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수경 기자]
영화 ‘더 웨이브’, ‘언더 워터’, ‘부산행’, ‘터널’ 포스터 / 사진제공=히스토리 필름, UPI 코리아, NEW, 쇼박스
영화 ‘더 웨이브’, ‘언더 워터’, ‘부산행’, ‘터널’ 포스터 / 사진제공=히스토리 필름, UPI 코리아, NEW, 쇼박스
올해에도 어김없이 극장가에 재난 영화가 밀려왔다. 지난 7월 13일 ‘더 웨이브'(감독 로아 우다우그)와 ‘언더 워터'(감독 자움 콜렛 세라)가 동시에 개봉했고, 20일에는 ‘부산행'(감독 연상호)이 개봉했으며 오는 10일 ‘터널'(감독 김성훈)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 네 편의 재난 영화들은 배경이 되는 장소나 지형적 특성들이 뚜렷한 색채를 입힌다는 점에서 궤를 같이 한다.

영화 ‘더 웨이브’, ‘언더 워터’ 스틸컷 / 사진제공=히스토리 필름, UPI 코리아
영화 ‘더 웨이브’, ‘언더 워터’ 스틸컷 / 사진제공=히스토리 필름, UPI 코리아
‘더 웨이브’는 1905년 이후 노르웨이 피오르드 빙하지형에서 3차례 발생했던 산사태와 쓰나미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실화 영화다. 거대한 피오르드 계곡은 시속 600km의 속도로 밀어닥치는 쓰나미와 어우러져 웅장한 스펙터클을 선사한다. ‘언더 워터’는 해변과 불과 200m 떨어진 작은 암초 위에 고립된 한 여대생이 상어와 사투를 벌이는 이야기다. 무대가 되는 멕시코의 해변 ‘파라다이스’는 아는 사람만 갈 정도로 풍경이 아름다운 곳이지만 상어가 주는 공포감과 대비를 이루며 스릴을 배가한다.

‘부산행’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바이러스가 창궐하면서 이를 피해 부산행 열차 KTX에 탑승한 사람들과 좀비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두 시간 가까이 펼쳐지는 이 좀비 블록버스터에서는 KTX가 또 다른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큰 지분을 차지한다. ‘대한민국에서 운행 중인 유일한 초고속 열차’인 KTX는 그 자체로 한국적인 특색이 강한데다, 달리면서도 밀폐된 공간이라는 점이 러닝 타임 내내 긴장감을 부여하게 만드는 장치다. 터널이 무너지면서 갇히게 된 남자의 고군분투기를 그린 ‘터널’ 또한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산이 많은 한국의 지형 특성 상 산을 뚫어 만든 터널은 매일 마주치는 일상의 풍경이므로.

이처럼 올해 개봉한 재난 영화에는 배경이 되는 국가의 로컬적 요소가 그 영화만의 색채를 더욱 뚜렷하게 드러내는 데 일조한 장치가 됐다. 하지만 그 이면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이내 ‘한국형 재난 영화’임을 표방한 ‘부산행’과 ‘터널’에서 유독 도드라지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영화 ‘부산행’, ‘터널’ 스틸컷 / 사진제공=NEW, 쇼박스
영화 ‘부산행’, ‘터널’ 스틸컷 / 사진제공=NEW, 쇼박스
‘부산행’에서는 이미 좀비 바이러스가 대한민국을 뒤덮고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이유를 폭력 시위에서 찾는다. 원인을 파악해 국민들에게 문제를 신속하게 알리는 대신 자극적인 ‘폭력 시위’ 현장에만 카메라 렌즈를 들이댄 채 “정부를 믿고 따라 달라”라는 문구만 반복한다. 부산행 KTX에 올라탄 사람들을 살린 것은 정부가 아닌 평범한 소시민들의 죽음과 맞바꾼 희생이라는 결말은 한국 사회가 ‘내 가족은 내가 지켜야 하는 사회’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자연스럽게 반증했다.

‘터널’ 또한 ‘부산행’과 재난의 종류는 전혀 다르지만 맥락은 같다. ‘터널’은 집으로 가는 길에 부실하게 지어진 터널이 무너지면서 구조될 때까지 버티는 한 남자 정수(하정우)와 그를 둘러싼 터널 밖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터널’에서는 무능한 정부를 조망하는 데서 더 나아가 현재 우리 사회에 팽배한 ‘안전 불감증'(위험에 대한 인식이 둔감하여 안전하지 못한 행위를 거리낌 없이 하는 태도 또는 풍조)과 그로 인한 후진국형 재난(삼풍백화점과 세월호 참사 등)을 은유하는 장면까지 다채롭게 등장한다.

재난안전연구원 자료에 의하면, 지난 50여 년간 우리나라에서 10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대형재난 및 사고는 총 276건으로, 자연재해 159건, 육상교통 42건, 대형화재 33건, 붕괴·폭발 19건, 해상사고 15건, 항공기 사건 8건이라 한다. 이는 ’10명 이상의 사망자가 나온 대형사고’가 해마다 5.5건씩 일어났다는 것이다. (참조: ‘재난반복사회’, 김석철 지음) 이러한 통계는 ‘부산행’과 ‘터널’이 꼬집고 풍자하는 안전 불감증과 컨트롤 타워의 부재 문제가 한국 관객들에게 자연스럽게 와 닿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재난이 계절보다 자주 오는 사회와 관조하는 정부는 우리의 슬픈 현실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현실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이 두 편의 ‘한국형 재난 영화’는 시사하는 점이 자못 크다. 만약 ‘부산행’과 ‘터널’에서 정부가 재난 시 구조 매뉴얼을 모두 갖추고 있고 능수능란하게 대처하는 모습으로 그려졌다면 이 두 작품은 재난 영화가 아닌 코미디 영화가 됐을 거다. 그런 ‘현실’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몇 년 후에 만나게 될 한국 재난 영화에는 무능한 정부가 아닌, 유능한 정부가 현실로써 그려지기를 기대해 본다.

김수경 기자 ksk@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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