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발소녀의 기벽> (Eccentricities of a Blond Hair Girl)│ 마노엘 데 올리베이라 │ 메가박스 10관 14:30
사랑이라는 감정은 종종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실체를 인식하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던 연인의 밑바닥을 보는 것은 지축이 흔들리는 충격적인 경험이다. 올해로 100세를 넘긴 감독의 최신작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 감각적인 영화는 한 남자의 신세한탄으로 시작한다. 마카리오는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금발 소녀 루이자와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꿈꾸지만 현실에는 온갖 난관들이 가득하다. 천신만고 끝에 난관을 극복하고, 청혼을 준비한 그가 찾은 소녀는 자신이 추호도 의심치 않았던 완벽한 여인이 아니다. 오로지 그녀와의 결혼만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했지만 한순간에 기대를 배반당한 남자의 허탈함이 공허하다. 영화 역사상 최고령 감독인 마노엘 데 올리베이라는 올해 <금발소녀의 기벽>을 완성한데 이어 현재도 새로운 영화를 촬영 하고 있다.

<바다 쪽으로 한 뼘 더> (One Step More to the Sea)│ 최지영 │ CGV 4관 14:00
기면증을 앓고 있는 여고생 원우는 엄마와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아버지의 빈자리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서로를 아끼는 세 모녀지만 엄마의 과잉보호에 원우는 지쳐간다. 공부도 잘하고 싶고, 자전거도 타고 싶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병으로 인해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에 사로잡힌 원우는 분노를 느낄 뿐이다. 그러나 원우는 사려 깊은 가족과 친구로 인해 조금씩 자신과 그리고 세상과 화해한다. 감독은 성장기의 좌절과 극복을 기면증이라는 장치를 사용해 영민하게 그려냈다. 또 일상에 대한 섬세하고 따뜻한 묘사는 다소 상투적이긴 하지만 오후의 낮잠처럼 달콤하다. 특히나 기면증을 앓고 있는 원우를 현실감 있게 살려낸 신인배우 김예리가 잘 닦은 차돌처럼 단단하게 빛난다.

글. 전주=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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