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박미영 작가]
영화 ‘앤트맨과 와스프’ 스틸컷
영화 ‘앤트맨과 와스프’ 스틸컷
문득, 책으로 나누었던 개미와의 인연을 짚어보고 싶었다.

출발선에 놓이는 작품은 ‘개미와 베짱이’다. 안전한 노후를 지향하는 개미와 욜로를 지향하는 베짱이의 삶으로 교훈을 주려는 동화다. 노후라는 표현에 멈칫할 수 있지만, 일개미로 추정되는 이야기 속 주인공의 수명을 1년으로 내다봤을 때 크게 어긋나지는 않을 듯싶다. 하여튼 어린이였던 나는 개미에게 그리 끌리지가 않았다.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으레 품어야 할 굴곡이 크지 않았던 까닭이다.

마구 애정을 퍼붓는 시리즈 중에서 책 커버가 적갈색 30권, 파랑색 30권으로 구성된 1983년판 계몽사 ‘소년소녀 세계문학전집’이 있다. 21권 남유럽 동화집 첫머리에 ‘촌도리노의 모험’이라는 동화가 실려 있다. 공부에 진저리를 내던 소년이 툭 내뱉은, 개미가 되고 싶다는 말로 인해 진짜 개미가 되어 버리는 이야기다. 개미를 의인화하여 표현하지 않고 곤충 본연의, 즉 개미의 삶에 밀착해서 그려낸 작품이었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을 읽고 있으면 한 마리의 개미가 되어서 기어가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대학입학 면접시험을 볼 때였다. 문예창작학과에 맞는 예상 질문으로 시뮬레이션을 했던 차라 크게 긴장하지는 않았다. 면접관이던 교수님이 최근에 읽은 책을 물었다. 미리 준비한 대로 가장 좋아하는 책이나 작가가 아니었다. 동전을 먹은 자판기처럼 바로 답을 뱉을 수밖에 없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개미’라고 답했다. 친구에게 생일선물로 받은, 꽤 긴 시간 부동의 베스트셀러였던 작품이다. 지금도 교수님의 눈빛이 선연하다. 눈으로 ‘유행을 쫓는 학생이로군’ 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의류학과에서는 마뜩할 취향이, 문예창작학과에서는 마뜩하지 않을 취향이었나 싶다. 어릴 적 개미에게 흠뻑 빠진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12년에 걸쳐 집필한 ‘개미’는 이따금 개미에게 흠뻑 빠지는 나에게도 여전히 다시 읽고 싶은 작품이다. 개미의 시점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앤트맨’이 2인조 ‘앤트맨과 와스프’(감독 페이튼 리드)로 돌아왔다. 마블의 히어로 중에서 가장 서민적인 캐릭터 앤트맨은 이야기의 중심에 늘 가족이 존재한다. 그래서 마블의 시리즈 중 가족용으로 가장 안전한 선택지이기도 하다. 스캇(폴 러드)이 2년의 가택연금으로 집에 묶여있는 지점도 맥을 같이 한다. 불법적인 도둑질이 아니라 합법적인 보안 회사를 차린 동료들, 깜찍하게도 앤트맨 아빠의 파트너를 꿈꾸는 캐시, 껄끄럽기 쉽지만 만나면 덥석 안는 전부인의 남친 팩스턴(바비 카나베일)마저 그에게 따뜻한 응원을 보낸다.

어느 날, 스캇은 1대 와스프이기도 한 행크 박사(마이클 더글라스)의 처 재닛(미셸 파이퍼)과 자신의 존재가 겹쳐지는 이상한 꿈을 꾼다. ‘시빌 워’ 사건으로 등을 돌렸던 행크 박사와 호프(에반젤린 릴리)에게 곧장 연락을 취한다. 전편에서도 등장한 시공간의 개념이 사라지는 양자영역이 이번에는 주요한 설정으로 기능한다. 재닛은 붙들고, 스캇은 돌려보냈던 그곳이 말이다. 스캇은 2대 와스프인 호프와 더불어 다시금 앤트맨으로 활약하게 된다.

흠결도 수두룩하다. 빌런, 즉 악당이 너무도 미미해서 갈등으로 달구어지지가 않는다. 전편의 ‘꼬마기관차 토마스’를 대체할 ‘헬로 키티’가 등장하지만 강렬하지 않다. 무엇보다 제 몸무게의 50배를 드는 능력자인 개미들의 존재감이 약해졌다. 전편에서 유령개미, 총알개미, 왕개미, 불개미가 자신의 특기를 발휘해서 앤트맨과 활약했다면, 이번 편에서는 의인화된 개미들로 여겨질 만큼 인간의 역할을 대신했다. 파트너 와스프의 등장으로 분량이 줄 수는 있지만, 개미로서 줄 수 있는 재미가 줄어든 지점은 못내 아쉽다.

강점도 분명하다. 앤트맨의 사이즈만 불린 것이 아니라 유머를 한껏 불려서 왔다. 대체 불가한 웃음꾼 스캇 뿐 아니라 절친 루이스(마이클 페나)와 가택 연금을 책임지는 FBI 요원 우(랜들 파크)의 역할도 톡톡하다. 전편처럼 샛길로 잘 빠지는 루이스의 더빙 드라마가 펼쳐지는데 상황과 물려서 착착 달라붙는다. 또한 FBI 요원 우의 심하게 많은 빈틈은 은근 귀엽기까지 하다.

짙은 그리움으로 어머니를 쫓는 호프를 보려니, 우리 가족에게 종종 회자되는 일명 ‘개미야’라는 대화가 떠올랐다. 대전에 살던 시절, 둘째를 출산하고 조리원으로 가면서 큰애를 서울의 친정에 맡겼다. 내놓고 엄마를 찾지 않던 속 깊은 네 살배기 아들은 놀이터의 흙을 기어가는 개미를 보며 나직이 말을 걸더란다. “개미야, 개미야! 엄마한테 가니? 나는 대전에 우리 엄마가 동생을 낳아서 함미(외할머니) 집에 왔어. 개미야, 너도 엄마가 많이 보고 싶구나?”

네 살에도 개미와 소통하던 소년은 십년 후인 지금도 앤트맨과 유독 각별하다. 마블의 빌런까지 살뜰하게 챙기는 열네 살이니 누구 하나 애착이 가지 않겠는가만은. ‘앤트맨과 와스프’에는 총 2개의 쿠키 영상이 있다. 혹자에게는 본편보다 더 인상적일 수도 있는 쿠키였다. 첫 쿠키는 충격을, 마지막 쿠키는 여운을 남겼다. 개인적으로 마지막 쿠키에서 아들의 모습이 잠깐 겹쳐졌다. 음악도, 개미도 포기할 수 없는 열네 살의 배짱 넘치는 개미인간을 마주한 듯싶다.

박미영 작가 stratus@tenasia.co.kr

[박미영 영화 ‘하루’ ‘빙우’ ‘허브’, 국악뮤지컬 ‘변학도는 왜 향단에게 삐삐를 쳤는가?’, 동화 ‘꿈꾸는 초록빛 지구’ 등을 집필한 작가다.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스토리텔링 강사와 영진위의 시나리오 마켓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다. 현재 텐아시아에서 영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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