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호러영화의 불신지옥을 타파할 <불신지옥> (제작 영화사 아침, 감독 이용주)이 지난 4일 화요일 2시 동대문 메가박스에서 첫 공개됐다. 다소 센세이셔널한 제목으로 화제가 됐던 <불신지옥>은 광적인 기독교와 무속신앙이 빚어내는 비극을 그리는 영화다. 하루에 서너 개의 아르바이트에 시달리며 홀로 살아가는 대학생 희진(남상미)은 동생 소진(심은경)이 실종됐다는 연락을 듣고 집으로 내려간다. 교통사고로 아빠를 잃은 뒤 광적으로 기독교를 신봉하기 시작한 엄마(김보연)는 기도를 하면 소진이 돌아올 거라며 경찰서 대신 교회로 향한다. 불치병에 걸린 딸 때문에 고통 받는 형사 태환(류승룡)은 소진의 실종이 단순 가출이라고 믿을 뿐이다. 하지만 희진의 눈앞에서 투신자살한 이웃 정미(오지은)의 집에서 소진에게 남긴 유서가 발견된다. 게다가 아파트 주민들은 소진이 신들린 아이었다는 증언을 하기 시작한다. <불신지옥>은 호러영화라기보다는 사라진 소녀의 행방을 찾아나가는 일종의 오컬트 추리영화다. 사다코를 닮은 귀신 따위는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영화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가 온갖 종류의 광신으로 일그러진 지옥이라고 말한다. <불신지옥>은 오는 8월 13일에 전국에서 개봉한다.

한국 호러영화의 불신지옥에서 탈출하는 급행열차

솔직히 지난 몇 년 간 한여름 한국 호러영화를 보는 건 자살행위에 가까운 일이었다. 김지운의 <장화, 홍련> 이후 관객을 진짜로 겁에 질리게 만들 만한 호러영화는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말이다. 올여름 호러영화도 첫 출발이 엉망이었다. 박찬욱의 조감독이 만들었다는 <여고괴담 5 : 동반자살>은 시리즈의 명줄을 한 번에 끊어버린 졸작이었다. 그 때문에 <불신지옥>의 이용주 감독이 봉준호의 조감독 출신이라는 사실은 오히려 영화에 대한 불안감만 가중시켰다. 하지만 이용주 감독은 봉준호 감독에게서 아주 제대로 배운 모양이다. 전반부에 깔아놓은 복선을 후반부에 서서히 풀어나가는 솜씨도 좋고 큰 쇼크 장면 없이 관객의 심장을 쥐락펴락하는 기술도 훌륭하다. 전통적인 호러영화가 아니고 원혼도 등장하지 않지만 <불신지옥>의 몇몇 장면은 한국 호러영화에서 보기 드물 만큼 무시무시하다. 특히 휴대폰 카메라의 불빛에만 의지하는 지하실 장면은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을 만큼 빼어나다. 광신적 기독교에 대한 비판의 날이 생각보다 무딘 건 좀 아쉽다. 센세이셔널리즘으로 빠지지 않으려는 감독의 균형감각이라고 해 두자.

글. 김도훈 ( 기자)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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