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회 부산국제영화제(이하 PIFF)가 열리고 있는 부산에서 택시기사들과 대화를 해본 사람이라면 부산 사람들이 그저 롯데 야구의 역사에 대해서만 꿰고 있는 것이 아니라, 부산 영화 산업에 대해서도 상당히 해박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오랜 시간 쌓여온 영화 도시 부산의 역량을 보여주는데, 10일 센텀시티 신세계 백화점에서 진행된 <부산 프로젝트>(가칭) 제작발표회는 그러한 역량이 한층 진일보한 단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이번 발표회에는 연출을 맡은 장준환(한국), 유키사다 이사오(일본) 감독, 이번 영화로 생애 최초로 영화 프로듀서에 도전하는 김동호 PIFF 집행위원장, 제작사 발콘의 오석근 대표, 그리고 태국 파이브스타 프로덕션의 압히라디 람퐁폰 프로듀서가 또 한 명의 연출자인 위싯 사사나티엥(태국) 감독을 대신해 참석했다.

앞의 세 감독이 부산에서 펼쳐지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담는 <부산 프로젝트>는 올해 12월부터 내년 3월까지 제작해, 연초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봉준호 감독이 참여했던 <도쿄>나 이와이 슌지가 참여한 <뉴욕, 아이 러브 유>처럼 각국 감독이 특정 도시를 배경으로 자신들만의 해석을 담아내는 옴니버스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그 자체만으로는 신선한 시도라고 하긴 어렵다. 하지만 14년 동안 국제 영화제의 무대가 되고, 오랜 시간 쌓인 스튜디오 인프라와 해운대라는 천혜의 조건 덕에 ‘부산에서 촬영하면 대박’이란 속설까지 만들어낸 히스토리의 연장선에서 바라본다면 “아시아 중심도시로의 도약을 위한 프로젝트”(김동호)라는 설명에 쉽게 수긍할 수 있다. “이런 프로젝트를 주최하는 것이 서울이 아닌 부산의 제작사라는 것”(오석근)의 의미는 그래서 각별하다. 또한 아직 젊고 가능성이 풍부한 감독들의 참여는 “부산 특유의 다이내믹한 느낌”(유키사다 이사오)이 어떻게 영화 안에 드러날지 기대하게 만든다. 과연 “해운대와 남포동 밖에 몰랐던”(장준환,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들은 역시 딱 그 정도로만 부산을 알고 있는 관객들에게 부산의 온전한 매력을 전해줄 수 있을까.

영화 소개

장준환 감독
“사랑이란 주제를 생각하다보니 큐피드가 생각 나더라”는 장준환 감독은 자신을 큐피드라 믿는 남자의 이야기 를 준비 중이다. 국가대표 1순위에 꼽힐 정도의 양궁선수였던 재림은 실연의 아픔 때문에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가 ‘전국 큐피드 연합회’ 회장이라는 사람을 만나 부산 지역 큐피드로 활동하게 된다. 는 그 임무를 다하기 위해 진정한 사랑을 찾아다니는 과정과 황금화살을 쏘기 전 주저하는 모습을 통해 과연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지 질문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위싯 사사타니엥 감독
“처음에는 호러를 준비했지만 반응이 좋지 않을 것 같아서” 방향을 선회한 위싯 사사타니엥 감독은, 하지만 호러 못지않게 기묘하고 상상력이 풍부한 스토리를 제시했다. 로 명명된 이 작품은 기밀작전을 위해 70년대 부산에 파견된 스파이 Iron Pussy가 겪는 초현실적 이야기를 그린다. 평소에는 평범한 남자지만 미용실에서 요염한 여성 요원으로 변신하는 Iron Pussy라는 존재부터 황당하지만, 부산에서 만난 사랑이 자신의 암살 대상인 걸 알고 소주를 마시다 필름이 끊겨 깨어보니 40년이 지났더라는 설정은 영화 제작 전부터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
“다른 두 감독이 기상천외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라 3개의 시놉시스 중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대한 고전적인 이야기”를 고른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이 준비 중인 작품은 다. 부산에서 세계종말의 남녀 간의 사랑을 주제로 한 영화를 촬영 중인 촬영감독 용수가 해안 절벽에서 우연히 어떤 여자를 보고, 그 이후 그녀와 닮은 자칭 ‘카모메’란 여자와 만나며 겪는 이야기를 담았다. ‘만남’이 부산에서 느끼는 가장 큰 감정이라는 감독은 과연 어떤 방식으로 그 설레는 순간을 담아낼 수 있을까.

글. 부산=위근우 (eight@10asia.co.kr)
사진. 부산=이진혁 (el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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