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회 부산국제영화제 (이하 PIFF) 김동호 위원장에 대해서는 전설처럼 떠도는 사실들이 있다. 어느 해인가 영화제 기간 동안 자원봉사단 백여 명과 일일이 폭탄주를 한 잔씩 먹고도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는 일화. 그리고 그는 인터뷰든 사적인 만남이든 만나는 모든 이에게 지위 고하, 나이 고하를 막론하고 존대를 한다. 사례에 대한 답례라도 선물은 양주 한 병도 일절 받지 않는다. 5천여 영화인들 경조사를 일일이 다 챙겨서 참석하지만 정작 본인은 자식들의 결혼식과 부모의 상을 몰래 치렀다. 청렴하고 기품 있는 어른을 찾기 힘들어, 그의 사례들이 그대로 전설이 되어버리는 김동호 위원장.

어느 해보다 화려하고 북적였던 PIFF가 휘청거리거나 흥청망청 하지 않을 수 있었던 데에는 무엇보다 그와 같은 수장의 역할이 컸다. 정치적인 공세와 PIFF 흔들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 어느 때보다 내실 있는 영화제를 다질 수 있었던 것은 “진심을 보여주면 오해는 풀리기 마련”이라는 우직하지만 쉽게 실천하기 어려운 김동호 위원장의 진심에도 기인하고 있다. 주변의 만류로 연장하고 또 연장한 그의 임기가 이제 1년을 남겨두고 있는 지금, 김동호 위원장을 만났다. 이제 내년을 마지막으로 김동호 위원장이 세계의 거장 감독이나 스타 배우들과 나란히 서있는 모습을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임기를 앞두고도 레임덕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PIFF에 대한 자신감으로 당당한 김동호 위원장과 폐막을 하루 앞두고 대화를 나눴다.

그 어느 해보다 화려했던 PIFF도 오늘이면 이제 막을 내린다. 임기를 이제 1년 남겨 두었는데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김동호:
우선은 운영 면에서 사고 없이 잘 진행이 됐고, 특히 해외에서 정상급의 감독들과 배우들이 찾아와준 것이 인상 깊었다. 물론 국내에서도 많은 배우들이 왔고. 이렇게 다양한 국내외 게스트들이 참여했기 때문에 과거 어느 때보다도 기분이 좋았다. 임기와는 상관없이 감사하는 마음 뿐이다.

올해 영화제를 시작하면서 온라인 필름마켓이나 3D 워크숍 등 처음으로 시작한 행사에 중점을 뒀다고 했는데, 그 부분의 성과나 진행상황은 어떤가?
김동호:
3D 워크숍이나 컨퍼런스들이 상당히 밀도 있게 진행 됐다. 금년에는 두 프로젝트 모두 새롭게 런칭을 한다는 개념이라면 내년, 내후년 가면서 본격적으로 가동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후지와라 타츠야가 이번 영화제에서 술을 제일 잘 먹었다”

세계적인 경기침체로 국내영화제들은 물론 베를린, 칸 등 해외의 유수 영화제들도 규모를 10-30% 줄이고 있다. 그런데 올해 PIFF는 작년 대비 예산을 24억여 원 늘리는 등 그 어느 때보다도 규모가 커졌다. 거기에 화려한 게스트들까지 더해져, 증액된 예산이 전부 게스트 섭외에 쓰인 것 아니냐는 우스개소리도 나왔다.
김동호:
실제로도 주로 게스트 초청에 예산이 많이 소요되었다. (웃음) 원래 초청에 들어가는 비용이 제일 많기 때문에 거기에 더 많이 배정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예산도 예산이지만 그들을 몇 년 동안 계속 만나면서 친분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렇게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바탕에서 초청을 한 거니까 수락해 준거지.

기무라 타쿠야, 조쉬 하트넷, 트란 안홍, 다리오 아르젠토 등 할리우드 스타부터 거장 감독까지 거대한 게스트즐 중에서도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게스트가 있는지?
김동호:
코스타 가브라스나 다리오 아르젠토 같은 거장들은 좀처럼 한국에서 뵙기 어렵고,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기에 의미가 남달랐다. 영국 배우인 틸다 스윈튼 같은 경우도 굉장히 품격 있는 세계적인 배우였다. 그런 분들이 오셔서 좋았고, 영화인이 아닌데도 프랑스의 전 문화부 장관과 현 무역장관, 프랑스 국립영화원 회장도 부산을 찾아줘서 고맙게 생각한다.

후지와라 타츠야의 경우 어제 <퍼레이드> 오픈 토크에서 김동호 위원장과 폭탄주를 먹었다고 밝히기도 했는데, 올해 폭탄주 회동 성적은 어떤가?
김동호:
아시다시피 술은 3년 10개월 전에 끊어서 전혀 먹지 않는다. 그저 폭탄주를 제조할 뿐이다. (웃음) 보통 PIFF가 열리는 기간에는 새벽 한두 시까지 술자리를 다닌다. 후지와라 타츠야의 경우는 원래 <퍼레이드>의 감독 유키사다 이사오와 저녁을 먹고 있었는데, 우연히 합석하게 되었다. 배우가 직접 우리 쪽으로 왔고, 처음 만난데다가 참 좋은 사람이더라. 그래서 폭탄주를 돌리기 시작했는데 술을 잘하더라. 이번 영화제 기간 동안 영화인 중에는 후지와라 타츠야가 제일 많이 마신 것 같다. (웃음)

내년에도 이렇게 화려한 게스트를 기대해도 될까?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 같은 경우는 4년 전부터 섭외에 공을 들였다. 현재도 작업 중인 특급 게스트들이 있을 것 같은데.
김동호:
물론 프로그래머들이 선정하는 영화에 따라서 초청하는 감독이나 배우들이 달라지긴 하겠지만, 내년에도 올해와 같은 수준의 게스트들을 모셔와야지. 또 타이밍도 중요하다.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 같은 경우도 오래 전부터 부산에 와달라고 했는데, 계속 영화와 함께 방문하고 싶다고 미루고 있는 상태였다. 다행히 올해 베를린영화제 폐막작으로 <낙원은 서쪽이다>가 선정되면서 영화와 함께 올 수 있었다. 쿠엔틴 타란티노도 본인의 일정을 봐야하지만 2년째 만나서 얘기를 하고 있다.

화려한 게스트들 뿐만 아니라 올해는 <하얀리본>, <아이 엠 러브> 등 유난히 상영작들의 퀄리티도 높았다. 그러나 이런 성과들과는 별개로 영화제는 개막하기 전부터 여러 가지 공세에 시달려왔다. ‘좌파 영화제’라는 색깔론부터 시작해서 다른 영화제들의 정치적인 견제까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김동호:
색깔론에 일일이 대응하기보다는 실제 PIFF가 그렇지 않기 때문에 그저 우리는 영화제를 준비할 뿐이었다. 정치적인 공세나 이런 것들도 구체화 된 건 아니고. 그런 공격들이 실제로 많은 비판을 받아왔기 때문에 우리로선 영화제만 최선을 다해서 가장 좋은 영화제로 만들고자 했다. 많은 국민들로 하여금 PIFF의 실상을 알리는데 주력하면 이런 저런 오해들은 자연히 해소되기 마련이니까 영화제에만 전력투구했다.

“폐막식 이후에도 일정은 계속된다”

그러나 국내에서 개최되는 국제영화제들만 해도 벌써 10개가 넘는다. 작은 나라 안에서 프리미어 다툼이나 다방면으로의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김동호:
물론 한 영화를 놓고 경쟁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PIFF가 이미 국제적으로 우위권에 올라가 있고 아시아에서 가장 대표적인 영화제로 되어있기에 한 영화를 놓고 서로 초청할 때 그 영화의 제작사나 배급사의 입장에서 보면 당연히 부산으로 올 수 밖에 없다. (웃음)

해운대 센텀시티에 CGV 10개관이 개관하면서 이제 영화제의 중심이 완전히 해운대로 옮겨온 느낌이다. 그러나 남포동 특유의 축제 분위기나 정취가 없어서 아쉽다는 의견도 많이 들리더라.
김동호:
예전에는 남포동에 극장이 몰려있었지만 PIFF가 열린 지도 14년이 지나면서 남포동의 극장 시설이 열악해졌다. 그쪽의 영화관을 다 합쳐도 6개관밖에 쓸 수 없기도 하고. 그러나 영화 편수가 점점 늘어나고 영화제 규모가 확대되면서 멀티플렉스를 쓰지 않을 수가 없다. 상영작들을 관객에게 선보이려면 총 37개관이 필요한데, 그렇게 많은 수의 스크린을 남포동에선 수용할 수가 없다. 해운대에는 CGV와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각각 10개관을 가진 멀티플렉스가 3개가 있으니까 자연히 PIFF의 중심이 이쪽으로 올 수 밖에 없다.

2012년 16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된 두레라움이 완공되면 PIFF는 또 한 번의 변화를 맞을 것 같다. 두레라움 시기의 PIFF는 어떤 모습일까?
김동호:
남포동에서 해운대로 중심이 옮겨진 것보다 더 많이 바뀔 것이다. 우선은 비가 오더라도 전천후 행사가 가능한 4000석의 반 야외 공연장이 있으니까 비 걱정 안하고 개막식을 할 수 있다. 개막작 상영 때 관객들이 추워하는 것도 다소 줄일 수 있을 것이고. (웃음) 거기에 그 일대에 또 다른 큰 극장들이 들어선다. KNN 스튜디오, 동서대학교 영상센터, 영화진흥위원회 등의 공간이 생길 거라서 두레라움에서만도 충분히 영화제가 소화될 수 있을 것이다.

통역이나 특급 게스트들의 행사 진행시 미숙한 부분이 눈에 띄더라. 기무라 타쿠야, 조쉬 하트넷, 이병헌이 공동으로 진행한 기자회견 같은 경우는 일반 팬들도 통제가 안 돼서 아수라장이었다. 열네 번째 PIFF를 하면서 아쉬웠던 점은 없었나?
김동호:
갈라 기자회견 같은 경우는 장소가 협소해서 문제가 발생했던 것 같다. 그런 부분은 기자 분들이 이해를 해 달라. (웃음) 사실 영화제 개최 전부터 신종 플루 때문에 지방의 축제들은 거의 대부분 취소됐고, 야외 집회 같은 것도 금지되는 분위기였다. 신종 플루가 가장 큰 의외의 복병이었다. 그래서 우리도 야외 상영장에 관객이 올해는 그리 많지 않았다, 전체적인 관객 수도 작년보다 줄었고. 예상은 했지만 그런 점이 많이 아쉬웠다.

이재용 감독의 <정사>, 장률 감독의 <이리>, 클레르 드니 감독의 <침입자>까지 다수의 영화에 출연한 배우이자 (웃음) 감독의 꿈도 오랫동안 밝혀왔는데, 올해 PIFF에서 ‘부산 프로젝트’ 영화의 프로듀서로 먼저 데뷔했다.
김동호:
원래 부산시를 통해서 영화제가 출자한 프로젝트라 PIFF가 5억 원을 출자하고, 창투회사에서 5억 원을, 나머지 5억 원은 해외에서 투자 받아야 한다. 그래서 당연히 프로듀서를 맡을 수밖에 없었고, 앞으로 ‘부산 프로젝트’는 별 걱정이 안된다. 장준환 등 참여한 감독들이 다 실력이 좋으니까 잘 만들리라고 생각하고, 투자를 유치하는 데도 그렇게 어렵진 않을 것 같다.

일 년 내내 전 세계를 떠돌고 살인적인 스케줄로 유명한데 폐막식 이후 일정은 어떻게 되나?
김동호:
폐막식 바로 다음날 도쿄국제영화제 개막식에 가야한다. 다녀와서 21일에는 조재현 씨가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는 DMZ 다큐영화제 전야제와 개막식에도 참여한다. 이후로도 일정이 계속 붙어있다. 뭐 계속이다 계속. (웃음)

글. 부산=이지혜 (seven@10asia.co.kr)
사진. 부산=이진혁 (el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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