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박창기 기자]
영화 ‘집 이야기’ 메인 포스터. /사진제공=CGV아트하우스
영화 ‘집 이야기’ 메인 포스터. /사진제공=CGV아트하우스
홀로 서울살이를 하는 은서(이유영 분)는 집 구하기에 한창이다. 현재 사는 집의 계약이 조만간 만료되기 때문이다. 중개사와 여러 군데를 둘러보며 집을 찾아보지만, 좀처럼 마음에 드는 곳이 없다. 신문사의 편집기자인 은서는 사무실에 도착해서도 집 생각에 한숨만 나온다. 그때 엄마에게서 전화가 걸려온다.

며칠 뒤 은서는 엄마가 사는 제주도로 가서 가족들과 오랜만에 식사를 같이 한다. 그러나 은서는 이 자리가 마냥 불편하다. 다음날 있을 엄마의 재혼식을 앞두고 새아빠를 만나는 자리였던 것이다. 다음날 엄마의 재혼식을 마친 은서는 곧바로 서울로 올라가 친구의 집을 찾는다. 왠지 모를 씁쓸함에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던 그는 만취 상태로 집에 돌아간다. 그러다 어딘가에 열쇠를 흘렸는지 한참 동안 주머니를 뒤적인다. 결국 집에 들어가지 못한 은서는 문 앞 계단에 멍하니 주저앉는다. 그러던 중 휴대폰으로 24시 출장 열쇠를 부른다. 다름 아닌 아빠 진철(강신일 분)이다. 홀로 열쇠 가게를 운영하는 진철은 오랜만에 만난 딸의 모습에도 무덤덤하다. 그는 애써 반가운 척 말을 건네는 딸의 인사에 별다른 반응 없이 볼 일을 마치고 제 갈 길을 간다.

여전히 집을 구하지 못한 은서는 중개사와 함께 또 다른 집을 본다. 하지만 오늘도 허탕이다. 계약 만료일이 다가오자 은서는 갈 곳 없는 신세가 될까 불안해진다. 그러다 무언가 생각난 듯 방 안에 있는 상자에서 어린 시절 진철과 함께 살았던 집의 열쇠를 꺼낸다. 이윽고 은서는 진철에게 전화를 걸어 집을 구하기 전까지 며칠간 신세를 지기로 한다.

‘집 이야기’ 스틸컷. /사진제공=CGV아트하우스
‘집 이야기’ 스틸컷. /사진제공=CGV아트하우스
‘집 이야기’는 아빠와 딸이 한집에 살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아내와 이혼한 진철은 첫째 딸 은주와의 불화로 홀로 살고 있다. 애정 표현이 서툴러서 어린 시절 자신을 유난히 따랐던 은서의 연락에도 시큰둥하다. 그러나 장면마다 등장하는 그의 행동에서 딸을 향한 애정이 엿보인다. 오랜만에 집을 찾아온 딸을 위해 수건을 사고, 이사 오는 날에 맞춰 밥을 해놓는다. 겉으로는 무뚝뚝하지만 마음만은 자상한 아빠의 면모를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진철의 마음은 은서에게 닿지 않는다. 은서는 말이 없는 진철에게 대화를 유도하고 소통하기를 원한다.

영화는 집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인물의 내면을 보여준다. 창문 하나 없는 진철의 주택, 재혼 후 제주도에 사는 엄마의 창문 큰 집과 전북 익산에 사는 은주의 아파트, 은서가 홀로 머무는 레지던스 등 크기와 형태가 제각각인 집으로 캐릭터의 감정을 대변한다. 진철에게 창문은 마음의 문을 의미한다. 그의 방은 창문 하나 없는 어두컴컴한 곳이다. 이는 가족과 관계를 끊은 진철의 마음이 닫혀있음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진철의 직업이 흥미롭다. 그는 어떤 문이든 빠르고 정확하게 열 수 있는 기술자다. 그러나 정작 가족의 마음을 열 줄 몰라 어려움을 겪는다.

진철과 은서는 한집에서 지내면서 잊고 지냈던 가족의 정을 찾기 시작한다. 영화는 주위에서 흔히 볼 법한, 혹은 내가 겪고 있는 이야기라고 느낄 만큼 현실적인 요소들이 반영돼 극의 몰입도를 높였다. 영화 개봉 전 열린 언론시사회에서 ‘우리 아빠를 보는 것 같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영화는 현실과 많이 닮았다.

두 사람의 설정 또한 상당 부분 비슷하다. 디지털이 범람하는 시대에 아날로그적 직업을 가졌다는 것. 디지털 도어락 세상에서 오직 열쇠공으로서의 기술만을 고집하는 진철과 온라인 뉴스 시대에서 종이 신문의 편집 기자로 일하고 있는 은서의 직업적인 공통점이 공감대를 형성한다.

다만 중간 중간 개연성 없는 설정이 흐름을 방해한다. 진철이 이혼해야 했던 이유,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된 은주와의 관계 등 스토리 곳곳에서 의문이 생긴다. 특히 아무런 예고도 없이 찾아온 결말은 다소 뜬금없다.

그런데도 영화는 잔잔한 이야기 속에서 가슴 따뜻한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뻔한 해피엔딩보다는 현실적인 결말로 깊은 여운을 남긴다. 극 중 강신일과 이유영의 섬세하고 깊은 감정 표현이 뭉클함을 더한다.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영화다.

오는 28일 개봉. 12세 관람가.

박창기 기자 spear@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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