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풍호반이 노을빛으로 물들 무렵, 저녁바람을 타고 어디선가 익숙한 시그널 송과 나지막하고 다정한 목소리가 날아온다. “안녕하세요, <이주연의 영화음악> 입니다.” 대형 중계차를 개조해 만든 이동 라디오 스튜디오 ‘알라딘’을 타고 날아온 마법사 지니, 아니 ‘DJ 아네트’는 바로 매일 새벽 2시부터 3시까지 MBC FM4U의 <이주연의 영화음악>으로 깊은 밤을 함께해온 이주연 아나운서다.

재작년부터 부산, 전주, 부천국제영화제 등 굵직굵직한 영화제를 찾아 양탄자를 깔고 영화제의 중심 무대에서 직접 관객들을 만나왔던 이주연 아나운서, 그녀와 함께하는 이 공개방송은 컴퓨터와 인터넷이 필요 없는 ‘보이는 라디오’인 셈이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올해 처음 왔는데, 왜 지금까지 안 왔지? 느낄 만큼 분위기가 너무 좋은 것 같아요” ‘영화음악’이 주인공인 라디오 프로그램과 ‘음악영화’가 주인공인 영화제라니, 이 궁합은 굳이 맞춰보지 않아도 알만하다. “아버지의 고향이 제천 옆의 괴산이라 제천은 어릴 적부터 자주 왔었는데 이렇게 영화제로 오니 아주 다른 느낌이네요. 바쁜 일정이긴 하지만 <마지막 갈채-탱고카페 엘치노>와 이번 제천스튜디오에 게스트로 방문해준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의 다큐멘터리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 이야기>를 보고 돌아갈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해요.”

한 시간 가량 진행된 방송, 알라딘 앞에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구경하는 일반관객들도 많지만 이주연 아나운서를 만나기 위해 일부러 찾아온 ‘이영음 애청자’도 많다. “영화제 가기 전에 방송에서 청풍호반에 해질녘 무렵 찾아갈게요, 라고 했더니 음료수나 먹을 걸 사가지고 오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어찌나 반갑던지요.” 그렇게 방송이 끝나고 애청자들과 함께 맥주잔을 기울이던 이야기를 해주는 이주연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여의도의 스튜디오에서 보다는 한 옥타브쯤 올라가 있었다.

2001년 1년 간 진행하다, 2006년 가을부터 다시 <이주연의 영화음악>의 안주인이 된지도 벌써 2년 10개월. “워낙 전설적인 프로그램이었잖아요. 하지만 선배 DJ들보다 더 잘해야겠다는 강박은 없어요. 전설이 되고 싶다기 보다는 누구나 친근하게 들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겠다는 생각이 더 크거든요. 아무래도 외국감독, 배우이름이 많이 나오다 보니까 일반 가요프로그램에 비해 어렵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쉽고 대중적인 프로그램으로서의 정체성과 영화음악 마니아들에게도 모자라지 않는 방송, 그 사이의 균형을 잘 유지하는 게 저의 가장 큰 숙제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오늘 밤만은, 이 호수가 앞에서만은, 잠시 숙제를 미뤄두시길, 그러기에 축제는 너무 아름답고, 여름밤은 너무 달콤하므로.

글. 제천=백은하 (one@10asia.co.kr)
사진. 제천=이진혁 (eleven@10asia.co.kr)
편집. 제천=장경진 (thre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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