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에서 영화를 본다? 어느 왕족의 호사스러운 취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당신도 유구한 역사의 궁에서 세계적인 감독과 평론가가 엄선한 영화를 볼 수 있다. 경희궁 앞뜰에 나타난 기묘한 다면체에 놀라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지난 26일 경희궁에서 프라다 트랜스포머 영화제의 기자 간담회가 열렸다. 기자간담회에는 프라다 아태지역 사장 세바스찬 술, 트랜스포머 구조물을 설계한 OMA의 건축가 알렉산더 레이햐트, 프라다 그룹의 문화사업을 주관하는 프라다 재단의 예술 총감독 제르마노 첼란트, <바벨>로 59회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과 영화평론가 엘비스 미첼(사진 왼쪽부터)이 참석했다. 프라다 트랜스포머 영화제는 물론 영화 <트랜스포머>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 여기서 트랜스포머는 경희궁 앞뜰에서 6개월간 진행되는 설치 프로젝트를 말한다. 미술, 영화, 패션 그리고 프라다의 문화 전반을 주제로 한 네 가지 이벤트를 위해 디자인된 이 임시 건축물은 하나의 행사가 종료될 때마다 구조물 전체가 회전하여 새로운 행사를 위한 이색 공간으로 변한다. 지난 5월에 열렸던 ‘프라다 트랜스포머 웨이스트 다운: 미우치아 프라다의 스커트’ 전이 육각형 면을 바닥으로 활용했다면, 이번 영화제에서는 회전을 통해 직사각형 면이 바닥이 되었다.

신개념의 영화관에서 고전 영화를 보다

“교회 옆에 바로 성형외과가 있고, 산 속에 고층 아파트가 있는” 서울의 이질성을 상징하는 이 공간에서는 역시나 “슈퍼 히어로 영화만 만들고 있는 최근” 영화자본과 이질적인 휴머니티를 다룬 영화들이 선보인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들을 골랐다는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은 “요즘은 영화를 다운로드 받아서 컴퓨터나 휴대용 단말기로 혼자 보는데, 영화는 극장에서 사람들과 교감하며 보는 공동체적인 경험”이라며 트랜스포머 영화제의 의미를 환기시켰다. 엘비스 미첼 역시 “큰 쇼핑몰 안에 있는 스타벅스나 바디숍 옆의 멀티플렉스 극장이 아닌 온전한 의미의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것은 분명 다르다”며 한국 관객들의 많은 참여를 기대했다. 게다가 <아귀레, 신의 분노>, <늪> 등 러시아, 아르메니아, 터키 영화 등 평소 접하기 힘든 총 14편의 상영작 중 8편이 한국에서 최초로 공개되는 만큼 색다른 공감각적인 체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27일부터 개막한 영화제는 7월 9일까지 계속되며, 영화 예매 및 상영시간은 www.prada-transformer.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 공동 인터뷰
“굉장한 한국감독들이 전세계 영화계를 변화시켰다”


프라다 트랜스포머 영화제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는지.
1년 전, 미우치아 프라다가 나에게 제안했을 당시에는 이렇게 크고 중요한 일이 될 줄은 몰랐다. 또한 좋아하는 영화가 너무 많아서 그 중 몇 개만 고른다는 것이 다른 모든 영화들을 배신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웃음) 그러나 나는 훌륭한 고전영화들이 점차 사라져가는 것을 걱정하고 있고, 그 영화들을 복원, 발굴시켜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유통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기에 참여하게 되었다. 한국 젊은이들에게 굉장히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14편의 상영작들을 선정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었는지.
내가 고른 영화들은 나를 정신적, 육체적으로 자극시켰던 영화들이다. 그리고 의식하면서 고른 건 아닌데, 고르고 나서 보니 모든 영화들이 가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요즘은 인류 자체에 대한 희망의 위기가 전 세계적으로 있는 것 같은데, 사람들은 그런 현실에서 도피만 하고 있는 것 같아서 걱정이다. 아이들은 게임만 하고, 영화계는 슈퍼 히어로 영화만 만들고. 이러한 상황이 안타까워서 휴머니티를 담은 영화들을 고르게 되었다.

평소 한국영화에 대해 관심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박찬욱, 봉준호, 이창동, 김지운 등 한국에는 굉장히 재능 있는 영화인들이 많다. 그리고 한국 영화가 최근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데 그것은 내 자국, 멕시코 영화들이 겪는 딜레마와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다. 주로 외국 언론들은 멕시코나 한국영화들을 뉴웨이브, 즉 ‘새로운’ 영화로 포장하는데 이 새로운 것이라는 건 2-3년 내에 식어버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멕시코와 한국 영화인들은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것에 대해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지 않을까? 게다가 한국에는 굉장한 감독들이 한 번에 갑자기 등장해서 전 세계 영화계에 변화를 일으켰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일어나면 멕시코도 그렇고, 어느 정부든 이것을 문화적인 정책의 성과라고 홍보하곤 하는데 그건 정말 아니다. 이것은 개별적인 개인의 성공일 뿐이다. 그런 식의 접근은 상당히 위험한 발상이다.

한국영화 <놈놈놈>이 상영작 중에 있는데.
지구에서 만들어지는 거의 모든 영화를 보고 있는(웃음) 엘비스 미첼에게 추천을 받아서 보게 되었다. 이 영화는 여러 장르를 다 모아놓은 것 같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김지운 감독도 그렇고 한국영화 감독들은 대체로 과감한 것 같다. 괴기, SF, 리얼리티까지 모든 장르를 도입해서 도전적으로 영화를 만든다.

최근에 본 한국 영화는?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바르셀로나에서 얼마 전 <밀양>이 개봉됐다. 시내에 있는 아트시네마에서 일요일 저녁 10시에 상영을 했는데, 아내와 함께 10시 1분에 영화관에 도착했다. 그런데 아무도 보지 않아 상영이 취소된 것이 아닌가! 나는 이 영화를 꼭 봐야 된다고 미친 듯이 난리를 쳤고, 그 덕분에 아내와 단 둘이 그 걸작을 볼 수 있었다. (웃음) 역시나 영화는 너무 좋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슬펐다. 인간의 경험에 초점을 맞춘 이런 좋은 영화들은 소외당하는 무서운 미래가 보였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일종의 저항운동이 필요하지 않을까?

사진제공_ 프라다 트랜스포머

글.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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