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뿐 아니라 홍콩, 말레이시아, 인도, 필리핀 등 아시아의 언론매체들이 참석해 아시아 스타로서의 비의 위치를 새삼 확인할 수 있었던 <닌자 어쌔신>의 아시아 정킷 기자회견이 9일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렸다. 기자회견에 앞서 지난 7일 공개된 영화 <닌자 어쌔신>에서 비는 끊임없이 적을 썰고, 베고, 자르지만 심장의 온기를 잃지 않은 ‘토막살인 기계’였다. 자신을 살인병기로 만든 닌자 집단에 복수를 하는 최고의 암살자 라이조가 되어 선보이는 비의 액션은 이미 공개된 예고편보다 훨씬 더 높은 강도를 자랑했다. 여기에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받은 피와 살점, 골수가 튀는 잔인한 난도질의 결과물은 슬래셔 무비 못지않다.

이 영화의 제작자이자 <매트릭스>의 감독으로 더 유명한 래리 워쇼스키와 앤디 워쇼스키가 입을 모아 “레인이 없었다면 완성할 수 없었던 영화”라고 할 만큼 <닌자 어쌔신>은 온전히 주연 배우 비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워쇼스키 형제와 조엘 실버 등 쟁쟁한 제작자들과 함께 첫 할리우드 주연작을 만들어낸 비 또한 스스로 “이제부터가 진검승부”라고 밝히며 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다음은 11월 26일 개봉을 앞두고 가진 기자회견 내용이다.

오늘 공개된 메이킹 필름에서 근육 트레이닝에 따른 비포앤애프터 사진까지 선보였다. <닌자 어쌔신> 전에도 좋은 몸을 가졌다고 생각했는데, 사진을 보니까 지금과는 비교가 안 되더라. (웃음) 훈련 과정이나 촬영이 고달팠을 것 같은데.
: 일단 지금은 영화를 하면서 만든 근육은 없어졌다. (웃음) 하지만 훈련 과정에서는 정말 노력을 많이 했다. 늘 이를 악물고 열심히 했지만 그 때는 정말 죽기 살기로 했다. 와이어도 몸의 중심만 잡아주는 정도로 도움을 받았고, 스턴트도 크게 다칠 것 같지 않은 상황이라면 90% 이상을 직접 소화했다. 그래서 몸을 가볍게 만들려고 노력했고, 그 결과 체지방을 다 빼냈다.

강도 높은 액션 신을 직접 소화하다보면 부상도 많았을 것 같은데.
: 많이 다치긴 했지만 아주 보람 있는 작업이었고, 열심히 했다. 다행히 부러지진 않았지만 찢어진 자국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 다 영광의 상처다. (웃음)

“아침마다 안티팬들의 글을 보며 힘을 얻었다”

그렇게 육체적으로도 힘들다보면 정신적으로도 한계를 느낀 순간이 있을 것 같다. 어떻게 극복해냈나?
: 사실 힘들 때마다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다시 아시아로 돌아가서 열심히 콘서트하고 한국에서 드라마나 영화 찍고 그렇게 살고 싶었다. 그럴 때마다 도대체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하나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자존심 때문에 포기하지 못하겠더라. 스태프들이 날 많이 약올렸다. (웃음) 아령을 들 때도 100kg짜리를 들면 가볍다고 “맷 데이먼, 브래드 피트 다 가르쳤지만 니가 제일 못하는 거 같아” 이런 식으로 자극해서 독기가 올랐다. 나중에는 내가 하는 동작들과 할리우드의 액션영화, 이소룡이나 성룡의 영화를 수없이 보면서 연구했다. 액션에 있어서 라이조만의 특징이 있어야 하니까. 또 아침마다 스크랩 해놓은 기사들을 보면서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미국진출에 대해 왜곡된 기사나 안티들의 글을 보면서 힘을 냈다. (웃음) 설령 이 시도가 실패일지라도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 나의 의무였다.

극중에서 완벽한 닌자 암살자로 묘사되는 라이조와 비 본인이 비슷한 점이 있는지?
: 나는 그렇게 내성적이거나 멋지지 않다. (웃음) 말하는 걸 좋아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라이조처럼 혼자 숨어서는 못 지낼 것 같다. 라이조와 비슷한 점은 없고 비슷해서도 안 될 거 같다. 목표를 정하면 끝까지 해야 하는 건 좀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웃음)

첫 할리우드 진출작 <스피드 레이서>에 비해 대사량이 굉장히 늘었다. 영어 대사를 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진 않았나?
: 조연에서 주연으로 갔으니까 대사가 많아진 것은 당연하고, 고마운 일이다. 그래서 늘 옆에 영어 대사를 도와주는 코치가 있었다. 사실 대사보다도 제임스 맥티그 감독이나 워쇼스키 형제가 원했던 것은 내면 연기였다. 스크린 안에서 눈썹이나 표정의 움직임을 디테일하게 잡기 위해 클로즈업을 많이 썼으니까. 미묘한 표정을 통해 내면을 드러내는 것이 더 힘들었다.

<스피드 레이서>에 이어 워쇼스키 형제와 두 번째로 작업하는 작업을 어땠는가?
: 워쇼스키 형제는 상상력이 굉장히 풍부하다. 그리고 그 상상력을 현실에서 구현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실제로 내게 했던 말 중에서 안 지켰던 게 없다. 얘기했던 화면들을 상상에서 필름으로 꺼낼 수 있는 능력,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한 점이 놀라웠다. <스피드 레이서>와 다르게 이번에는 제작자였지만 그들은 내게 있어 최고의 감독들이다.

“언젠가는 박스오피스에서 1위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스피드 레이서>가 흥행에선 성공하지 못했는데 <닌자 어쌔신>의 흥행성적은 어느 정도로 예상하고 있나?
: <스피드 레이서>는 첫 회 박스오피스 2위까지 했지만 기대했던 것만큼은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진 못해서 아쉬웠다. 그러나 그 때는 욕심이 없었다. 기본적으로 할리우드 영화의 주조연으로 이름을 올렸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그리고 그 작품 하나로 할리우드의 관계자들이 나를 알게 되었고 더 많은 기회가 주어졌다. 그래서 <닌자 어쌔신>도 할 수 있었던 거고. 이번에도 흥행에 대해서는 기대를 하고 있지만 첫 술에 배부를 순 없지 않나? 흥행에 상관없이 얻는 게 많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청소년 관람불가에다가 장르물이니까 액션 마니아들에게 열렬한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 같고. 이렇게 계속 문을 열 번이건 스무 번이건 두드리다보면 언젠가는 박스오피스에서 1위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웃음)

말했듯이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을 정도로 굉장히 잔혹한 장면들이 많다. 기존의 비의 팬들과 영화 관객들이 충돌할 수 있을 것 같다.
: 처음부터 워쇼스키 형제가 주문했던 한 가지가 “팝스타 비는 잊어라. 인간 정지훈을 잊어라. 이제부터 너는 격투기 선수고, 킬러다”였다. 8개월을 그렇게 살았다. 누굴 만나도 자신이 있었고, 영화가 끝나면 격투기 대회에 나가야 될 것 같고. (웃음) 일단 소녀팬들이 영화를 못 보니까 다행이고, 오히려 영화를 보고 나면 남성팬이 많이 생길 거 같다. 물론 기존의 여성팬들도 <닌자 어쌔신>을 보며 스트레스를 풀 수 있을 것이다. 알고 있던 비의 이미지를 상상하기 보다는 영화를 보면 또 다른 매력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나조차도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장면도 가수 비나 정지훈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만족할 수 있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속편에 대한 암시가 어느 정도 있던데, 이후 시리즈에 대한 계획이 궁금하다.
: 담벼락 위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라이조의 눈빛이 무언의 포효로 표현되는 것이 마지막 장면인데,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계약은 몇 편 더 했지만 이번 영화의 반응이 어떻게 나올 지에 따라 결정될 것 같다. 일단은 좋은 느낌이다.

제작자인 조엘 실버가 “엄청나게 사랑 받는 배우가 될 것”이라고 칭찬하는 등 스태프들이 비의 열정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더라. 영화를 시작하기 전에 어떤 기대가 있었기에 그렇게 열정적으로 임할 수 있었나?
: 영화를 찍을 때 동기부여는 사실 어머님이다. 어머니는 십 수 년을 매일 새벽에 나가셔서 저녁 늦게까지 일하시는 생활을 하셨는데 내가 이 정도도 못 견디면 배부른 거란 생각을 많이 했다. 처음 미국에서 사람들을 만났을 때 그들이 말한 아시아인의 성공 가능성은 10% 미만이었다. 그런데 워쇼스키가 옆에 있으니까 사람들이 날 눈 여겨 보게 됐고, 조엘 실버가 뒤에 있으니 다른 제작자들이 봐주기 시작했다. 내 인생에서 번쩍하는 세 번의 순간이 있었는데, 첫 번째가 진영이 형을 만났을 때, 두 번째가 워쇼스키 형제를 만났을 때, 세 번째가 <닌자 어쌔신>이다. 현재 내 옆엔 최상의 팀들이 포진하고 있고, 이제는 정말 해볼 만한 게임이 되었다. 이 영화가 흥행이 되든 안 되든 할리우드에서 이름을 많이 알릴 수 있을 것 같다. 드디어 이제 진검승부다.

글. 이지혜 (seven@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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