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건과 이병헌이 같은 날 레드카펫을 밟던 밤, 그 때부터 예상하긴 했습니다. 올해 제 14회 부산국제영화제(이하 PIFF)가 그리 만만치만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박찬욱봉준호, 장진김지운, 허진호가 해운대를 밟고 브라이언 싱어와 지아 장 커, 차이밍량이 관객들과 대화를 나누는 풍경. 틸다 스윈턴이 강림하고 기무라 타쿠야가 현실이 되어 저벅저벅 눈앞으로 걸어오던 순간, 우리는 PIFF가 쌓아온 지난 14년의 노력이 그저 모래성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그간 TV와 음악에만 집중하던 <10 아시아> 편집진에게도 열흘간 부산으로의 영화여행은 특별한 기행이었습니다. 1박 2일이라면 까나리 복불복도 하루의 이벤트겠지만 9박 10일의 장기전은 남다른 각오를 요하는 마라톤이었으니까요.

트위터도 모르던 기자들이 ‘미투데이’ 중독현상을 일으킬 만큼 사소한 영화제 소식과 프리미어 리뷰, 심지어 움직이는 ‘부산 ZAGAT 리포터’라고 할 만큼 맛 집 소식을 전달했습니다. 그 순간들을 거쳐 오며 저는 잠시 이 시대의 잡지란 무엇인가를 생각했습니다. 군림하고 강의하는 언론이 아니라 공유하고 함께 즐기면서 공유하는 미디어, 처음부터 그리 생각했지만 새삼스럽게 깨달은 <10 아시아>의 정체성은 그렇게 해운대 모래사장에서 발견한 진귀한 진주 같은 진리였습니다. 해운대 시장골목의 분식세트, 가을전어, 속 시원한 대구탕, 자갈치 곱창골목을 지나 결국 영화제 폐막을 앞 둔 마지막 날 찾은 곳은 영화 <해운대>에서 하지원이 운영하던 미포의 끝 허름한 횟집이었습니다. 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의 명소, 유명해졌다면 더 없이 유명해졌을 횟집. 그러나 그곳엔 그 흔한 배우들 사인이나 기념사진도 발견 할 수 없었습니다. 대신 밤 12시가 넘어 마감을 끝내고 찾아간 기자들에게 “아이고, 느무 늦어서 밥이 엄써서 우짜노, 냄긴 매운탕이라도 좀 머거라, 마이 퍼주께”라며 외할머니처럼 챙겨주시던 바다 할머니들 덕에 마음이 푸근해 졌습니다. 이런 걸 진심에 의한 중독이라고 하나요. 아무래도 15살을 맞이하는 2010년의 부산도 <10 아시아>는 찾아 갈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안녕, 부산. 보슬비가 소리도 없이 이별 슬픈 부산 정거장아.

글ㆍ사진. 부산=백은하 (one@10asia.co.kr)
사진. 부산=채기원 (ten@10asia.co.kr)
사진. 부산=이진혁 (eleven@10asia.co.kr)
편집. 장경진 (thre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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