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조현주 기자]
‘럭키’ 스틸컷 / 사진=쇼박스 제공
‘럭키’ 스틸컷 / 사진=쇼박스 제공
16세기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한 소설 ‘왕자와 거지’ 속 부유한 왕자와 가난한 거지는 옷을 바꿔 입는 순간 운명이 바뀐다. 이들은 한 순간의 판단으로 다른 차원의 삶을 살게 된다. 21세기에 살고 있는 한 킬러는 무명배우와 목욕탕 키(key)가 바뀜으로서 삶이 뒤바뀐다. 부유한 저택과 풍족한 생활을 영유했던 킬러는 옥탑방에 살면서 자살을 기도했던 배우로 제2의 삶을 살아간다.

배우 유해진이 처음으로 원톱 주연을 맡은 영화 ‘럭키’(감독 이계벽, 제작 용필름)는 일본 영화 ‘열쇠 도둑의 방법’을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영문명은 ‘LUCKY’가 아니라 ‘Luck.Key’다. ‘키’는 킬러 형욱(유해진)과 무명배우 재성(이준)의 운명을 바꾸는 열쇠다. 목욕탕 ‘키’로 인생이 뒤바뀐 21세기판 ‘왕자와 거지’ 이야기다.

형욱은 사건 처리 후 우연히 들른 목욕탕에서 비누를 밟고 넘어지면서 그대로 기억을 잃는다. 부유해 보이는 그를 유심히 지켜봤던 재성은 자신과 그의 목욕탕 키를 바꿔 도망친다. 인기도, 삶의 의욕도 없이 죽기로 결심한 재성은 형욱의 왕국에 입성하고, 형욱은 삶의 끝까지 내몰린 재성의 옥탑방으로 몰린다.

유해진과 코미디는 떼려야 뗄 수 없다. 다수의 작품을 통해 관객들에게 큰 웃음을 안겼던 그가 전면으로 나서 코믹 연기를 펼친다니 기대를 안 할수가 없었다. 그러나 베일을 벗은 ‘럭키’는 기대했던 노골적인 코미디 장르는 아니었다. 영화는 킬러와 무명배우의 뒤바뀐 사연과 이로 인해 벌어지는 상황 등으로 관객들의 배꼽을 공략한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형욱은 자신이 32살, 무명 배우로 착각하고 그 삶에 적응하려고 노력한다. 45살의 형욱이 “저 84년생인데요”라고 머쓱하게 말하거나, 재성의 아버지를 자신의 아버지로 착각하고 “유명한 배우가 되어 돌아오겠다”고 눈물을 보이는 식이다. 기억을 잃고 분식점에서 알바를 하면서 본능적으로 화려한 칼솜씨를 부리는 장면은 영화의 백미다. 킬러와 무명배우라는 양극단에 서 있는 두 남자의 운명이 바뀌었고, 이로 인한 웃음을 놓치지 않는다.

‘럭키’ 스틸컷 / 사진=쇼박스 제공
‘럭키’ 스틸컷 / 사진=쇼박스 제공
웃음을 유도하는 장면은 대부분 유해진의 애드리브로 탄생했다. 단순히 웃기지만은 않다는 것도 반전이다. 유해진은 시종일관 진지하다. 그러면서 ‘럭키’는 유해진의 얼굴을 자주 클로즈업한다. 조연으로 그만큼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던 그의 잦은 클로즈업은 신선하게 느껴진다. 유해진은 냉혹한 킬러부터 기억을 잃은 순수한 남자를 미묘하게 다른 얼굴로 표현한다. 잘생겼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극 중 여러 인물의 사랑을 받는 캐릭터처럼 그 역시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액션, 멜로, 코믹, 드라마를 넘나드는 유해진의 존재감이 빛난다. 이계벽 감독은 잔인함과 순수함을 모두 그려낼 수 있는 배우를 찾다가 유해진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다만 유해진의 존재감이 너무 컸던걸까? 초반 자살을 시도하는 무명배우로 데뷔 이래 가장 망가진 모습을 선보인 이준은 후반으로 갈수록 그 존재감이 미미해 아쉬움을 남긴다. 특별출연한 이동휘와 전혜빈은 오버스러운 드라마 연기로 극의 재미를 더한다. tvN ‘삼시세끼 고창편’을 통해 스타로 거듭난 유해진의 반려견 겨울이의 모습을 찾아보는 것은 또 다른 재미다.

왕자와 거지가 우여곡절 끝에 자신의 자리를 되찾아간 것처럼 킬러와 무명배우 역시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야만 한다. 영화는 이 부분에서 맥이 풀린다. ‘기승전’까지 잘 끌어올리던 영화는 ‘결’부분에서 전형성을 탈피하지 못한다. 감동 요소까지 다 넣으려다보니 긴장감이 확 풀리는 아쉬움을 남긴다.

13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13분.

‘럭키’ 포스터 / 사진=쇼박스 제공
‘럭키’ 포스터 / 사진=쇼박스 제공
조현주 기자 jhjdh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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