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테인먼트 전문 미디어 텐아시아가 ‘영평(영화평론가협회)이 추천하는 이 작품’이라는 코너를 통해 영화를 소개합니다. 현재 상영 중인 영화나 곧 개봉할 영화를 영화평론가의 날카로운 시선을 담아 선보입니다. [편집자주]
영화 ‘누구나 아는 비밀’ 포스터. /사진제공=오드
영화 ‘누구나 아는 비밀’ 포스터. /사진제공=오드
행복한 가정은 고만고만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각기 다른 이유로 불행하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리나’의 첫 구절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불행한 가족이란 것이 참 그렇다. 맞추기 어려운 퍼즐 같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어디서부터 맞춰야할지 알 수가 없다. 큰 그림을 기어이 맞춰 보려 애쓰지만 어느 조각은 사라지고 없는 것 같다. 대체 어느 조각이 언제 사라져버린 건지 알 수 없는 순간이 온다. 겨우 맞췄다고 생각해도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퍼즐과 퍼즐 사이에는 미세한 균열이 나 있다.

영화 ‘누구나 아는 비밀’은 외국에 나가 살고 있던 라우라가 자신의 딸, 아들과 함께 여동생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귀국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과 마을 사람들 모두가 모여 떠들썩한 결혼식 파티를 즐긴다. 보기 드물게 화목한 가족, 살가운 이웃이다. 하지만 결혼식 날 밤 라우라의 딸이 납치당한다. 위기에 놓인 가족과 이웃은 달라진다. 시간이 흐르면서 라우라와 가족, 그리고 가까운 이웃 모두는 서로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은 ‘누구나 아는 비밀’을 통해 위기가 닥친 순간 가족이라는 구성원이 마지막 희망인지 믿어보고 싶은 구원인지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결국 잔인하게 발톱을 세우고 상대방에게 생채기를 내고야 마는 사람들의 이야기 속으로 파고든다.

영화 ‘누구나 아는 비밀’ 스틸. /사진제공=오드
영화 ‘누구나 아는 비밀’ 스틸. /사진제공=오드
불화의 순간과 의심의 순간 사이를 특별한 기교 없이 한 땀 한 땀 기워내는 영화의 구성은 생각보다 느슨하다. 파라디 감독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얽힌, 낯선 타인들을 바라보는 가족 구성원들의 얼굴을 한 사람 한 사람 내밀하게 들여다본다. 톨스토이의 말과 달리 ‘누구나 아는 비밀’을 보고 있자면 불행한 가정은 각기 다른 이유로 불행하지만 결국 ‘고만고만한 이유로 불행하다’는 새로운 정의가 필요해 보인다. 그런데 영화는 딱 그 앞에서 멈춰 선다.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은 애먼 화해의 방식을 택하지 않는다. 대신 주인공의 미래를 에둘러 방치한다.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이, 숨겨진 비밀이 그다지 놀랍지 않다는 것이 ‘누구나 아는 비밀’의 가장 큰 메시지처럼 보인다. 평화로워 보이던 시골 마을이 납치와 비밀의 장소로 바뀌는 순간 공간과 인물 사이에 직조된 관계는 꽤 촘촘하다. 주인공 각각이 다른 목적으로 비밀을 유지하면서 또 필요에 의해 상대방의 비밀을 지켜주는 그 이면에, 다른 깊이와 다른 갈등을 만들어내며 대단할 것 없는 이야기에 탄성을 준다. 강한 긴장감을 기대하는 관객에겐 다소 밋밋해 보일 수 있지만 페넬로페 크루즈와 하비에르 바르뎀 등 스페인을 대표하는 배우들이 빼곡하게 쌓아올린 감정의 정서 덕분에 지루한 순간은 찾아오지 않는다.

최재훈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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