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노규민 기자]
영화 ‘뷰티풀 데이즈’ 포스터/ 사진제공=페퍼민트앤컴퍼니
영화 ‘뷰티풀 데이즈’ 포스터/ 사진제공=페퍼민트앤컴퍼니
중국에 살고 있는 19살 재중동포(조선족) 대학생 젠첸(장동윤)은 ‘엄마’라는 존재를 잊고 살아왔다. 그러나 14년 전 자신을 버리고 간 엄마(이나영)를 찾아 한국으로 향한다. 병세가 악화 돼 세상을 떠날 준비를 하는 아버지의 마지막 부탁 때문이다.

한 술집에 들어선 젠첸. 주위에서 남녀가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조심스럽게 주변을 둘러본다. 그러다 한 여자의 목소리에 귀를 귀울인다. 자신 가까이에 엄마가 있다는 걸 직감한다.

젠첸은 새벽녘 술집 영업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엄마의 뒤를 쫓았다. 그러다 한 사내로부터 기습 공격을 당한다. 사내는 엄마의 동거남(서현우)이다.

얼떨결에 엄마의 집에 이끌려 간 젠첸. 떨어져 지낸 지가 꽤 오래 됐고, 엄마와 함께했던 시간이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그녀가 술집을 운영하는 것도, 동거남이 있다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엄마는 14년 만에 아들을 만났지만 담담하다. 웃지도 울지도 않는다. 마치 어제 만난 사람을 대하 듯 한다. 그녀가 살아온 지난 세월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관객은 젠첸이 우연히 발견한 엄마의 일기장을 통해 16살에 탈북한 이후 30대 중후반이 된 그녀의 굴곡진 삶을 따라가게 된다.

영화 ‘뷰티풀 데이즈’ 스틸/ 사진제공=페퍼민트앤컴퍼니
영화 ‘뷰티풀 데이즈’ 스틸/ 사진제공=페퍼민트앤컴퍼니
‘뷰티풀 데이즈’는 윤재호 감독이 ‘분단 그리고 경계선에 서 있는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지난 7년간 제작한 다큐멘터리 ‘약속’ ‘북한인들을 찾아서’ ‘마담B’ 등을 만들어 오면서 기획한 장편 영화다.

‘마담B’와 단편 ‘히치하이커’ 등 두 편을 칸 국제영화제에 선보이며 실력을 인정 받은 윤 감독은 아픈 기억을 안고 담담하게 살아가고 있는 한 여자의 이야기를 섬세한 연출로 담아냈다. 특히 각 장면마다 푸른색, 붉은색 등 분위기에 맞는 배경과 의상 등을 배치해 유려한 미장센을 완성했다.

‘뷰티풀 데이즈’를 통해 6년 만에 스크린에 컴백한 이나영은 공백이 무색할 정도로 몰입도 높은 연기로 극을 이끈다. 10대부터 30대까지 파란만장한 삶을 사는 동안 내·외적으로 변하는 여자의 모습을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통해 표현했다.

영화 ‘뷰티풀 데이즈’에서 10대부터 30대까지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준 배우 이나영./ 사진제공=페퍼민트앤컴퍼니
영화 ‘뷰티풀 데이즈’에서 10대부터 30대까지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준 배우 이나영./ 사진제공=페퍼민트앤컴퍼니
화장품, 의류 등 여러 광고를 통해 드러난 이나영의 아름다움만 생각하고 연기력에 의심을 품는다면 오산이다. 이미 그녀는 2004년 개봉한 영화 ‘아는여자’를 통해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실력을 인정 받은 배우다. 그는 지금껏 여리고 예쁜 멜로 드라마의 여주인공 대신 ‘네 멋대로 해라’ ‘아는 여자’ ‘하울링’ 등에서처럼 독특하고 개성있는 배역을 주로 연기했다.

이나영은 최근 ‘뷰티풀 데이즈’와 관련한 인터뷰에서 “하고 싶은 작품을 관객들에게 자신 있게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공백이 길었던 이유를 설명했다. 무엇보다 이번 작품을 노개런티로 출연해 화제가 됐다. 그만큼 연기에 대해 고집이 있고, 소신도 있다. 괜한 고집을 부린 것이 아니라는 건 연기를 통해 증명한다.

아들 젠첸을 연기한 장동윤도 주목해야 한다. 회차가 적어 롱테이크로 찍은 장면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신인답지 않은 감정 몰입이 눈길을 끈다. 클로즈업과 긴 호흡을 통해 보여지는 그의 연기를 보는 것도 관전 포인트다.

영화는 엄마의 일기장을 통해 밝혀지는 이야기로 분단사회에서 생기는 정체성의 혼란을 현실감 있게 담아낸다. 다소 어둡지만 그 안 에서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는다.

굴곡진 여자의 삶과 비교해 영화는 잔잔하다. 배우들의 눈빛, 표정, 행동으로 극이 채워진다. 화려한 액션은 없지만 보는 내내 긴장감이 감돈다. 후반부엔 생각지도 못한 반전이 있다. 눈물샘이 터질 만큼 슬픈 장면도 없다. 크게 요동치지 않아 오히려 먹먹한 여운이 남는다.

오는 21일 개봉.

노규민 기자 pressgm@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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