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테인먼트 전문 미디어 텐아시아가 매주 1회 ‘영평(영화평론가협회)이 추천하는 이 작품’이라는 코너명으로 영화를 소개할 예정입니다. 최근 상영 중인 영화나 곧 개봉할 영화를 영화평론가의 날카로운 시선을 담아 선보이도록 하겠습니다. [편집자주]
‘악녀’ 포스터
‘악녀’ 포스터
‘악녀’가 할리우드 발 영화들 사이에서 선전 중이다. 미라, 해적, 원더우먼, 그리고 악녀. 그렇다, 우리에겐 김옥빈이 있었다. 미처 몰라봤지만 그녀는 ‘여배우’가 아니었다, 액션 배우였다. 칸의 세례를 받은 이 독특한 액션 영화를 몇 가지 방법으로 즐겨 보자.

◆ 여성이 주연인 액션 영화
김옥빈 주연의 액션 영화라니. 김옥빈-주연-액션 사이의 등가 성립에 어쩐지 쾌감이 생긴다. 김옥빈의 손에 들린 장검, 단도, 도끼, 권총, 기관총, 저격총이 이토록 잘 어울릴 줄이야. 이 영화를 기점으로 액션의 공식이 대폭 수정되리라 예상된다. 영화는 킬러 숙희(김옥빈)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킬러로 길러진 숙희는 국가 비밀조직에 스카우트 된다. 숙희가 잃어버린 남자 중상(신하균)과 숙희가 새롭게 만난 현수(성준) 사이에서 숙희는 진짜를 찾으려 분투한다. 운명적으로 얽힌 원죄적 관계의 중상과 숙희를 감시하는 시스템이 짜 놓은 현수 사이에서 숙희는 진짜를 찾을 수 있을까? 아니, 숙희는 자신을 찾을 수 있을까?

◆ 칸의 세례를 받은 장르 영화
70회 칸 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월드 프리미어에 초대되며 궁금증을 한껏 일으킨 이 영화는 개봉 직후, 새롭다는 시선과 진부하다는 극단적인 단평이 오르내리고 있다. 이런 반응 또한 흥미롭다. 유럽의 주류 영화제에 초대 되거나 수상한 소식은 호감과 거부감, 호기심과 의문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칸의 명예라는 것이 서구의 시각 중심으로 생산된 지식인데, 이것이 국내로 들어와 영화의 가치나 지식에 대해 권위 있는 잣대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악녀’ 스틸컷 / 사진=NEW 제공
‘악녀’ 스틸컷 / 사진=NEW 제공
칸이 특별히 편애하는 듯한 동양극한(-Asia Extreme, 동양의 잔혹한 영화들을 일컫는 서구 평론가들의 표현) 장르의 ‘악녀’는 홍콩 누아르 영화나 사무라이 영화 등의 기시감을 떠올리게 한다. 그렇지만 비슷하게 기시감이 느껴지는 영화들 사이에 머물러 있지는 않다. 도심을 질주하는 액션, 슬러시 무비를 연상시키는 사무라이 활극 같은 것이 액션 장인 정병길 감독에게서 새롭게 태어나 액션 영화의 다음세대를 암시한다.

◆ 감당할 수 있겠어?
영화에서 배우의 노출이 없다시피 함에도 영화는 청소년 관람 불가판정을 받았다. 다시 말해 킬러는 섹시하고 악인은 퇴폐적인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임에도 배우의 노출은 전혀 없었다는 것. 청소년 관람 불가는 순전히 강렬한 액션 장면 때문이다. 하지만 액션의 잔인함보다는 영화의 속도를 감당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영화는 액션과 드라마를 번갈아 진행한다. 액션은 정신을 차리기 어려울 만큼 빠르고 드라마는 조금 느리다. 어쩌면 액션의 스타일이 실험적인 만큼 드라마는 상대적으로 진부하게 느껴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악녀’ 스틸컷 / 사진=NEW 제공
‘악녀’ 스틸컷 / 사진=NEW 제공
사실 초반의 1인칭 액션 시퀀스는 드라마의 축소를 가능하게 만드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액션이 새로운 스타일을 찾느라 노력하는 동안 드라마도 뻔한 이야기 구조를 해체하려고 시도한다. 그래서 조선족 킬러에서 서울의 연극배우로 모습을 바꾸는 숙희의 ‘1인극’ 드라마도 흥미롭다. 내부 서사에서 이토록 아찔한 세계의 숙희는 동시에 우리 얼굴도 비춘다. 발레, 요리, 메이크업의 전술을 펼치는 남한식의 액션 배우들 말이다. 그러고 보면 역시 우리 최대의 적은 진부한 로맨스인가?

이토록 촌스럽고 동시에 진보적인 액션 영화라니. 취향 저격이지 뭔가. 지금은 21세기이고 인터넷과 영화관에서 봉준호의 영화가 동시 개봉하는 시대지만 여전히 천장지구 같은 영화는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다. 이 영화가 극장에서 내려간 뒤에 우리는 이 영화를 두고두고 다시 꺼내 보게 될까?

숙희의 대사가 의미심장하다.
“보여줄게. 내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정지혜(영화평론가), 123456789ree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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