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모를 바이러스로 인해 어느 날 갑자기 서울에 좀비가 출현한다는 내용의 윤이형의 소설 <큰 늑대 파랑>에서 좀비가 걸어간 자리는 이렇게 묘사된다. “시뻘겋게 벌어진 허리춤의 틈에서 기름과 창자가 줄줄 쏟아져 땅바닥에는 금세 피의 강이 만들어졌다.” 이 소설과 비슷한 가정에서 출발한 옴니버스 형식의 영화 <이웃집 좀비>의 좀비도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은 다르지 않다. 살아있는 시체, 피가 뚝뚝 떨어지는 인간의 생살을 탐닉하는 무서운 괴물. 창백한 얼굴에는 온통 핏자국이 튀어있고, 목과 얼굴의 힘줄은 괴성을 지를 때마다 투두둑 소리를 내며 벌겋게 올라온다. 하지만 <이웃집 좀비>의 좀비는 타인이 아니다. 그들은 연인이거나, 친구이며, 가족이고, 이웃집 사람이다. 제 1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통해 선보인 <이웃집 좀비>는 전형적인 호러 영화 속 좀비의 흉측한 얼굴에, 그들도 원래는 누군가의 사랑하는 존재였다는 사연을 덧입히면서 지금까지는 본 적 없는 좀비의 ‘인간다운’ 표정을 보여준다.

‘키노 망고스틴’. 이 독특한 좀비영화를 만들어낸 독립영화 창작집단의 이름이다. 오영두, 홍영근, 류훈, 장윤정 총 네 명의 감독은 제작부터 각본과 연출, 촬영과 조명, 분장, 편집, 연기까지 해내면서, 최소한의 예산만을 가지고 <이웃집 좀비>를 만들었다. 영화는 옴니버스 형식의 여섯 가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바이러스 발생과 감염자 사살 명령에 대한 짧은 애니메이션을 가장 앞에 배치하고, 백신의 발명과 그 이후의 이야기를 옴니버스의 에피소드로 삽입함으로서 각각의 에피소드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각각의 에피소드는 호러, 액션, 멜로, 드라마, 판타지까지 장르도, 영화의 분위기도 다르지만, 서울 하늘 아래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죽음의 바이러스에 직면해 있는 공통의 공포 아래, 좀비를 만난 ‘인간’의 얼굴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하나로 묶인다. 에피소드별 수준의 편차가 크지 않은 것 역시 <이웃집 좀비>의 미덕이다.

인간을 먹는 이상, 좀비는 인간이라고 할 수 없다. ‘뼈를 깎는 사랑’ 에피소드에서 끝까지 좀비가 된 엄마를 지키려는 딸을 향해 경찰이 외치는 말처럼, “더 이상 인간이 아니다”. 그런데도 <이웃집 좀비>의 좀비들은 인간이고자 한다. 같이 좀비가 되어서라도 바이러스에 감염된 애인을 이해하려고 하고, 손가락을 잘라서라도 좀비가 된 엄마를 먹이며, 다시 인간이 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좀비 바이러스 백신이 개발 된 후 평소처럼 돌아온 뒤의 이야기인 ‘그 이후… 미안해’ 에피소드가 주는 가슴의 울림은, 좀비의 시간, 곧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벌어진 죄와 고통의 시간이 지난 뒤에 어떻게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드러내는 데에서 온다. <이웃집 좀비>는 좀비를 장르영화의 소재로만 이용하는데 그치지 않고, 내가 살고 있는 바로 옆집으로 데려와 평범한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도록 했다. 온갖 감정을 느끼며 살아가는 평범한 하루처럼, 영화를 보는 어느 순간에는 두렵고 무섭지만, 또 어느 순간 웃음이 터지고, 마음이 아파오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웃집 좀비>라는 어쩐지 따뜻하게 느껴지는 영화의 제목, 참 잘 지었다.

*는 오직 영화제에서만 볼 수 있는 마니악한 영화가 아닌, 곧 극장에서 만날 수 있는 영화들을 반 발 앞서 소개합니다.

글. 부천=윤이나 (TV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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