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박미영 작가]
영화 ‘돈 워리’ 포스터.
영화 ‘돈 워리’ 포스터.
*이 글에는 돈 워리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글래디에이터’(2000)의 검투사 막시무스(러셀 크로 분)는 강렬한 빛이었다. 그러나 나는 어찌 된 일인지 졸렬한 어둠이었던 황제 코모두스에게 끌렸다. 보다 정확히는 욕망으로 일그러진 코모두스를 연기한 배우에게 마음이 당겼다. 뿜어내는 감정마다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는 배우의 이름은 절로 각인되었다. 와킨 피닉스.

알바라도 페인팅의 직원 존 캘러핸(와킨 피닉스 분)은 심각한 알코올 중독자다. 술기운이 가시면 신경이 곤두서고, 술만 마시면 엉망이 된다. 어느 날, 존은 파티에서 마주친 덱스터(잭 블랙 분)가 10배는 더 좋은 파티가 있다고 하자 그 말에 혹해서 따라간다. 곤죽이 되도록 술을 마신 두 남자는 교통사고를 당한다. 운전대를 잡은 덱스터는 경미한 찰과상에 그쳤지만, 옆자리의 존은 C5, C6 척추를 다치면서 전신 마비 환자가 된다.

병원에서 존은 자원봉사자 아누(루니 마라 분)를 만나고 잃어버린 웃음을 되찾는다. 그는 재활 치료를 견뎌내고 휠체어를 타게 되지만 여전히 술을 찾는다. 간병인에게 욕세례를 퍼부으면서까지. 알코올 중독자 모임을 찾아간 존은 리더 격인 도니(조나 힐 분)의 ‘바지 두 벌’ 이야기가 유독 유쾌하고 솔깃하다.

존은 다짜고짜 도니에게 전화를 걸어서 후원자 역할을 부탁한다. 도니는 후원 받는 사람, 즉 피글렛이 되고 싶다면 자신의 집에서 열리는 그룹 토크에 오라고 초대한다. 그곳에서 자포자기로 고착된 존의 생각들이 차츰 유연해진다. 존은 자신처럼 중독자였던 그들을 향해 농을 섞어서 말한다. “난 여러분이 좋아요. 다들 제정신이 아니잖아요.” 그리고 존이 손가락 사이에 펜을 꽂고 그려 낸 카툰이 지면에 실리게 되고 카툰 작가로 이름을 드날리게 된다.

지난달 25일 개봉한 ‘돈 워리(Don’t Worry, He Won’t Get Far on Foot)’는 포틀랜드의 저명한 카툰 작가 존 캘러핸(1951~2010)이 쓴 동명의 자서전을 근간으로 한다. 자서전을 읽고 매료되어 판권을 구입한 로빈 윌리엄스는 ‘굿 윌 헌팅’(1997)을 촬영하면서 감독인 구스 반 산트에게 연출직을 제안한다. 제작 겸 주인공 역을 맡을 로빈 윌리엄스의 바쁜 스케줄로 인해 거푸 미뤄지던 영화는 2014년 로빈 윌리엄스의 죽음으로 제작 중단에 다다른다. 그렇지만 구스 반 산트는 로빈 윌리엄스의 뜻을 잇는다. ‘돈 워리’는 촬영 기간은 25일이었지만, 20여 년이 걸려서야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던 작품이다.

존 캘러핸 역이 로빈 윌리엄스에서 와킨 피닉스로 바뀌면서 존 캘러핸의 시간도 1970년대로 자리 이동한다. 구스 반 산트는 현재와 과거를 능란하게 교차시키면서 시간의 밀도, 즉 감정의 밀도를 강화한다. ‘아이다호’(1991) ‘엘리펀트’(2003) ‘파라노이드 파크’(2007) ‘밀크’(2008)를 잇는, 경계에 서있는 사람들을 향한 한결같은 시선도 묵직하다. 자칫 무겁게 흘러갈 서사에 한 줄기 햇살처럼 일렁이는 대니 엘프먼의 음악도 조화롭다. 로빈 윌리엄스가 열고 구스 반 산트가 닫은 ‘돈 워리’에는 ‘굿 윌 헌팅’의 느낌이 진득하게 묻어난다.

입양아였던 존 캘러핸은 13살 때부터 술을 마셨다. 그 후 줄곧 술잔을 들이켰다. 그 어디에도 소속감을 못 느꼈던 존은 자기 연민에 빠져 술독에서 허우적거렸다. 존이 생모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고는 아일랜드계 미국인, 빨강 머리, 학교 선생님 그리고 자신을 원치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생모를 찾으려고 휠체어를 탄 채 기관을 찾아가지만 결과는 뜨악하다. 매일매일 상처와 씨름하는 그에게 보여지는 체조 선수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비틀거리는 자신을 담아내는 허상과도 같다. 결국 존은 도니의 충고로 진심 어린 용서를 하기에 이른다. 알코올 중독과 전신 마비의 한복판에 있는 생모와 덱스터를. 그리고 그들보다 더욱 용서하기 힘든, 그릇된 선택으로 인생을 망친 스스로를.

전신 마비였던 존 캘러핸은 자신의 몸을 철인 경기 선수와 사후 경직 사이쯤으로 정의할 만큼 톡 쏘는 화법의 소유자다. 또한 ‘재미있는’ ‘재미없는’ ‘아누에게’ ‘준비 중’으로 카툰을 추리면서 되새김질한다. 그의 예상을 뛰어넘는, 거침없는 카툰은 호불호가 갈렸다. 누군가는 유머에 격하게 공감하고, 누군가는 선을 넘는다며 불쾌함을 드러냈다. 구스 반 산트는 “(존 캘러핸은) 이상할 정도로 사람들을 무서워했다. 하지만 만화를 그리고 나서부터 사람들을 자기 만화에 나오는 주인공쯤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존은 카툰을 통해 세상과 어울리게 된 것이다.

조나 힐은 도니라는 인물에 빈틈없이 스며들었다. 표정만으로도 속말이 그려질 만큼. 골칫거리 존과 최고의 멘토 도니가 나누는 대화는 ‘돈 워리’에서 누릴 수 있는 커다란 즐거움이다. 특히 ‘노자’를 중심에 둔 대화가. 조나 힐은 평범한 일상을 기념할 줄 아는 도니 역으로 존재감을 발한다. 또 덱스터를 연기한 잭 블랙의 연기도 좋다. 그는 희극 속에 놓이면 물 만난 고기처럼 놀지만, 비극 속에 놓이면 애잔스러운 감정 표현이 기막히다.

루니 마라는 스크린에서는 존 캘러핸의 연인 아누이고, 스크린 밖에서는 와킨 피닉스의 연인이다. 아누는 존이 외진 시골의 촌뜨기라는 공통분모로 억지스레 묶어도 미소를 잃지 않는다. 그녀는 그의 코에 꽃다발을 가져가며 삶의 향기를 끌어오고, 그에게 당신은 특별한 사람이라며 의지를 북돋우고, 과거 속에 머무르고 있는 그의 현실을 일깨우고, 일 때문에 그의 곁을 떠날라치면 “잠시만 안녕”이란 달콤한 주문을 걸고 사라진다. 볼우물이 참 고운 루니 마라는 첫 등장부터 존의 마음도, 관객의 마음도 훔친다.

노자의 ‘도덕경’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우울한 사람은 과거에 살고 불안한 사람은 미래에 살고 편안한 사람은 현재에 산다’고. 와킨 피닉스는 과거에 붙들려서 자신을 극한으로 내모는 존 캘러핸도, 휠체어가 쓰러져도 웃음이 먼저 나는 현재를 즐기는 존 캘러핸도 풍부한 질감으로 그려낸다. 그가 카툰을 그리려고 손가락 사이에 꽂은 펜 끝에서도 감정이 파닥거린다. 표정의 끝마저 살아있는 와킨 피닉스는 존이 병원에서 아누를 처음 발견한 순간, 재활센터에서 그가 휠체어를 처음으로 움직이던 순간, 알코올 중독자 모임에서 그가 도니의 이야기를 처음 듣던 순간의 웃음을 다 다르게 담아낸다.

와킨 피닉스는 폴 토머스 앤더슨의 ‘마스터’(2012), 스파이크 존즈의 ‘그녀’(2013), 린 램지의 ‘너는 여기에 없었다’(2017)에서도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었다. 토드 필립스의 ‘조커’가 기다려지는 이유도 바로 와킨 피닉스 때문이다. 히스 레저가 조커의 절댓값을 뽑아냈다고 생각하지만, 와킨 피닉스의 조커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가 빚어내는 욕망은 소스라칠 만큼 강렬한 감정들이 부글거리는 까닭이다.

감정의 요철을 드러내는 와킨 피닉스의 연기를 마주하면 번번히 마음이 뒤설렌다.

박미영 작가 stratus@tenasia.co.kr

[박미영 영화 ‘하루’ ‘빙우’ ‘허브’, 국악뮤지컬 ‘변학도는 왜 향단에게 삐삐를 쳤는가?’, 동화 ‘꿈꾸는 초록빛 지구’ 등을 집필한 작가다.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스토리텔링 강사와 영진위의 시나리오 마켓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다. 현재 텐아시아에서 영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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