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야인들이 예언한 2012년 지구 종말론은 사실 새로울 게 없는 소식이다. 노스트라다무스가 1999년에 ‘하늘에서 공포의 대왕이 내려온다’고 했듯이, 1999년 휴거설을 믿었던 수많은 사이비 종교단체들이 그랬듯이 종말론은 누군가에게는 공포를 불러일으키지만 누군가에게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인류의 마지막 날로 예고한 해가 가까워질수록 각종 예언서들이 등장했고, 올해 역시 그렉 브레이든의 2012년 종말론을 다룬 저서들이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다. 근거가 희박한 불안 심리를 자극해 돈을 벌 수 있는 이 거대한 시장의 총아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이 이번에는 마야인들의 예언을 떡밥으로 들고 나왔다.

지난 3일 영등포 CGV 스타리움에서 공개된 영화 <2012>에서는 <인디펜던스 데이>, <투모로우> 등 주기적으로 지구 종말에 대한 영화를 내놓은 감독의 특기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세계 최대 크기의 스크린에서 상영된 것에 걸맞게 전 세계 곳곳을 시원하게 때려 부수는 공정은 한층 더 전방위적이다. 태양의 흑점 폭발이 야기한 지구 자기장의 변화와 온도 상승은 지진으로 이어져 캘리포니아를 초토화 시키고, 카메라는 옐로우 스톤 국립공원의 화산 폭발을 <내셔널 지오그래피>의 심정으로 담아낸다. 워싱턴이 화산재로 뒤덮이기 무섭게 덮쳐온 해일은 백악관을 집어삼키고, 브라질 코르코바도 언덕의 그리스도상은 폭삭 주저앉고, 히말라야 산맥은 흔적도 없이 물로 뒤덮인다.

하늘이 무너져도 아빠만 있으면 살 수 있다


지구가 왜 파괴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지구과학적 강의가 지루하게 이어지는 초반부를 지나 겨우 시작된 인류 재앙의 과정은 사실 영화 <2012>가 가진 미덕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구 마지막 날에 대응하는 각국의 조치나 정보 은폐도 감독의 전작에 비해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고, 어떻게든 살아남고자 고군분투하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도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46개국이 참여한 극비 프로젝트를 ‘우연히’ 알아버린 커티스(존 쿠삭) 가족은 똑같이 살고자하는 다른 사람들의 목숨을 발판 삼아 충분히 예상가능하게 생존 티켓을 획득한다. 오히려 인류 멸망보다 공포스러운 것은 살아남은 자들의 면면이다. 전 지구적인 침몰에 대비해 미국이 주도적으로 만든 ‘노아의 방주’에 10억 유로를 지불하고 승선한 60억 인류 중 10만이 채 안 되는 부호들. 그리고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 동안 함께 고생한 주인공 무리 중에서 결국 그 방주에 몰래라도 탑승할 수 있었던 이들은 결혼이라는 과정으로 만들어진 혈연집단의 구성원들뿐이라는 사실이 오히려 오싹하다.

글.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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