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수경 기자]
영화 ‘부산행’ 메인 포스터 / 사진제공=NEW
영화 ‘부산행’ 메인 포스터 / 사진제공=NEW
‘부산행'(감독 연상호)은 정체불명의 바이러스에 감염된 좀비들과 부산행 열차에 몸을 실은 사람들 간의 사투를 그린 영화다. 좀비와 재난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소재로 하는 장르물인 만큼 영화에는 감염자들이 폭포처럼 쏟아지고, 그들이 선사하는 색다른 스릴이 있다. 하지만 이것이 ‘부산행’의 전부를 말해주지는 않는다.

먼저 재난 영화에 으레 등장하기 마련인 ‘특수 인물’이 없다. 연상호 감독은 대통령이나 특수 부대 요원 등 ‘영화적 인물’ 대신 직장인, 고등학생 등 일상적 인물을 캐릭터로 설정했다. 우리 주변에 충분히 있을법한 인물들의 삶에 갑자기 덮쳐오는 재앙은 이러한 현실성으로 인해 두 배로 더 공포스럽게 다가온다.

동시에 어쩌면 나와 닮은 인물들이 극한의 상황에 던져졌을 때 변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다. ‘부산행’은 재난 상황에 처한 인간의 내면 가장 가까이에 카메라 렌즈를 들이댄 영화다. 변모의 과정이 선(善)으로 갈 지, 악(惡)으로 갈 지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이기적이기만 했던 이가 누군가를 구원하기도 하고, 원래 이기적이었던 이는 되려 이기의 절정으로 치닫기도 한다. 이같은 ‘보통 사람들’이 겪는 내적 드라마는 초고속으로 달리는 부산행 KTX와 함께 발전하고 내달리며 영화의 몰입도를 끌어올린다.

영화 ‘부산행’ 스틸컷 / 사진제공=NEW
영화 ‘부산행’ 스틸컷 / 사진제공=NEW
부산행 열차에 몸을 실은 사람들이 좀비들과 벌이는 액션 신도 지루할 틈이 없다. 달리는 열차 안에서 벌어지는 사투라 더욱 생동감 있고, 터널을 통과하며 번갈아 마주치게 되는 빛과 어둠은 또 다른 스릴을 선사한다. 무엇보다 마치 만화처럼 각 캐릭터의 능력을 극대화한 액션 설정이 흥미롭다. 평범한 소시민이었던 석우(공유), 상화(마동석), 영국(최우식)은 각자의 무기를 가지고 좀비들을 상대한다. 좀비와의 싸움은 열차 밖에서도 벌어진다. 기차는 쓰러지고, 뒤에서는 좀비들이 떼처럼 쫓아오는 데다 타야할 열차는 이미 달려가고 있다.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다.

다채롭게 다룬 좀비 신에서 알 수 있듯, ‘부산행’은 연 감독만의 만화적 상상력이 유연하게 빛나는 작품이다. 부산행의 속도감을 생생하게 유지하면서도 인물들이 한 명씩 스러져가는 장면을 서정적으로 묘사하며 명실상부 ‘비주얼 마스터’의 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특히 석우의 마지막 장면은 그간의 좀비나 재난 영화에서는 보여주지 않았던 방식으로 처리돼 영화가 끝난 후에도 깊은 여운을 남긴다.

연 감독은 앞서 “기존의 할리우드 장르 영화, 한국 영화들에서 보지 못했던 전혀 다른 느낌의 한국적인 감수성과 톤, 그리고 쾌감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대성공이다. 비디오게임을 응용한 모션 캡처들을 활용해 할리우드 영화 속 좀비와는 전혀 다른, ‘동양적이면서 한국적인’ 좀비를 만들어내는 데도 성공했지만, 마동석의 찰진 연기도 그에 팔할은 담당했다. 그가 애드리브로 적당하게 양념을 친 ‘한국형 순정 마초’ 연기는 한국적인 톤앤매너를 만드는 데 일조할 뿐 아니라 자칫 신파적으로 갈 수 있는 지점에서 윤활유가 되어준다.

영화는 열차가 부산에 도착하며 끝이 나지만, 보는 이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죽음에 가까워질 때 인간은 어떤 모습을 보일 수 있는가. 시키는 대로만 살아온 사람들은 어떤 책임을 져야 하고,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남겨줄 수 있는가. 외롭게 달리는 부산행의 뒷모습은 고독인가 희망인가 등. 하지만 영화가 품은 논의가 인간의 선악이 됐든 사회 고발이 됐든, 이것이 여름에 어울리는 아주 짜릿한 영화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부산행’은 3면으로 펼쳐지는 스크린X로도 만나볼 수 있다. 좀비 영화 마니아나 ‘부산행’을 좀 더 리얼하게 체험하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한다. 20일(오늘) 개봉.

김수경 기자 ksk@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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