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테인먼트 전문 미디어 텐아시아가 ‘영평(영화평론가협회)이 추천하는 이 작품’이라는 코너를 통해 영화를 소개합니다. 현재 상영 중인 영화나 곧 개봉할 영화를 영화평론가의 날카로운 시선을 담아 선보입니다. [편집자주]
영화 ‘로마’ 포스터/사진제공=넷플릭스
영화 ‘로마’ 포스터/사진제공=넷플릭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가 열렸다. 극장과 넷플릭스 앱에서 거의 동시에 열려서 관객은 자신의 환경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극장에서의 ‘로마’는 큰 화면과 입체적인 공간감을 만들어내는 사운드, 몰입감에서 오는 증폭된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앱으로 즐긴다면 극장의 환경에는 못 미치겠지만, 대신 구간 반복을 하거나 화면을 정지시키거나 하면서 소리의 정체를 찾고 장면을 분석하고 가족이나 친구와 이야기하면서 영화를 볼 수도 있다. 어떤 방식이 우월하다거나 필수적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영화는 산업이면서 매체의 특성이 있지만 동시에 예술이니 어떻게 경험하더라도 많은 것이 관객에게 달려있다.

영화는 영화감독이 유년기를 보낸 1970년대 초 멕시코시티 로마 지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감독이 밝혔듯이 영화는 자신의 유년에 관한 이야기이고, 자신을 기른 여성들에 대한 헌사다. 때문에 원주민계의 가정부 클레오와 백인 중산층 가족의 아내인 소피아가 이야기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클레오는 감독의 어린 시절 기억에서 기반한 인물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유년을 채우고 붙잡은 중력을 만들어준 여성이기도 하다. 비전문 배우인 얄리트사 아파리시오는 원주민 언어를 배워가면서 연기를 했다고 하는데 연기의 기술을 뛰어넘는 특유의 표정과 정서가 화면 밖으로도 전해진다.

영화 ‘로마’의 한 장면. /사진제공=넷플릭스
영화 ‘로마’의 한 장면. /사진제공=넷플릭스
영화가 시작되면 불안한 평화로움을 깨며 두 여성에게 위기가 닥친다. 외과 의사인 남편의 외도와 가출로 가족들은 경제적으로, 정서적으로 위기를 맞는다. 소피아는 예민해지고 신경질을 자주 내며 무너진다. 게다가 클레오는 임신 사실을 알게 되지만 믿었던 남자친구에게서 버림받는다.

당시의 멕시코에서는 ‘성체축일 대학살’이라는 좌파와 우파의 충돌이 있었다. 무장 극우단체에 의해 좌파의 시위대가 전멸하다시피 한 사건이다. 어쩌면 이 사건은 당시의 멕시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지도 모른다. 문득 일어난 불행이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전 분야에서 이러한 갈등과 부조리의 압력이 높아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시기를 분열되는 가족, 혹은 더 단단히 결합하는 한 식구의 이야기를 통해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영화에서 타인의 비극을 바라보는 냉정한 시각을 경험한다. 동시에, 비극의 한가운데로 초대된 듯한 경험도 한다. 감독의 세밀한 시청각의 디자인에 따라 우리는 시공간을 공유하는 것처럼 느껴지고 어느새 감독의 유년을 공유하게 된다.

영화 ‘로마’의 한 장면. /사진제공=넷플릭스
영화 ‘로마’의 한 장면. /사진제공=넷플릭스
감독은 영화를 통해 시간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는 데 성공한 듯하다. ‘비극 이후에 시간은 어떻게 흐르는가?’에 대한 답일 수도 있다. 시간이 직선으로 흐르고 중요한 사건에 따라 운명의 흐름이 변한다는 인식이 아니라 나선형으로 시간이 흐르고 중요한 모티브의 사건이 반복적으로 다양한 양상으로 재연된다. 여기서 불운한 사건은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힘, 파도처럼 밀려오지만 이를 정화하고 치유하는 힘도 거친 파도를 가로지르고 겨울의 추위를 몰아내고 불운을 깨끗하게 씻는다. 그리고 이 힘은 대개 클레오의 손에서 나온다. 씻기고 먹이고 입히는 부지런한 손이 비극을 정화하는 시간의 얼굴인 것이다.

이 영화를 추천하며 한 신을 덧붙이고 싶다면 이 장면이다. 옥상에서 손빨래를 끝낸 클레오와 페페의 ‘시체놀이’ 장면이다. 만다라 그림처럼 반복되는 움직임으로 빨래하는 주변의 옥상에 선 여러 명의 클레오들과 하늘에 걸린 빨랫감을 둘러보는 장면을 꼭 되돌려 보기를 권한다.

정지혜(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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