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서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던 여자아이가 있었다. 그러나 원래 노래를 부른 소녀 대신 더 예쁜 아이가 개막식에서 립싱크를 했음이 밝혀져 충격을 줬다. 외모 지상주의가 불러일으킨 이 사건에 어이없어 한 이들은 한두 명이 아니었고, 일본의 중견 드라마 작가 오오이시 시즈카도 마찬가지였다. 립싱크 소녀로 인해 품게 된 ‘중요한 건 외모가 아닌 마음이라는 건 역시 말 뿐이지 않을까?’라는 작가의 물음은 못생긴 여자와 잘 생긴 남자의 좌충우돌 러브 스토리로 이어졌다. 한국의 감독과 일본의 작가들, 그리고 한류스타들이 만나 탄생시킨 텔레시네마 프로젝트의 첫 번째 영화 <내 눈에 콩깍지>(삼화네트웍스 제작, 이장수 감독)가 4일 왕십리 CGV에서 공개되었다.

미남인데다 능력까지 완벽한 건축가 강태풍(강지환)은 교통사고로 일시적인 시각장애를 얻는 대신 꿈에 그리던 ‘여신’을 만나게 된다. 미녀가 추녀로, 추녀가 미녀로 보이는 이틀 동안 최악의 진상녀 왕소중(이지아)을 사랑하게 된 것. 그러나 왕자님의 사랑을 받는 못생긴 신데렐라라고 해서 왕소중의 마음이 비단결 같냐면 그건 또 아니다. “남자는 아름다워야 한다”는 지론을 가진 왕소중 역시 외모 지상주의자에 겁 없는 다혈질이다. 물론 콩깍지로 뒤덮인 강태풍의 눈에는 “미녀인데다 내면까지 아름다운 여신”이다. 그러나 시각장애의 마법이 풀리고도 왕소중은 백마 탄 왕자님의 말에서 내팽개쳐지지 않을 수 있을까?

강지환과 이지아의 어떤 모습이라도 사랑한다면


“당신은 내가 꿈에 그리던 여신이오.” “사랑스럽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이 날 위해 남겨둔 선물이겠죠.” 등 이제는 할리퀸 로맨스에서나 만날 수 있는 고전적인 닭살 멘트를 눈썹하나 깜짝하지 않고 읊는 강태풍과 추녀와 미녀를 오가지만 그 차이가 극명하지 않아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왕소중은 만화에서 튀어나온 것 같다. <공명의 갈림길>, <한도쿠>, <퍼스트 러브> 등 사극, 멜로, 휴먼드라마에 이르는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밀도 높은 이야기를 선보인 오오이시 시즈카 작가는 외모와 사랑의 상관관계를 코미디로 풀어나가지만 배꼽잡고 웃을 타이밍도, 사랑에 대한 고민을 할 지점도 찾기가 힘들다. <천국의 계단>, <아름다운 날들> 등에서 눈물이 절절한 멜로드라마로 큰 인기를 얻었던 이장수 감독 또한 마블 코믹스를 연상시키는 화면 분할이나, 다양한 특수효과들로 변신을 꾀하고 있으나 화면은 더러 발랄하고, 대부분 산만하다. 결과적으로 영화는 능력 있는 작가와 감독이 참여했지만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 서걱거린다. 이미 영화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에서 본 듯한 결말 또한 이야기의 마무리라기보다는 황급히 봉합한 혐의를 지우기 어렵다.

그러나 이 한 편으로 텔레시네마 프로젝트 전체를 속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11월 5일 개봉하는 <내 눈에 콩깍지>를 시작으로 탑과 승리 주연의 <19-Nineteen>, 영웅재중과 한효주 주연의 <천국의 우편배달부> 등 총 8편의 텔레시네마들이 매주 한 편씩 개봉하기 때문이다. 국내 상영이 끝난 텔레시네마들은 1월 일본에서 개봉 후, 5월부터는 아사히 TV <명화극장>을 통해 방영된다.

글.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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