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조현주 기자]
‘어느날’ 스틸컷 / 사진=오퍼스픽쳐스 제공
‘어느날’ 스틸컷 / 사진=오퍼스픽쳐스 제공
옥상 처마에서 물방울이 일정한 간격으로 떨어진다. 벚꽃이 나무들 사이로 흐드러지게 흩날린다. 주황빛 노을이 하늘을 감싼다. 흐린 날 잿빛 바다가 광활하게 펼쳐진다. 영화 ‘어느날’(감독 이윤기)의 배경은 아름답다. 마치 한 편의 동화 같다. 예쁜 그림들이 즐비하다. 시각장애인 미소(천우희)는 영혼이 된 뒤 그토록 보고 싶었던 세상을 보게 됐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에 눈을 빼앗긴다. 그런데 미소는 차라리 안 보였을 때가 좋다고 말한다. 자신 때문에 힘들어하는 이들을 보는 건 꽤나 아픈 일이었다.

‘어느날’은 삶과 죽음에 대해 말한다. 철학적인 주제지만 무겁지는 않다. 시각장애인 미소는 교통사고 후 의식을 잃은 후 식물인간이 됐다가 병원에서 영혼으로 깨어났다. 그의 영혼을 볼 수 있는 인물은 보험회사 과장 강수(김남길)다. 강수는 아내가 죽은 후 무기력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회사에 복귀한 그는 미소의 사건 조사를 맡는다. 미소의 대리인에게 합의를 받아오는 것이 그의 임무다. 강수는 식물인간이 된 미소를 보는 게 착잡하다. 죽은 아내 선화(임화영)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강수와 미소는 각기 다른 상처를 지녔다. 영화는 사람과 영혼으로 만난 두 남녀가 교감하며 서서히 변화해 가는 과정을 통해 위로와 치유의 메시지를 전한다. 유일하게 한 사람에게만 영혼이 보인다는 판타지적 설정으로 어른동화 같은 느낌을 안긴다. 더 나아가 죽음과 죽음 이후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뭉클한 감성을 더한다. 죽음, 버림 등 우리는 누군가에게 받은 상처로 마음을 닫지만, 또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이나 한 마디 위로로 마음을 열기도 한다.

‘어느날’ 스틸컷 / 사진=오퍼스픽쳐스 제공
‘어느날’ 스틸컷 / 사진=오퍼스픽쳐스 제공
영화 ‘멋진 하루’,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남과 여’ 등 스크린으로 각기 다른 사연을 지닌 남녀의 멜로를 풀어냈던 이윤기 감독이지만 ‘어느날’에서는 다르다. 티격태격하며 서로를 알아가는 강수와 미소지만 멜로보다는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보듬어주는 동반자로서의 관계에 초점을 맞췄다.

이윤기 감독은 “남자와 여자가 나오면 꼭 로맨스를 해야 될 것 같은 선입견이 존재한다. 그러나 인생의 어느 짧은 순간, 현실적이지 않은 상황 속에서 남녀가 의식의 동반자, 여행을 하는 파트너로서도 충분히 이야기의 가치가 있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극은 미소가 교통사고를 당할 수밖에 없던 사연 등이 드러나는 후반부에 가서 극적으로 변하지만 극 자체는 미소와 강수를 중심으로 다소 잔잔하게 흘러간다. 그러나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 데는 등장인물의 심리를 섬세하게 다루는 이윤기 감독의 연출력이 한몫 한다. 극을 이끌어가는 김남길과 천우희의 매력 역시 돋보인다. 김남길은 힘을 뺀 자연스러운 연기력으로 몰입도를 높였다. 천우희는 다소 센 역할에서 벗어나 귀엽고 발랄한 미소 역을 통해 색다른 매력을 드러냈다.

5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14분.

‘어느날’ 스틸컷 / 사진=오퍼스픽쳐스 제공
‘어느날’ 스틸컷 / 사진=오퍼스픽쳐스 제공
조현주 기자 jhjdh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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