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박미영 작가]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 스틸컷.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 스틸컷.
*이 글에는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스포일러가 가득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아이언맨이, 누군가에겐 캡틴 아메리카가, 누군가에겐 헐크가 첫 히어로였다. 누군가에겐 토르가, 누군가에겐 블랙 위도우가, 누군가에겐 호크아이가 최고의 히어로였다. 어느 즈음부터는 순서도 순위도 큰 의미가 없었다. 어벤져스인 그들만 어울린 것이 아니라 관객인 우리도 함께였던 까닭이다. 새 얼굴은 반갑게 맞이하고, 연결 고리에는 찌릿해 하고, 익숙함을 넘어서 친숙한 농담에 낄낄거리고, 마주하는 순간 미소가 머금어지는 숨은 그림 ‘스탠 리’를 찾고….

딸에게 활 쏘는 법을 코칭하던 호크아이(제레미 레너)는 망연하다. 방금 전까지도 함께였던 아내와 아이들이 홀연히 사라졌기에. 아직 호크아이는 타노스의 핑거스냅으로 생명체의 절반이 사라진 현실을 모르기에 아연할 따름이다. 우주에 네뷸라(카렌 길런)와 함께 남겨진 아이언맨(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은 페퍼(기네스 팰트로)를 향한 절절한 영상을 남긴다. 끝없는 우주 공간이 주는 두려움과 마주하고 있고, 늘 당신 꿈을 꾼다고.

아이언맨은 캡틴 마블(브리 라슨)의 도움으로 지구에 살아 돌아온다. 그는 혹여 도움이 될 만한 정보가 있을까 묻는 캡틴 아메리카(크리스 에반스)에게 단서도, 전략도, 아이디어도, 그리고 믿음도 없다고 일갈한다. 아이언맨을 제외한 멤버들은 포털을 열고 사라진 타노스(조시 브롤린)가 있는 행성으로 쫓아간다. 타노스가 손가락을 튕겨서 사라진 모든 것을 되돌릴 기회를 꿈꾸면서. 그러나 그들은 타노스가 마지막 희망이었던 인피니티 스톤을 원자의 형태로 사라지게 한 것을 알고는 절망한다. 격노한 토르(크리스 헴스워스)는 스톰 브레이커로 타노스의 목숨을 끊는다.

5년 뒤. 특유의 활력을 잃고 을씨년스러운 지구, 일시에 소중한 누군가를 잃은 이들의 상처는 시간이 흘러도 치유되지 않는다. 남겨진 사람들은 꾸역꾸역 하루를 살아간다. 가족과도 같은 동료를 잃은 어벤져스도 별반 다르지 않다. ‘치유 모임’에 참가한 캡틴 아메리카는 최근 데이트를 시작한 한 남자의 고백을 듣는다. 상대방은 샐러드가 나오는 순간 울었고, 자신은 디저트가 나오기 직전에 울기 시작했다고. 캡틴 아메리카는 그에게 삶의 목적을 찾아야 한다고 독려한다. 블랙 위도우(스칼렛 조핸슨)는 워머신(돈 치들)으로부터 범죄자들을 찾아서 처단하는 호크아이의 피비린 행보를 듣는다. 그녀의 눈가에 스르륵 눈물이 차오른다.

양자 영역에 갇혀있던 앤트맨(폴 러드)은 우연찮게 쥐의 도움을 받아 탈출한다. 어벤져스 본부로 찾아간 그는 캡틴 아메리카와 블랙 위도우를 만난다. 앤트맨은 자신이 양자 영역에 머물렀던 시간은 5시간이었지만 이곳은 5년이 흘렀다며, 시간이 다르게 움직이는 양자 영역을 이용해 과거로 가서 인피니티 스톤을 먼저 가져오자고 제안한다. 캡틴 아메리카와 블랙 위도우는 양자 물리학을 근간으로 한 앤트맨의 아이디어에서 희망의 불씨를 지핀다.

아이언맨은 숲속에 위치한 한적한 집에서 페퍼와 딸 모건과 함께인 현재가 소중하다. 그가 “우주만큼 사랑해”라고 하면, “3000만큼 사랑해”라고 어여쁜 반응을 내놓는 딸로 인해 더더욱. 그래서 그는 도움을 구하는 동료들의 청을 외면하지만 결국 뜻을 같이한다. 시공간 GPS와 캡틴 아메리카에게 줄 방패를 들고서. 스스로 질병처럼 여겼던 헐크의 존재를 끌어안은, 힘과 두뇌가 하나로 합쳐진 헐크(마크 러팔로)는 로켓(브래들리 쿠퍼)과 함께 ‘뉴 아스가르드’의 토르를 찾아간다. 헐크는 술과 슬픔에 절어있는 토르를 다시 일으키고, 블랙 위도우는 살인병기로 살아가는 호크아이를 희망으로 설득한다. 속속 가세하는 멤버들로 다시금 어벤져스가 꾸려진다.

어벤져스는 ‘시간 강탈 작전’으로 명명한 작전을 총 세 팀으로 나눠서 감행한다. 목표는 여섯 개의 인피니티 스톤. 시간 여행 슈트를 착용한 그들에게 핌 입자는 각자 왕복할 양만큼만 남아있기에 기회는 오직 한 번. 그들은 2012년 미국 뉴욕, 2013년 아스가르드 행성, 2014년 모라그 행성으로 진입한다. 친구, 가족, 자신의 일부마저 잃어버린 5년을 되돌리기 위해서, 어벤져스는 일생의 미션이라는 각오로 뛰어든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이하 MCU)에서 앤서니 루소, 조 루소 감독은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2014)를 출발점으로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2016)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2018) ‘어벤져스: 엔드게임’(2019)의 여정을 함께했다. 루소 형제가 그려내는 히어로들의 여정은 이 다음이 궁금한, 관객까지 홀리는 서사였다.

앤트맨을 멍뭉이 취급하며 우쭈쭈 놀리는 로켓, 로켓을 인형 취급하는 아이언맨, “그린(Green)!” 하며 어린이 팬들과 사진을 찍어주는 헐크, 헐크의 인기에 밀려서 토라지는 앤트맨처럼 티격태격으로 버무려지는 캐릭터 간의 화학 작용은 익숙하지만 유쾌하다. 녹은 아이스크림처럼 변해버린 토르를 비롯해서 몸집도 마음가짐도 달라진 히어로들은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과거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서 자신의 장기인 슈퍼 파워가 아니라 기지로 위기를 넘기는 순간도 재미가 진진하고, 그들이 각별한 사람과 마주하는 순간은 애틋한 여운을 남긴다.

클라이맥스의 찬연한 대전투에서는 히어로들이 대거 출격한다. 아이언맨부터 워머신, 페퍼, 스파이더맨(톰 홀랜드), 토르, 발키리(테사 톰슨),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세바스천 스탠), 팔콘(앤서니 마키), 헐크, 호크아이, 스타로드(크리스 프랫), 가모라(조이 살다나), 로켓, 그루트, 드랙스(데이브 바티스타), 맨티스(폼 클레멘티에프), 네뷸라, 스칼렛 위치(엘리자베스 올슨), 앤트맨, 와스프(에반젤린 릴리), 닥터 스트레인지(베네딕트 컴버배치), 웡(베네딕트 웡), 블랙 팬서(채드윅 보스먼), 오코예(다나이 구리라), 슈리(러티샤 라이트) 그리고 캡틴 마블까지. MCU의 10년을 훌쩍 넘긴, 방대한 서사를 집대성한 이번 작품에서 터져 나오는 “어벤져스 어셈블(Avengers Assemble)!”은 강렬하게 몰아치는 한방이다.

역대급 빌런 타노스는 우주를 산산조각 내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나의 심장은 산산조각 내는 꽤 매력적인 존재였다. 악당스럽지 않은 행보나 스러지는 순간의 무구한 눈빛이 그러했다. 이번 작품에는 카메오로 출연한 고(故) 스탠 리의 모습은 있지만, 쿠키영상은 없다. 대신에 그 자리는 각별한 엔딩 크레딧으로 채워진다. 어벤져스 원년 멤버인 호크아이 역의 제레미 레너, 블랙 위도우 역의 스칼렛 조핸슨, 토르 역의 크리스 헴스워스, 헐크 역의 마크 러팔로, 캡틴 아메리카 역의 크리스 에반스, 아이언맨 역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사진과 서명을 입혀서.

페퍼가 아이언맨에게 선물했던, ‘토니에게 따뜻한 가슴이 있다는 증거’라는 문구가 새겨진 최초의 아크리액터는 참으로 뭉클하다. 아이언맨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남겨진 이들을 걱정하는, 진짜 히어로였기에. 극 중에서 블랙 위도우는 캡틴 아메리카에게 이런 말을 한다. “나에게는 아무 것도 없었어. 그러다 이 일과 이 가족을 만났지. 그로 인해 난 달라졌어.” 블랙 위도우의 속말은 더없이 먹먹하다. 히어로물에 아무 관심이 없던 관객마저도 어벤져스를 만나고 달라졌다. 블랙 위도우에게 어벤져스가 가족이듯, 관객에게도 어벤져스는 가족과도 같은 존재가 된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떠나보내야 할 히어로 앞에서, 스크린 속 배우 뿐 아니라 스크린 밖 관객인 우리의 눈에도 눈물이 차오른다.

우리는 어벤져스의 심장으로 세상과 마주했다. 그들과 나란히 걷고, 이따금 날기도 했다. 그래서 그들이 없는 세상, 즉 그들이 등장하지 않는 스크린을 생각하려니 가슴이 미어진다. 머리로는 끝임을 알지만, 심장에서는 사그라들지 않는 ‘다음에 계속’을 되뇌고 있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마침표였던, 아이언맨 슈트를 제작할 때의 망치질 소리를, 아이언맨의 탄생을 알렸던 그 소리를 차마 떨쳐내지 못할 듯싶다.

박미영 작가 stratus@tenasia.co.kr

[박미영 영화 ‘하루’ ‘빙우’ ‘허브’, 국악뮤지컬 ‘변학도는 왜 향단에게 삐삐를 쳤는가?’, 동화 ‘꿈꾸는 초록빛 지구’ 등을 집필한 작가다.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스토리텔링 강사와 영진위의 시나리오 마켓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다. 현재 텐아시아에서 영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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