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박미영 시나리오 작가]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포스터 / 사진제공=영화사 오원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포스터 / 사진제공=영화사 오원
포스터 때문이었다. 재개봉을 알고는 있었지만 1995년 극장에서 이 영화를 처음 만난 이후 DVD로도 이따금 보는 영화라서 다시 극장에서 볼 마음까지 품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이 포스터를 만났다. 포스터에 삽입된 프란체스카의 편지는 로버트 뿐 아니라 필자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오래 전 그 포스터가 사랑의 진행형이었다면, 이 포스터에는 아직 사랑을 시작하기 전의 설렘이 담겨 있다. 풋풋함을 풍기는 포스터는 비록 나이는 중년일지라도 소년과 소녀의 영혼인 그들과 더 닮아 있다. 박람회에 간 가족들과 달리 집에 남은 프란체스카는 사진작가 로버트를 만난다. 그리고 그가 찍으려는 로즈먼 다리의 길잡이가 된다. 그가 감사의 의미로 건넨 꽃다발을 그녀가 독초라고 농담으로 받으며 풋 웃음이 터진다.

순간, 둘 사이에 수줍고 내밀한 공기가 스며든다. 필자에게는 익숙한 이 영화의 메인테마가 흐르기 시작한다. ‘시네마 천국’의 도입부 음악만 들어도 아릿하듯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역시 그러하다. 사실 이 영화에는 음악이 곳곳에 흐른다. 특히 그녀의 집에서 흐르는 라디오의 음악은 조명보다 더 짙은 바탕색이 되어 무드를 조성하고, 마음의 그림자로 등장한다.

현실에서 금지된 사랑은 금기이지만 이야기 세상에서는 가장 절절한 사랑의 형태이기도 하다. 수줍게 그를 훔쳐보는 그녀의 시선은 위태롭고, 아는 이가 하나도 없어야 비로소 자유롭다. 집안을 울리는 전화벨은 알람처럼 그들의 상황을 일깨운다. 그가 자신의 인생 전부를 말하는 것을 그만두고 싶다고 할 때 그녀는 탄식한다. 그들에게 허락된 기한이 임박했기 때문이다.

그와 그녀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왔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운명적인 교집합이 있으니 바로 그녀의 고향인 이탈리아의 바리다. 바리 기차역 건너편에 위치한 작은 식당을 이야기하면서 그들은 어디에 앉았는지 그 모습을 그린다. 같은 공간이지만 다른 시간, 어쩌면 같은 시간일지도 모를 그 곳에서 적어도 그들은 함께였다.

프란체스카를 맡은 메릴 스트립은 요정과도 같다. 어떠한 역할도 그녀는 살포시 내려앉아 캐릭터를 보여주고 사라진다. 놀라운 연기를 하지만 어딘가 늘 닮아있는 연기를 하는 배우들과 비교할 때 눈부신 재능이다. 누가 봐도 하얀 개를 무서운 노란 개라고 천연스럽게 말할 때,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목욕하며 마시라고 권한 맥주를 꽃다발을 받듯 수줍게 받을 때 감탄을 자아냈다. 그리고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대표하는 사거리 이별 장면은 그녀가 필자를 포함한 숱한 관객들에게 선사한 최고의 장면이다.

겨우 4일간이지만 그는 그녀의 삶을 채운다. 귀에는 잊고 있던 귀고리가 찰랑거리고, 음식만 들어있던 냉장고에는 필름이 들어오고, 예이츠의 시와 아프리카와 꿈에 대한 대화들이 채워진다. 그렇게 그녀는 그를 통해 훨씬 더 자신의 모습에 가까워진다.

그는 그녀의 숨은 그림을 찾아낸 것이다.

[작가 박미영은 영화 ‘하루’ ‘빙우’ ‘허브’의 시나리오, 국악뮤지컬 ‘변학도는 왜 향단에게 삐삐를 쳤는가?’의 극본, ‘꿈꾸는 초록빛 지구’ 등의 동화를 집필했다.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스토리텔링 입문 강사와 영화진흥위원회의 시나리오 마켓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다.]박미영 시나리오 작가 press@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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