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N 리뷰 걷기왕 달려야만 하는 청춘들을 위한 헌사

[텐아시아=현지민 기자]

누구와 비교하지 않고 자신만의 속도를 찾아가는 한 여고생이 청춘들에게 묻는다. “천천히 달리면 안 되는 건가요?”

영화 ‘걷기왕’(감독 백승화)은 선천적 멀미증후군을 앓고 있는 여고생 만복(심은경)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이유 없이 가지고 태어난 멀미증후군 때문에 차는 물론 배, 소도 타지 못하는 만복은 걸어서 2시간 거리의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된다. 왕복 4시간의 등하굣길은 걷는 것이 익숙한 만복에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만복의 담임(김새벽)은 학생들에게 “꿈과 열정만 있으면 우주가 도와줄 것”이라는 허황된 희망을 심어주는 인물. 덕분에 만복은 담임에게 잡혀 육상부에 들어간다. 만복에게도 생소한 ‘경보’에 도전하게 된 것.

“공부는 안 될 것 같고, 운동은 쉬워보여서” 시작한 경보지만 만복은 난생 처음으로 열정을 느낀다. 우여곡절 끝에 전국체전에도 참가하게 된다. 자신을 무시하던 선배와는 부상을 딛고 나아가려는 공통점을 찾으며 진한 우정을 나누기도 한다.

극은 여느 청춘 영화와 다를 것 없어 보이지만, 증후군을 극복하는 만복의 모습을 담지 않는다는 데에 차이점이 있다. 만복은 우여곡절 끝에 성공하며 보는 이들에게 성공에 대한 압박을 심어주는 대신, 자신의 속도를 인정하고 때론 멈출 줄 아는 미덕을 깨닫는다.

극은 앞만 보고 달리는 요즘 청춘들을 따뜻하게 위로한다. 때문에 ‘경보’라는 스포츠가 갖는 의미도 상당하다. 달리면 실격하는 종목인 경보를 통해 걸어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하지만 극의 반전은 경보를 하는 만복에게 쏟아지는 어른들의 부담스러운 응원이다. 결국 경보 역시 타인과 대결에서 승리해야하는 경기였고, 만복은 자신의 속도를 찾아가기로 결심한다. 극 말미에 그려지는 경보 레이스가 왠지 모를 짜릿함까지 선사하는 이유일 터.

‘걷기왕’은 저예산으로 제작된 다양성 영화다. 예산이 적으니 촬영에 금전적 제약이 있다는 의미와 동시에 아기자기한 영상미가 시각을 자극하고, 뚜렷한 메시지가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걷기왕’은 저예산 영화의 장점을 총망라하고 있다. 만화와 실사를 오가는 연출은 극에 재미를 더했다. 무엇보다 수컷임을 주장하는 소 ‘소순이’가 만복이의 일상을 지켜보며 읖조리는데 배우 안재홍이 내레이션을 맡아 관객들을 폭소케 했다. 여기에 엔딩곡의 재기발랄한 가사와 심은경의 목소리는 관객들을 마지막까지 웃음 짓게 만든다.

약 1시간 30분 정도 되는 짧은 러닝 타임 안에는 몰입도를 높이는 기승전결과 곳곳에 숨어있는 웃음 포인트, 반전, 깊은 울림의 메시지까지 꽉 들어차있다. ‘걷기왕’이 쌀쌀한 가을 날씨에 따뜻한 웃음을 선사할 준비를 마쳤다.

20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현지민 기자 hhyun418@tenasia.co.kr

[TEN 리뷰] ‘걷기왕’, 달려야만 하는 청춘들을 위한 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