 현빈이 보여줬던 모습이 아닌 만수의 모습을 담는 것이었기에 그렇게 작업했다.

“연기를 정말 잘 해야겠다는 마음 뿐이었다”

이보영 역시 여배우로서 예쁘게 보이고픈 욕심을 버리고 몸을 던져 임한 것 같다.
이보영
: 원래 작품을 할 때 예쁘게 보이려고 한 적은 없다. (웃음) <나는 행복합니다>를 찍으면서도 수경이 자체가 되야겠다 했고, 정말 연기를 잘해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찍었기 때문에 아무 생각이 없었다. 내 외모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웃음)

최근 현빈은 탕 웨이와 함께 김태용 감독이 리메이크하는 <만추>에 캐스팅 되었는데, 영화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현빈
: <만추>는 시애틀 올로케이션으로 촬영될 예정이다. 그래서 내내 미국에 있다가 이번 영화 때문에 잠깐 한국에 들어왔다. (웃음) 현재 계속 촬영을 준비 중이고, 12월부터 크랭크인한다.

영화의 제목처럼 최근에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있다면?
현빈
: 원래 작품을 찍을 때보다 준비하는 시간을 더 좋아한다. (웃음) 그래서 요즘에는 다음 작품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라 늘 행복하다.
이보영: : <나는 행복합니다>를 찍고 나서 든 생각이 참 난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영화를 찍은 후에 살아있다는 것 자제가 행복했다.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소소한 것들에 모두 행복을 느끼며 살고 있다.

글. 이지혜 (seven@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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