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다리오 아르젠토인지 모르겠다.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슨 얘기를 하기 원하는지 알기 어렵다.” 10월 10일 부산 그랜드호텔에서 진행된 제 14회 부산국제영화제(이하 PIFF) 마스터클래스 다리오 아르젠토의 강연 중 나온 말이다. 하지만 사회자도, 질문자의 얘기도 아니다. 1969년 데뷔 후 꾸준히 ‘지알로’라는 자기만의 호러 문법을 확립해 꾸준히 마스터피스를 만들어온 이 거장은 자신 역시 아르젠토에 대해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말대로 “농담이 아니다.” 그저 장르물에 천착하는 듯 하면서도 선과 악에 대한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겨놓는 그의 작품 세계를 어떤 일관된 언어로 풀어놓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 자신이라 해도. 그래서 이번 마스터클래스는 잘 정리된 족집게 강의보다는 그와 함께 구불구불한 길을 걷는 “오랜 여행”에 가까웠다.

영화 평론과 작가를 거친 그는 자신의 “독창적” 시나리오를 직접 영화화하게 되었다. 비록 현재는 유수의 영화제를 누비는 세계적 거장이지만 당시 신인이었던 그에게 “돈을 구하고 사람들에게 신뢰를 얻어” 영화를 만드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등장한 작품이 ‘지알로’의 공식을 확립한 영화 <수정 깃털의 새>다. 이 작품으로 얻은 국내외적 명성은 그를 세계적 감독으로 만들어줬지만 다른 한편으론 “개인적 삶은 존재하지 않은 채 영화라는 소용돌이 안에 빠져” 사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길에 대해 후회하는 듯한 말을 한 번도 하진 않았지만 “어쨌든 그 때부터 영화를 어쩔 수 없이 만들어야 했다”며 자신이 걸어온 길이 어떤 명확한 신념과 철학에 의한 직선주로는 아니었음을 밝혔다.

카메라, 배우 그리고 음악과 사랑에 빠진 감독

그는 영화라는 소용돌이에 빠져드는 과정을 사랑에 비유했는데, 가장 먼저 사랑에 빠진 대상은 카메라였다. “카메라와 대화하고 여러 장면을 찍으며 촬영 테크놀로지에 빠지며 삶의 방식이 바뀌었던” 그는 카메라 무브먼트를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여기며 일종의 강박에 빠졌다. 심지어 두 번째 장편을 만들 때는 호텔방 옆에 자신의 카메라를 두기도 했다고. 그런 그가 두 번째로 사랑에 빠진 건 배우라는 존재였다. “첫 영화에선 배우가 조종하는 인형일 뿐이라 생각”했던 아르젠토는 몇몇 “소중한 배우”를 만나 “배우에게도 영혼이 있다는 걸 깨달았”는데 그 중 하나가 미국 배우인 하비 카이텔이다. 하비 카이텔은 아르젠토가 처음으로 같이 밥을 먹은 배우이기도 하다.

그렇게 조금씩 영화에 연관된 분야에 대한 관심을 확장해 나가던 그가 <아홉 개의 꼬리를 가진 고양이> 등의 작품에서 다분히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 음악에 관심을 가진 건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다. 엔니오 모리꼬네라는 또 다른 거장과 작업을 하던 그는, “거기서 벗어난 느낌”을 찾기 위해 브라이언 이노와 고블린 등의 뮤지션과 작업하며 영화의 색채를 다양하게 만들었다. 말하자면 그런 연관 분야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을 통해 그의 작품 역시 확장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그림에도 관심이 많은 그는 “프로이트의 파르테논 신전에 대한 에세이를 읽고서” 카라바조의 <메두사>를 보고서 병에 걸리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담은 <스탕달 신드롬>을 찍기도 했다.

영화 촬영을 위해 큰 저택에서 벌레를 일부러 기른 이야기부터, 영화와 연관된 영상, 색채, 음악에 대한 관심, 그리고 자신은 “평화와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라는 것까지 밝힌 그의 강연은 비록 구불구불하지만 그래서 더 매력적인 길을 걷는 산책과도 같았다. “이제 더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옷을 벗는 것밖에 없다”는 그의 마지막 말처럼 그 산책은 다리오 아르젠토라는 미지의 땅을 이해하기에 가장 좋은 방식이었을 것이다.

글. 부산=위근우 (eight@10asia.co.kr)
편집. 장경진 (thre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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