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수경 기자]
애니메이션 ‘달빛궁궐’ 메인 포스터 / 사진제공=NEW
애니메이션 ‘달빛궁궐’ 메인 포스터 / 사진제공=NEW
‘달빛궁궐’은 평범한 열세 살 소녀 현주리가 600년 만에 깨어난 창덕궁에서 겪게 되는 환상적인 모험을 그린 애니메이션이다. 창덕궁 인정전, 낙선재, 장영실의 자격루 등 우리나라 전통 문화 유산을 기반으로 궁궐 액션과 한국 무용 등 풍성한 볼거리를 가득 담았지만, 개봉 전부터 몸살을 앓았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표절 논란에 휩싸였던 것. 영화는 사실 ‘센과 치히로의 행방 불명’ 말고도 ‘하울의 움직이는 성’까지 떠오를 정도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영화의 몇몇 주요 장면들과 겹치는 신이 많다.

애니메이션을 ‘명작’으로 만드는 것은 그 애니메이션만의 독특한 캐릭터와 만화적 상상력이다. 하지만 ‘달빛궁궐’은 ‘가장 한국적인 것들을 담아낸 애니메이션’이라는 거창한 포부가 의아해질 만큼 지브리 스튜디오 고유의 캐릭터들과 똑 닮은 장면들이 자주 등장한다. 매화원에서 나타나는 실체없는 유령들은 가오나시를(외양적 측면에서만), 탐욕스러운 매화부인(이하늬)은 온천장 주인 유바바를, 자격루 안 거대한 동물들은 온천장 속 돼지들을, 주인공 소녀가 위험에 처했을 때마다 용을 타고 날아오는 무사 원(권율)은 하울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달빛궁궐’은 아이들을 위한 애니메이션이다. 애니메이션을 대하는 어른들의 눈높이와 아이들의 원하는 것은 다를 수 밖에 없다. ‘달빛궁궐’의 주 관객이 될 어린이들의 입장에서는 애니메이션의 창의적 만듦새보다는 그 안에 얼마나 ‘환상적인’ 것들이 들어있느냐가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달빛궁궐’은 모험에 목마른 요즘 아이들에게 딱 좋은 영화다. 표절 논란에 입을 열었던 김현주 감독조차도 “감독이자 두 아이의 엄마로서 아이들이 즐길 수 있고,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라고 밝혔다. 주인공을 소녀로 설정해 여자 아이들이 좋아할 수 있도록 만든 이유도 거기에 있다.

애니메이션 ‘달빛궁궐’ 스틸컷 / 사진제공=NEW
애니메이션 ‘달빛궁궐’ 스틸컷 / 사진제공=NEW
일단 메시지가 확실하다. 주인공 현주리는 엄마와 아빠가 다 기대에 차 지켜보고 있는 연극에서 ‘나무’ 역할을 맡았다. 소녀는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보이기는 하는 걸까’라며 의기소침해 한다. 여러 모험을 겪으며 현주리는 용기를 가지게 되고, 기지를 발휘해 모든 것을 제 자리로 돌려 놓는다. 한바탕 소동으로 인해 창덕궁에 멈췄던 시간이 흐를 즈음엔 최고의 나무 연기를 선보이며 누구나 ‘나만의 자리’가 있는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다.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고민’이 뭔지 직접 초등학생들에게 설문 조사를 했다는 감독의 고민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어른들이 영화를 보며 위로를 받듯, 어린이들은 ‘달빛궁궐’에서 “나에게 기회를 주면 나도 잘할 수 있어”라는 현주리의 대사에 부모님이나 친구는 해 줄 수 없었던 응원을 받고 갈 것이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볼거리도 가득하다. 배우 김슬기가 목소리 열연을 펼친 다람쥐, 다람이와 산을 의인화한 백악산신과 목멱대왕, 작은 요정 같은 매화궁녀, 매화정령들이 그 예다. 매화궁녀들은 다람이와 미니 뮤지컬처럼 귀여운 율동을 펼치며 눈과 귀를 동시에 즐겁게 한다. 이 깜찍한 앙상블과 함께 나오는 노래는 김슬기가 맡았다. 주인공이 예쁜 옷으로 갈아입는 내용으로 여자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충분하다.

살아있는 책장의 미로도 환상적이다. 신비의 책과 두루마리가 날아다니는 이 살아 숨쉬는 공간은 책에 관심이 없던 어린이들에게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올 것이다. 왕실의 도서를 보관하던 곳인 창덕궁 규장각과 열람실이었던 주합루가 배경으로, 아이들이 우리 전통 문화에 좀 더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현주리는 이처럼 환상적인 곳, 또다른 차원의 세계로 모험을 떠나며 성장한다.

잠들어있던 창덕궁이 깨어난 것처럼, ‘달빛궁궐’은 아이들 속에 잠들어있던 자신감과 상상력이 깨어날 수 있는 영화다.

김수경 기자 ksk@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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