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는 현재 30년째 내전으로 신음하고 있다. 상류층을 형성하고 있는 신할라 족과 이들에 의해 차별대우를 받아온 타밀 족 사이의 분쟁은 6만 명 이상의 희생자를 냈고, 여전히 종식되지 않은 내전으로 인한 테러가 빈번하다. 스리랑카에는 두 민족 간의 전쟁 외에도 여전히 종교문제와 취업난, 경제 불황 등 갖가지 사회적인 병폐들 또한 개선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결국 어느 사회든 가장 약자일 수밖에 없는 여성들의 착취와 차별문제는 이런 상황 속에서 더욱 하찮은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자국의 현실에 늘 날카로운 시선을 거두지 않았던 달마세라 파티라자 감독이 그녀들을 위해 입을 열었다. ‘스리랑카 특별전’을 통해 제10회 전주국제영화제를 찾은 감독의 <폰마니>는 사랑을 위해 가족도, 종교도 모두 버리고 떠나는 여자, 폰마니를 통해 스리랑카의 신부 지참금 제도와 무기력한 기성세대까지 비판하고 있다. 20여 년 전에 만들어졌지만 “여전히 스리랑카의 결혼 제도는 전혀 바뀌지 않았다”며 아쉬움을 밝힌 감독과 <폰마니>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스리랑카는 정부군과 타밀반군의 내전으로 인종간의 갈등이 굉장히 심하다고 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기득권이라고 할 수 있는 신할라 출신으로 타밀에서 현지인들과 함께 영화를 만드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달마세라 파티라자
: 그 당시 타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알려진 것 보다는 두 종족은 서로의 문화에 대한 이해가 깊었다. 서로의 차이점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에 심각한 마찰이 있진 않았다. 오히려 타밀 족에 대한 영화를 만드는 걸 알고 있었기에 잘 완성해주길 바랐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스리랑카의 악습은 개선되지 않았다”

신할라 출신 감독으로는 최초로 타밀어로 영화를 제작해 현지에서 화제가 되었는데, 다른 인종의 언어로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스리랑카에서 어떤 의미인가?
달마세라 파티라자
: 사실 내 영화가 그리 인기가 많진 않아서 특별히 물의를 일으키진 않았다. (웃음) 겉보기엔 신할라 족과 타밀 족이 다를 수도 있지만 사실 우리는 모두 인간으로 별 차이가 없다. 현재 30여 년 동안 계속되는 내전도 우리들의 차이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라, 정치인들이 사람들 사이의 대립을 조장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주인공인 폰마니의 가족들은 모두 결혼을 하는 당사자인 딸 뿐 아니라 오빠나 부모도 엄청난 신부 지참금 때문에 괴로워한다. 영화 안에서 인습을 타파하려는 젊은 세대들을 긍정적으로 그렸는데, 20여 년이 지난 지금 스리랑카의 결혼 문화는 어떤가.
달마세라 파티라자
: 결혼 문화는 현재도 여전히 바뀌지 않고 있다. 특히나 신부 지참금 같은 비합리적인 제도는
도시 보다 가난한 농민 거주 지역에서 더욱 심하다. 아직까지는 아쉽지만 큰 변화가 없다.

집을 나간 폰마니에게 오빠가 “다리를 부러뜨려서 내다버릴 것”이라고 했는데, 한국에서도 여자가 잘못을 저지르면 부모나 형제가 “다리 몽둥이를 부러뜨린다”는 말을 한다. (웃음) 지속적으로 스리랑카의 사회를 비판해왔는데 <폰마니>로 여성들의 현실에 대해 말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
달마세라 파티라자
: 일단은 가족이 대체 무엇인지에 대해 되묻고 싶었다.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가족에 대한 나만의 가치관을 보여주고 싶기도 했고. 특히나 <폰마니>의 배경이 되는 타밀 지역은 도시보다도 훨씬 보수적이고 여성들에게 불리한 악습들이 팽배해있다. 그래서 그들에게 남성과 여성의 역할에 차이를 두지 말아야 한다는 걸 알린다는 의미도 있었다.

그런데도 결국 자신의 의지대로 살고자 했던 폰마니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다.
달마세라 파티라자
: 그런 결말의 충격 때문인지 이 영화는 많은 지역에서 상영되지 못했다. 서로 다른 두 종족의 종교관과, 가치관에 대해 너무 깊게 파고들기까지 했으니까. 그러나 대중성이나 흥행을 고려해서 영화를 만들기 보다는 카스트 제도와 종교가 사회에 어떤 악영향을 끼치는지를 짚어보고 싶었다. 결말도 그런 악영향의 예시 같은 거였다.

영화에서 반복해서 삽입되는 여자들의 합창이 인상적이었다. “사랑을 원하지도 않아, 황홀을 원하지도 않아, 다만 안식처가 필요할 뿐”이라는 가사가 극중 여성들의 심정을 정확하게 대변하고 있던데.
달마세라 파티라자
: 여자는 과연 결혼에 있어 자유라는 것을 행사할 수 없는가에 대해 관객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든 장치가 바로 그 노래였다. 영화를 위해 특별히 제작했는데 폰마니에게는 같은 곡을 좀 더 절망적인 리듬으로 편곡해 다시 한 번 그녀의 비극에 관객들이 몰입하도록 했다.

“같은 지역에서 살해된 서로 다른 종교인에 대한 영화를 구상 중”

노래의 가사 외에도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의 심리를 정확하고 세심하게 표현한 것이 돋보였다.
달마세라 파티라자
: 나는 스리랑카 중심부인 칸디 지역에서 나고 자라 거기서 대학을 다녔다. 그곳은 도시라서 시골에 비해 여성들이 바깥 활동도 많이 하고, 대학 생활을 함께 한 친구들 중에서도 여자들이 많았다. 그래서 아주 가까운 곳에서 그녀들을 관찰할 수 있었고, 함께 어울리면서 일부러 노력하지 않아도 여자들의 심리에 대해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지난 2일, 관객과의 대화에서 <폰마니>가 그동안 해오던 작품과 많이 다르다고 했는데, 당신의 이전 작품과 <폰마니>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무엇인가?
달마세라 파티라자
: 다른 영화에 비해 가족이라는 작은 단위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전의 작품들에서는 가족을 집중적으로 다룬 적이 없다. 경제 불황이나 취업난 등 사회적으로 큰 문제에 노력을 쏟았다. 그러나 <폰마니>로 가족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고, 개인적으로 스타일의 변화를 원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이전의 당신의 작품들은 전반적으로 다큐멘터리에 가까울 정도로 현실이 강조된 반면, <폰마니>에는 연인이 사랑을 위해 도망을 간다던가, 충격적인 결말 등 극적인 장치들이 많았다.
달마세라 파티라자
: 사실 <폰마니> 이전에는 영화에 만들어낸 이야기를 담는 것이 싫었기에 다큐멘터리 형태로 작업을 했다. 그러나 <폰마니>를 통해선 이전과는 다른 시도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소설적인 이야기와 현실적인 면의 조화를 시도해 보았다.

당신은 30여 년 동안 꾸준히 스리랑카 사회의 문제에 대해 얘기해 왔다. 최근 당신의 레이더망에 걸린 문제는 어떤 것인가?
달마세라 파티라자
: 스리랑카의 외딴 섬에서 발생했던 실제 사건을 소재로 대본을 쓰고 중인데, 서로 다른 두 개의 종교에 대한 얘기다. 스리랑카 종교분쟁이 한창이던 어느 날, 같은 지역에서 활동하던 가톨릭 신부와 불교 승려가 살해된 채 발견되었다. 그런데도 경찰이나 종교단체에서 그 사건에 대해 정확한 수사도 하지 않고, 어떠한 공식 발표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의문을 품게 되었고, 현재 명확한 자료들을 확인 중에 있다. 예전처럼 다큐멘터리로 제작할까 했는데, 워낙 기록이 적고 수사가 되지 않아서 극영화로 작업할 생각이다. 그리고 이번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대중적인 재미와 유머도 추가할 생각이다. (웃음)

글. 전주=이지혜 (seven@10asia.co.kr)
사진. 전주=이원우 (four@10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