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현지민 기자]
영화 ‘기억의 밤’ 스틸
영화 ‘기억의 밤’ 스틸
시작은 미약하지만 끝은 창대하리라. 지금은 보잘 것 없을지라도 결국엔 성공할 것이라는 희망적인 메시지다. 영화의 경우라면 어떨까. 밋밋하게 시작해 점진적으로 재미를 이끄는 작품이라면?

‘기억의 밤’은 납치된 후 기억을 잃고 변해버린 형 유석(김무열)과 그런 형의 흔적을 쫓다 자신의 기억조차 의심하게 되는 동생 진석(강하늘)의 엇갈린 기억 속 살인사건의 진실을 찾아가는 미스터리 추적 스릴러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새 집으로 이사하게 된 진석은 마냥 행복하다. 낯선 집이지만 왠지 낯설지가 않다. 한 방을 쓰게 된 형과는 둘도 없는 사이다. 그러던 중 형이 납치되는 것을 목격하고 절망에 빠진다. 19일 만에 형이 돌아오고,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형은 밤마다 외출하며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그 사람 우리 형 아니야”라고 주장하는 진석과 “네가 본 건 다 꿈이야”라고 말하는 유석. 둘 중에 하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기억의 밤’은 관객들의 추리 본능을 꿈틀거리게 한다.

하지만 추리를 하고 싶어지기 전까지 꽤 지루한 과정이 반복된다. 한마디로 친절하기에 밋밋하다. 진석은 내레이션을 통해 형이 자신과 가족에게 어떤 존재인지 일일이 설명한다. 진석이 쌓아온 기억이 교차 편집되며 설명을 뒷받침해준다. 관객들에게 생각할 여지를 주지 않는 전개가 이어진다.

진석에게 주어진 “방문을 절대 열면 안 된다”는 금기는 뻔한 전개를 예측케 한다. 여기에 관객들을 놀라게 하려고 의도적으로 배치된 장치들 역시 몰입을 방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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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갑갑함이 끝까지 이어지진 않는다. 이야기가 관객들의 예측을 깨고 반전을 쏟아내는 순간, 이전의 뻔한 전개에도 개연성이 부여된다. 한없이 다정했던 가족이기에 그들에게 낯섦을 느끼는 진석의 모습은 긴장감을 유발한다. 예상을 하나씩 깨나가는 전개는 관객들을 ‘멘붕(멘탈 붕괴)’시킨다.

그제야 영화가 그토록 친절했던 이유가 납득이 간다. 반전되는 상황을 더욱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가 필요했던 것.

강하늘과 김무열의 존재감은 강렬하다. 강하늘은 신경쇠약증을 앓고 있기에 기억이 온전하진 않지만 누구보다 순수한 눈빛을 뽐내고, 김무열은 접점 없는 극과 극의 인물을 이질감 없이 표현한다. 두 사람의 양보 없는 열연은 관객들을 혼란스럽게, 또 먹먹하게 만든다.

한 공간 안에서 다른 삶을 사는 두 남자, 이들 각자의 절박함이 충돌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신선하지만 이들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선 조금의 인내가 필요하다. 오늘(29일) 개봉. 15세 관람가.

현지민 기자 hhyun418@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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