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회 부산국제영화제(이하 PIFF) 폐막을 이틀 앞두고 어느 지역보다 높은 온도를 기록하던 부산의 수은주도 조금씩 낮아지고 있다. 그러나 잠잠하던 영화의 바다에 높게 물결치는 파고가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아이 엠 러브>의 두 주인공 틸다 스윈튼과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등장 덕이다. 이미 올해 베니스영화제에서 신인감독상 격인 오리종티상을 수상한 영화는, 14일 상영에 이어 관객과의 대화와 기자회견을 가졌다. 러시아에서 이태리의 재벌가문으로 시집 온 엠마(틸다 스윈튼)는 아들의 친구와 사랑에 빠지고, 남편은 경영권을 두고 아들과 반목한다. 그리고 미세하다 느꼈던 가족의 균열들은 어느새 철옹성 같던 레티가를 무너뜨린다. 장인의 손에서 탄생된 이태리 수제화처럼 영화가 진행될 수록 향기로운 가죽냄새마저 코끝에 느껴지는 <아이 엠 러브>는 무엇 하나 나무랄 것이 없다. 마치 레티가의 저녁 식사 만찬처럼 차례 차례 서브되는 연출, 연기, 음악, 미술은 어느 것 하나 미진하지 않고 영화의 진수성찬을 장식했다. 다음은 의 두 주역, 틸다 스윈튼과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기자회견 내용이다.

“영화 속 저택을 찾는 데만 2년이 걸렸다”

두 사람 모두 한국과 PIFF가 첫 방문인데, 소감을 말해 달라.
루카 구아다니노
: 영화제에서 <아이 엠 러브>를 공개하는 건 이번이 세 번째이지만 PIFF에서 상영하는 편집본은 최초로 공개되는 것이다. 베니스나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보여준 것은 상영 한 달 전에야 작업이 마무리가 되어서 아직 완전한 상태가 아니었다. 이렇게 최종적으로 완성된 상태로 관객에게 선보이는 것은 처음이다.
틸다 스윈튼: 한국에 오게 되어 기쁘다. 첫 방문이지만 오기 전부터 한국영화의 훌륭함 때문에 한국에 대해 알게 되었다. 특히 <아이 엠 러브>로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과 함께 오게 되어 개인적으로 더 기쁘다. 이전에도 영화를 두 편 함께 했는데 <아이 엠 러브>는 우리가 오랫동안 얘기해왔던 영화다. 11년 동안 함께 만들어 온 영화를 마침내 선보이게 되어 다행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 관객들의 열정적인 반응이 놀라웠다.

영화를 만드는데 어떤 어려움이 있었길래 11년이나 걸렸나?
틸다 스윈튼
: 무엇보다 말하고 싶은 것은 <아이 엠 러브>는 좀 속이는 것 같은 느낌의 영화다. 엄청난 부호들에 관한 영화지만 사실은 가난한 영화다. 이태리에선 잘 알려지지 않은 영화인이라면 영화를 하는 게 굉장히 힘든 일이다. 그래서 이런 프로젝트 자체를 진행시키는 것 자체가 매우 힘들다. 특히나 이런 야망으로 가득 찬 영화를 만드는 것은 어렵기 마련이다. 야망 있는 영화란 단순히 지난 몇 년간 유행했던 영화들을 재탕하는 게 아니고 어떤 경계를 벗어나거나 찾아보기 힘든 영화를 만드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선 돈이 많이 들기도 한다.

등장인물들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이 레티 가문의 저택이다. 그리고 영화 속 저택은 이태리의 재벌 가문 그 자체로 보일 만큼 훌륭하다. 원래 있든 건물을 섭외했든 세트를 만들었던 힘든 작업이었을 것 같은데.
루카 구아다니노
: 재정적인 문제 보다는 이미지의 문제가 더 컸다. 물론 돈도 문제지만 늘 문제가 되는 것은 일을 제대로 하는 것이다. 기존에 없었던 특이한 다른 것을 만드는 것이 가장 어렵다. 영화에 등장한 저택이 좋은 예인데, 밀라노나 북부 이태리 지역을 돌아다니며 수 년 간 집을 찾아다녔고, 2년 동안은 집에 대한 책을 보며 연구하기도 했다. 그래서 거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찾아간 집이 바로 영화 속에 나오는 곳이다. 처음 본 순간 압도당했고, 바로 이 집이란 걸 보자마자 알겠더라. 그래서 임대료가 아무리 비싸더라도, 이 집은 중요한 영화의 캐릭터 중 하나라고 회계사에게 강하게 주장했다. (웃음) 또 실력 있는 세트 디자이너가 저택을 박물관이 아닌 사람이 살고 있는 집처럼 보이게 했다. 직접 만든 소품을 배치하기도 했고.

“<아이 엠 러브>는 존 아담스가 허락한 유일한 영화”

영화는 균열을 조금씩 보여주다 마지막 순간에 심혈관이 갑자기 터질 만큼 감정을 고조시킨다. 거기에는 무엇보다 음악의 역할이 주효했다.
루카 구아다니노
: 촬영 중에 우연히 존 아담스의 음악을 들었다. 그는 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미국 작곡가 인데, 처음 저택을 발견했을 때처럼 아 이거다, 했다. 그래서 틸다와 함께 그를 찾아가서 “당신의 음악을 사량하게 됐고, 그 음악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부탁했다. 특히 말한 마지막 장면에서 아주 폭발적인 에너지를 보여준다. 엠마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느꼈으면 하는 장면이다. 할리우드의 경우 음악을 지나치게 사용하기도 하는데, 우리는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음악을 사용하려고 했다. 지난 2월에 영화를 런던에 가지고 가서 존 아담스를 만났는데, 아무 말 없이 영화를 보기만 해서 이젠 망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가 그러는 거다. 너무 아름답다고. 사실 그 장면을 촬영하는 데는 1시간 밖에 안 걸렸다. (웃음)
틸다 스윈튼: 우리의 영화와 음악과의 관계가 너무 깊었다. 그 음악 자체가 마지막 시나리오를 쓰는 데 너무 깊이 스며 들어있었기에, 존 아담스가 그의 음악을 쓸 수 있게 허락해줘서 정말 다행이었다. 그가 허락하지 않았으면 영화에서 음악을 모두 빼야했고, 바그너를 써야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특히 는 존 아담스가 영화 크레딧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게 허락해 준 최초의 영화라 자랑스럽다.

작년과 올해 같은 경우 로베르토 베니니 스타일이 아닌 영화들로 이태리 영화계가 다시 부흥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60년대 이후 오랜만인데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루카 구아다니노
: 문화는 마음과 정신을 위한 음식인데도, 요즘 이태리는 문화적으로 풍족하지 못하다. 그동안 이태리 영화에서 거장으로 불렸던 이들은 영화를 만들 때 전부 다 혼자서 작업했다. 가장 큰 이유가 자존심, 자만심, 그리고 누구와 연계되는 걸 싫어하는 태도 때문이었다. 로베르토 베니니 같은 경우도 영화인들과 공개적으로 싸우기도 했고. 그러나 영화인들끼리 반목했던 것은 그들의 성격이 그랬던 거지 산업 자체가 그렇진 않았다. 지금은 산업 자체가 자기중심적이고 편협하다. 미켈란젤로 파르마티라는 훌륭한 젊은 감독이 있는데, 그는 혼자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훌륭한 작품들을 많이 만들었다. 해외영화제에서도 많은 상을 받았고. 그러나 이태리 내에선 그를 전혀 모른다. 잘 모르겠다. 이태리 영화계에 속하고 싶지 않다. 조국이 싫어서가 아니라 이해가 안 된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태리 영화계에서 일어나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틸다 스윈튼: 예술에 있어서 국가적인 특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 동맹에 경계를 긋고 싶다면 그것은 수직보다는 수평적으로 그어져야 한다. 젊은 감독들의 감각에서부터 나오는 예술적인 영광을 국가적인 아이덴티티로 한정하려는 건 답답한 일이다. 국제적인 눈, 귀를 열고 있고, 인터넷도 있는 지금은 수평적으로 동맹을 맺을 수 있다. 그러면 전 세계에서 예술적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고, 자국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멘토를 만날 수 있다. 영화를 만들 돈이 없는 것 보다 루카가 말한 고립이 훨씬 더 무서운 것이다. 고립된다는 건 예술적으로 죽는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현재 지지받고 있는 한국영화들은 대단하다”

그렇다면 그러한 예술적인 기회를 찾기 위해 유럽, 할리우드 등에서 다양한 활동을 한 것인가? 그리고 어떤 작업 환경을 더 선호하는가?
틸다 스윈튼
: 운이 좋게도 처음 영화를 시작했을 때, 데릭 저먼이란 아티스트와 일하게 되어 9년 동안 7편의 영화를 같이 만들었다. 우리는 완전히 국제적으로 작업해서 자국에선 오히려 저평가됐다. 영화를 만들기 위한 돈은 전반적으로 영국 외의 국가에서 구했다. 우릴 지지한 관객들은 전 세계에 흩어져 있었고, 독일, 이태리, 일본 등으로 부터 지원을 받았다. 영국영화라고 부르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로. 바로 그런 환경이 말하자면 나의 고향이다. 그런 경험들이 날 오늘 이 자리에 서게 했다. 최근에 와서는 미국에서의 파티에 초대됐고 (웃음), 그걸 수락하기도 했는데 동질감을 느끼는 영화인들은 루카 같은 이들이다. 루카를 안지는 20년이 되었고, 이 영화는 11년 동안 같이 일해 왔는데, 굉장히 오랫동안 대화를 해왔고, 그것을 통해서 영화가 나오게 된다. 그런 작업이 좋다. 궁극적으로 나는 제작자이자 아티스트, 간혹 가다 작가에게 충고를 해주거나 아주 가끔 배우다. 배우 역할만 하는 경우는 나에게 제일 맞지도 않고 극히 드물다. 집처럼 느껴지는 작업 환경이 있는 유럽에 다시 오게 되어 편하다.

앞서 한국의 영화들을 통해서 한국을 알게 되었다고 했는데, 어떤 영화를 통해서 그것이 가능했나?
루카 구아다니노
: 지난 20년 동안 제가 한국영화는 두 개의 새로운 물결을 느끼게 했다. 여기서 굉장히 좋은 영화들이 많이 나왔는데 특히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은 한국영화에서 나오는 위대한 영감과 지식을 알려주었다. 그것을 존중하고, 아주 좋은 본보기로 생각한다.
틸다 스윈튼: 박찬욱 감독이나 <괴물> 같은 영화들이 가진 분위기나 톤을 보고 한국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와서 보니 개성이 강하고 미학적인 면이 강하다. 내가 모르고 있는 한국영화들이 무수히 많다는 것도 알고 있다. 내가 본 것은 주로 크게 개봉되거나 많이 알려진 영화들이니까. 그런데도 한국영화는 상업영화라 할지라도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봤을 때 굉장히 예술적이다. 미학적인 것을 말로 표현 할 수 없기에 그것을 표현하기위해서 영화가 있는 것인데, 히치콕의 말대로 감정은 스타일에 있는 것이지 이야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현재 지지받고 있는 한국영화들은 그런 면에서 대단하다.

글. 부산=이지혜 (seven@10asia.co.kr)
사진. 부산=이진혁 (el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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