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박창기 기자]
영화 ‘아내를 죽였다’ 메인 포스터. /사진제공=KTH
영화 ‘아내를 죽였다’ 메인 포스터. /사진제공=KTH
회사의 부득이한 사정으로 권고사직을 당한 정호(이시언 분)는 새로운 일자리를 찾고 있다. 아내 미영(왕지혜 분)에게 사실대로 말도 하지 못한 채 인력사무소를 다니며 돈을 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새로 열린 도박장을 알게 된다. 정호는 일확천금을 꿈꾸며 도박장에 들어서지만 그날 벌었던 일당을 모두 날린다. 아쉬움이 오기로 바뀌는 순간, 정호는 도박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그러다 결국 사채까지 빌려 쓴다. 겹겹이 쌓여가던 실패는 미영과의 별거로 이어진다.

정호는 친구 진수(이주진 분)의 권유로 그가 다니는 회사에 이력서를 넣게 된다. 그러나 사채로 인한 신용등급 하락으로 입사에 실패한다. 정호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진수와 함께 막걸리집에서 술을 마시던 중 필름이 끊기고 만다.

다음날 자신의 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깬 정호. 문을 열어보니 경찰 대연(안내상 분)이다. 정호는 대연에게 전날 미영이 누군가에게 살해 당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사건 당일 알리바이를 묻는 대연의 말에 정호는 당시의 상황을 되짚어보지만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러던 중 정호는 자신의 옷에 묻은 핏자국과 피 묻은 칼을 발견한다. 가장 강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정호는 대연을 따돌리며 도주한다. 간밤의 기억을 모두 잃은 상태에서 정호는 자신을 사건의 범인이라고 가리키는 증거들에 혼란스러워한다. 결국 정호는 자신의 알리바이를 증명하기 위해 어젯밤의 행적을 따라가기 시작한다.

‘아내를 죽였다’ 스틸컷. /사진제공=KTH
‘아내를 죽였다’ 스틸컷. /사진제공=KTH
‘아내를 죽였다’는 과음으로 인한 단기 기억 상실을 뜻하는 블랙아웃을 소재로 다뤘다. 자신의 주변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 공포로 뒤바뀐다는 기획 의도를 내세웠다. 감독의 의도대로 영화는 사채, 인력사무소, 도박, 청소년 범죄 등 각종 사건, 사고들을 장면 곳곳에 집어넣었다. 그러나 캐릭터 간의 허술한 설정과 개연성 없는 이야기들이 메시지의 무게감을 떨어뜨렸다.

영화는 시작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다. 도입부부터 범인을 보여주는 듯한 장면을 통해 관객들이 사건을 쫓아가도록 했으나, 사건에 다다를수록 이야기는 다르게 흘러간다. 반전을 꾀하려 했던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다소 무의미한 연출이 오히려 사건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예능을 통해 친숙한 이미지를 보여줬던 이시언의 연기 변신은 나름 신선하다. 사건의 진실을 파헤칠수록 이시언의 진지하면서도 찌질한 연기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극중 역할을 위해 수염까지 기르는 노력을 보였으나, 그동안 보여줬던 모습과는 상반돼 낯설 수도 있다.

개연성 떨어지는 인물들 간의 설정이 다소 아쉽다. 극 중 정호와 사채업자들의 어설픈 몸싸움은 실소가 나올 정도로 극의 긴장감을 떨어뜨렸다. 사채업자들은 각각 쇠파이프와 칼을 들고 정호를 위협하지만, 오히려 의자 하나 들고 있던 정호가 두 사람을 제압하며 도망에 성공한다. 또한 정호는 사채업자 김 실장(김소진 분)에게 빚에 시달리며 신체가 훼손될 위기에 처한다. 이어 정호는 김 실장이 운영하는 도박장에서 돈을 들고 달아나는 등 두 사람은 적대적인 관계를 갖고 있다.

그러나 결말에선 아무런 과정과 설명도 없이 김 실장이 운영하는 도박장에서 다시 도박을 하는 정호의 모습이 그려진다. 난데없이 나타난 청소년들, 정호에게만 상환 기간을 늘려준 김 실장, 죽음의 위기에 놓인 정호를 딱 맞게 구해주는 경찰 등 부자연스러운 연출이 곳곳에서 이어졌다. 특히 흐름을 뚝 끊어버리듯 맺어진 결말은 허무하기 그지없다.
주위에서 일어날 법한 사건을 통해 사회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겠다는 기획 의도는 좋았으나, 아쉬운 설정과 이야기가 스릴러의 특성을 살리는 데 부족했다.

오는 11일 개봉. 15세 관람가.

박창기 기자 spear@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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