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수경 기자]
영화 ‘부산행’ 포스터, ‘컨트랙티드’ 포스터, 소설 ‘Z’ 표지 / 사진제공=NEW, 채널CGV, 답
영화 ‘부산행’ 포스터, ‘컨트랙티드’ 포스터, 소설 ‘Z’ 표지 / 사진제공=NEW, 채널CGV, 답
최근 ‘좀비’를 다룬 영화와 소설이 잇따라 세상에 나왔다. 스크린 속에서도, 브라운관에서도, 소설 속에서도 살아있는 시체들이 시시각각 인간의 몸을 노린다. 지난 20일에는 영화 ‘부산행'(감독 연상호)이 개봉했고, 지난 6일 채널CGV는 영화 ‘컨트랙티드'(감독 에릭 잉글랜드)를 편성했다. 지난달 10일에는 소설 ‘Z: 살아있는 시체들의 나라(이하 ‘Z’)'(작가 한차현, 답 펴냄)이 발간됐다.

이 세 가지 ‘좀비물’에는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 ‘최초’라는 수식어다. ‘부산행’은 한국 최초의 좀비 블록버스터고, ‘컨트랙티드’는 지난 6일 채널CGV를 통해 처음으로 관객들을 만났다. ‘Z’는 한국 최초의 좀비 소설이다. ‘최초’라는 틀을 깨고 비슷한 시기에 나올 만큼 좀비는 한국 대중 문화에서 환영받는 모양새다. 그런데 왜 그 수많은 귀신과 괴물들 사이에서도 ‘살아있는 시체’가 된 좀비일까. 영화, TV, 소설이라는 다채로운 경로를 통해 인간을 습격하는 좀비물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부산행’을 연출한 연상호 감독은 좀비를 통해 한국의 또 다른 이면을 들여다봤다. 그는 “좀비는 그 자체로 사회적 함의가 담겨져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불신과 혐오가 만연되어 있는 오늘날의 사회에서, 한때는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언제 나를 잡아뜯어먹을지 모르는 혐오적 존재로 돌변한 좀비가 더욱 공감을 사는 이유라는 것이다. 좀비가 뱀파이어와 늑대인간과는 달리 초인적인 능력을 가지지 않았다는 것도 연 감독의 마음을 끌었다. “평범하지만 초능력을 가지고 있는 다른 괴물 못지않게 공포감을 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좀비가 공감과 쾌감, 공포를 동시에 줄 수 있는 입체적 캐릭터라는 점은 늑대인간이나 뱀파이어를 제친 독특한 매력이다. 채널CGV 편성 담당 관계자는 “각 여름 시즌마다 인기있는 영화 트렌드를 데이터들을 통해 집계하는데 올해, 그것도 가장 최근에는 좀비로 추정됐다”고 밝혔다. 때문에 채널CGV의 좀비 특집의 첫 선을 ‘컨트랙티드’가 끊게 됐다. ‘컨트랙티드’는 주인공 사만다가 낯선 남자와 함께 밤을 보낸 후 좀비로 변해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그 이후에는 최근 3년간 채널CGV에서 방영된 좀비 영화 중 가장 시청률이 좋았던 영화 세 편(‘나는 전설이다’, ‘레지던트 이블4′, ’28일 후’)을 다시 뽑아 지난 22일에 연속 방송했다.

‘Z’를 펴낸 한차현 작가는 “좀비 자체도 매력적이지만, 좀비를 통해 대한민국 위에 군림하는 0.01%의 ‘좀비 같은 인간’에 대한 공포를 그려내고 싶었다. 다른 이의 피와 눈물을 먹어야만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그런 존재들을 좀비를 통해 그려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그런 존재들’은 “대한민국을 여전히 지배하고 있는” 친일반민족세력과 그 후손들이며, 소설 속의 ‘좀비’는 “그들에 의해 희생당해오고 있는 민초들”이다. 결국 산 사람의 살을 맹렬하게 원하고 뜯어먹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좀비에 빗대어 현재 대한민국의 어떤 음울한 단면을 꼬집은 셈이다.

좀비는 이처럼 다양한 공포를 반영한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현실적이다. 단순히 사람이 좀비로 되어가는 과정을 그려 시각적인 혐오를 빚어내는 것부터 시작해, 타인의 살을 먹고 살아가는 좀비의 특성은 자본주의 사회 내 피라미드 구조 꼭대기에 있는 인간 군상들과 묘하게 닮아있다. 빠르게 덮쳐오는 다른 좀비들에 의해 언제 어떻게 돌변해 ‘나’를 뜯어 먹을지 모른다는 공포 또한 갈수록 흉흉해지기만 하는 오늘날의 사회가 주는 공포와 비슷하다. 이 세 편의 콘텐츠는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가 ‘살아있는 시체들의 나라’와 그다지 멀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는 반증은 아닐까.

김수경 기자 ksk@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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