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대통령 때문에 기분 좋게 웃어본 사람은 몇이나 될까? 사실 우리의 정치 상황에서 대통령 때문에 유쾌했던 경험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정치에 냉소를 흘리거나 분통을 터뜨렸던 이들이라도 영화 <굿모닝 프레지던트>의 세 대통령들을 만난다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로또 당첨금을 국민에게 전액 기부한다는 약속과 편안한 노후를 보장받고 싶은 욕심 사이에서 전전긍긍하는 인간적인 대통령, 김정호(이순재), 헌정 사상 유래 없는 싱글의 조각 미남 대통령 차지욱(장동건), 그리고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 한경자(고두심). 면면히 개성 넘치는 이들 대통령의 공통점은 바로 유쾌함이다. 이웃나라에서는 흑인 대통령이, 좀 더 먼 나라에서는 이미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던 전력과 다르게 아직도 구태의연함에서 벗어나기 힘든 우리의 정치 현실에서 이런 대통령들을 만나기란 사실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기에 가장 충실한 판타지로 국민들의 체증을 풀어줄 수 있는 <굿모닝 프레지던트>의 제작보고회가 22일 압구정 CGV에서 열렸다. 다음은 일찍이 본 적 없는 이순재, 장동건, 고두심 세 대통령들과 그들의 주변을 지키는 한채영, 임하룡이 함께 한 기자회견 내용이다.

배우들이 대통령과 그 주변인물이라는 쉽지 않은 역할을 맡았다. 각자 소개를 부탁한다.
한채영
: 김희영은 순수하고 지고지순한 역할이라 하면서 새롭고 재밌었다. 이순재 선생님의 딸이자, 장동건 선배님의 첫사랑이자, 고두심 선생님의 대변인이다.
이순재 : 영화에서 제일 먼저 나오는 가장 늙은 대통령, 김정호다. 민주화 투쟁을 통해 대통령이 된 인물로, 여러 가지 갈등으로 인한 국민 분열을 대통합하는 게 가장 큰 정치적 목적이다. 그러나 큰 정치적 스케일에 반해 사생활은 쫀쫀하기 그지없다. (웃음) 영화는 그런 사생활 쪽에 포커스를 많이 맞췄다.
장동건 : 최연소 대통령 차지욱 역할을 맡았다. 정치적, 외교적으로는 강성인데다 원리 원칙에 입각한 카리스마 있는 대통령이지만 실제로는 유유부단하고 어수룩하다. 첫사랑 앞에서는 쑥스러워하는 인간적인 대통령의 모습을 연기했다.
고두심 : 하도 몸빼만 입고, 엄마 역할만 하다가 외모도 근사한 대통령 역할을 하게 됐다. 건국 이래 여성 대통령을 본 적이 없는데, 아주 특별한 자리라서 큰 생각을 하고선 임했다. 장진 감독의 작품 의도에 맞춰 작업하면서 굉장히 즐거웠다. 그러나 대통령이란 자리는 특별하고 어려운 자리라는 걸 다시 한 번 되새기고 내려왔다.
임하룡 : 최창면은 잘난 아내 만나서 최초로 남성 영부인을 하게 되는 남자다. 술 좋아하고 친구 좋아하는 사람이 청와대 생활에 안 어울려 좌충우돌 하는데, 왈츠도 추고 멋있는 장면을 많이 촬영했다. 영화가 멋지게 잘 나온 것 같다. (웃음)

“는 대중영화, 상업영화”

대통령이 주인공인 영화는 한국에서 흔치 않았는데, 각본도 직접 쓴 데다 대통령에 대해 담고 싶었던 점이 있었을 것 같다.
장진
: 다른 분들이 각본을 잘 안 주셔서 어쩔 수 없이 내가 썼다. (웃음) 오래 전부터 대통령이란 직업을 가진 사람에 대해 얘기를 하면 재밌을 거 같았다. 특히나 원체 우리나라에선 대통령이란 보통명사에 너무 커다란 중압감과 거리를 느끼다보니까 이런 캐릭터라면 오히려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영화를 보다보면 대통령에 대해 느끼지 못했던 친근감, 영문 모를 존경심도 가질 수 있을 거 같고, 대중적으로 좋은 소재라 생각했다.

대통령이란 소재 때문에 영화에 감독의 정치적인 견해가 담겨있지는 않은가?
장진
: 그 부분은 영화가 개봉을 하면 좀 더 세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웃음) 그러나 이 영화로 특정한 정치적 노선을 표방하려 했던 건 아니고, 철저하게 대중 영화로서 관객들이 즐겁게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나이 40도 안 된 감독이 대통령을 소재로 영화로 만들었는데, 정치적인 견해가 전혀 없다고 한다면 그것 또한 거짓말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견해로 첨예하게 대립하거나 영화에 투영하진 않았다. 나와 같은 성향의 사람들은 자연스레 공감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웃으며 즐길 수 있는 수준이다.

지금껏 본 적 없는 대통령 캐릭터들인데, 연기하면서 어려움은 없었나?
이순재
: 처음에는 대통령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조심스러웠다. 나 젊었을 때는 대통령이란 건 금기의 소재였는데 지금은 세월이 좋아졌구나 느끼기도 했고. 그래서 이제는 우리가 작품 상에서 진지하게 정치 드라마를 할 수 있는 시대가 왔구나 그런 쾌감을 느꼈다. 그런데 정치적 이슈보다는 대통령의 사생활에 더 중점을 둔 이야기라 대단히 재밌었다. 대통령의 권위나 역할은 엄중하지만 사실 개체로 봤을 때는 하나의 인간인데, 이 작품을 통해 대통령이 국민과 동떨어진 먼 존재가 아니라 같은 인간이라는 걸 보여준데 의미가 있지 않을까?
장동건 : 차지욱 대통령 역할을 하면서 사실 대통령이란 직업을 연기하는 것의 어려움보다는 지금껏 해보지 않았던 코미디 연기를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많았다. 다행히 감독님 덕분에 재밌게 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표준어를 구사하는 역할이라 신선하고 재밌었다. (웃음) 정말 연기하는 재미를 모처럼 느낄 수 있었다. 현장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그래도 일인데 이렇게 즐겁게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유쾌한 작업이었다.
고두심 : 여자 대통령 역할을 제안 받았을 때부터 너무 좋았고, 첫 마디에 한다고 그랬다. (웃음) 감독이 대통령이라는 특별한 직업에 대한 것보다도 대통령도 사람이 아닌가에 의미를 둔 거라고 해서 거기에 고두심의 인간미를 집어넣으면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임했다.

“이제는 아저씨란 단어에 익숙해지려고 노력 중이다”

차지욱은 최초의 싱글 대통령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싱글들이 살아가기가 힘들다. 장동건 역시도 오랫동안 싱글로 지내왔는데, 만약 대통령이 된다면 싱글 인구를 위한 공약이 있는지?
장동건
: 나름대로 싱글인 걸 즐기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그게 지겨워지고 있다. 그렇다고 싱글들을 위해 정책적으로 어떻게 짝짓기를 할 수 도 없고. (웃음) 결혼적령기를 지난 싱글들이 많은데 그분들이 의도하지 짝을 못 만난다면 할 수 없는 거고, 본인의 의지에 의해 싱글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서 노후대책이나 외롭게 지내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는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국가경쟁력을 위해선 싱글로 살아가는 걸 적극 권장하고 싶진 않다. (웃음)

본인도 말했지만 정말 오랜만에 말쑥한 모습으로 영화에 나오는 것 같다. 거기다 극중에서 사랑에 빠지기도 하는데, 장동건의 이상형이 궁금하다.
장동건
: <이브의 모든 것> 이란 드라마 이후에는 거의 9년 동안 말끔하게 수트 입은 모습을 팬 여러분이 보기가 어려웠다. 그런 모습을 팬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도 잘 알고 있는데, 그런 갈증을 이 영화를 통해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 이상형은 어렸을 때부터 계속 바뀌는데 요즘은 친구처럼 많은 이야기를 소통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여자라면 좋을 것 같다.

원조 꽃미남 배우에다 꽃미남 대통령까지 했는데, 요즘 견제하는 꽃미남 배우가 있는지?
장동건
: 꽃미남이란 소리를 듣기는 이젠 미안한 나이가 되고 있다. (웃음) 그냥 여러분들께서 상징적인 의미로 그런 수식어를 붙여주시는데, 기분이 좋기도 하지만 이제는 다른 수식어가 이름 앞에 붙었으면 하는 마음이 더 많다. 게다가 요즘은 정말 멋진 후배들이 굉장히 많은데, 그 친구들도 이제 그런 꽃미남이란 소리에 자랑스러워할 기간이 짧아진 것 같다. 그 기간을 지나 다른 수식어가 붙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하지 않을까?

한채영한테 아저씨라는 소리를 들었다는 기사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아저씨라는 호칭에 기분이 어땠나?
장동건
: 이젠 그 단어를 받아들여야하는 나이가 돼서 스스로 나 자신을 설득하고 있다. (웃음) 어떤 상대에게 아저씨라는 말을 듣는가도 중요한데 나도 그 기사를 보고 한채영 씨가 본인의 나이를 잊고 있는 것 같아서 일깨워줬다. (웃음)
한재영 : 그 기사에는 장동건 씨가 아저씨 소리에 화를 냈다고 했는데 그건 아니고, 아저씨라고 부를 정도로 너무 편하게 대해 주셔서 그랬던 것이다. 처음에는 너무 완벽한 분이시라 멀게 느껴졌는데, 시간이 지나서 알게 되니까 너무 편한 분이셨다.

“오히려 정치적인 외압이 있다면 고마울 것 같다”

극중에서 김정호는 로또에 당첨되어 고민하는 대통령인데, 실제로 로또를 사본 적이 있는지 그리고 거액의 로또 상금에 당첨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순재
: 워낙에 추천운이 없어서 평생에 로또 한 장 사본 적이 없다. 그런 당첨이나 우연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돈이란 문제가 그렇게 중요하더라. 특히 대통령이란 직위는 국민 앞에 청렴해야 함은 물론 그 직위로 인해 한 푼의 수익도 생겨서는 안 된다. 그래도 내가 연기한 대통령은 로또에 당첨되고 보니 244억 원이라는 액수는 포기하는 게 쉽지 않은 거다. 특히 가난한 대통령이라 고민이 장난 아니다. 그것 때문에 기절도 하니까. (웃음) 개인적으로는 244억 원 로또에 당첨된다면 40억 원은 기부하고, 200억 원은 가질 것 같다.

아무래도 대통령과 청와대를 소재로 한 영화다보니 혹시 정치적인 외압이나 정부의 협조 같은 건 없었나?
장진
: 물론 협조가 없었다. 없을 것 같아서 그다지 원하지도 않았고. (웃음) 요즘 시대가 어느 시댄데 대통령을 소재로 풍자를 한다고 해서 외압이 들어오겠나? 그래도 정말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마케팅 한 번 제대로 해볼 생각은 있다. 한강 다리에 올라가든지, 건드려주면 오히려 감사할 것 같다. (웃음) 그런데 그런 일이 있을 거 같진 않아서 별 걱정은 없다. 오히려 영화를 준비하면서 올해 일련의 사건들을 거치면서 왜 자꾸 이렇게 그분들을 보내야 하는지 불편했는데 굿바이가 아닌 굿모닝이란 기분 좋은 제목으로 개봉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이제 곧 <굿모닝 프레지던트>를 보게 될 관객들을 위해 마지막 당부를 한다면?
장진
: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소재가 소재다 보니 균형을 다른 쪽에 두고 보실까해서 계속 말하게 된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웃고 즐기면서 볼 수 있고, 보고나면 기존에 쉽지 않게 생각했던 집단에 대해 유쾌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영화다. 다들 유쾌하게 봐주시길 바란다.

글. 이지혜 (seven@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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