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윤준필 기자]
영화 ‘트릭’ 메인 포스터 / 사진제공=스톰픽쳐스코리아
영화 ‘트릭’ 메인 포스터 / 사진제공=스톰픽쳐스코리아
TV는 참 재미있는 존재다. 현실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펼쳐지는 막장 드라마가 방송되는가 하면, 몇 시간 뒤에는 가슴을 저미는 슬픈 이웃들의 이야기를 담은 휴먼 다큐멘터리가 전파를 탄다. 그런데 감동을 선사했던 다큐멘터리가 ‘막장 드라마’처럼 만들어진 방송이라면 어떨까. 이러한 의구심에서부터 시작한 영화 ‘트릭’은 시청자들이 미처 알지 못했던 방송의 어두운 면을 적나라하게 지적한다.

영화 ‘트릭’은 12년 전, 오보 기사로 좌천된 전직 기자이자 현직 휴먼 다큐 PD 석진(이정진)이 폐암말기 환자 부부의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 ‘병상일기’로 재기를 노리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는 시청률 35%를 달성하고, 돈과 명예를 얻고자 하는 속물. “방송은 마약과도 같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는 시청률을 위해서라면 자극적인 방송도 서슴지 않는다. 그런 석진은 시한부 환자 도준(김태훈)이 방송 출연을 거부하자, 아내 영애(강예원)에 은밀한 제안을 한다. 방송이 거듭될수록 영애의 화장이 짙어지고 있음을 눈치 챈 석진은 이미 자신이 주인공이라는 착각에 빠져있는 영애의 욕망을 건드린다.

영화는 세 사람 간의 욕망이 유발하는 팽팽한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해가며, 휴먼다큐 ‘병상일기’를 둘러싼 석진과 영애·도준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주목한다. 석진은 좀 더 드라마틱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위해 마치 드라마 감독처럼 영애와 도준에게 지시를 내린다. 방송의 맛을 알게 된 영애는 석진의 지시를 따르지만, 그런 석진의 속내가 보이는 도준은 상황이 몹시 불만이다. 도준의 몸은 날이 갈수록 나빠지고 그럴수록 세 사람의 관계는 더욱 아슬아슬해진다.

영화 ‘트릭’ 스틸컷 / 사진제공=스톰픽쳐스코리아
영화 ‘트릭’ 스틸컷 / 사진제공=스톰픽쳐스코리아
‘트릭’이 다루고 있는 소재는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굉장히 현실적이다. 극 초반부 보도국 기자였던 석진이 좌천되는 결정적 이유로 등장한 ‘쓰레기 만두 파동’은 지난 2004년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이며, 영애와 도준 부부가 촬영하는 ‘병상일기’ 또한 TV에서 종종 볼 수 있는 휴먼 다큐멘터리를 떠올리게 한다. 관객들이 영화에 쉽게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하지만 현실감을 높이는 소재와 달리, 극의 중심이 되는 캐릭터 석진은 되레 리얼리티를 떨어트린다. 석진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자기가 원하는 컷을 만들기 위해 각종 불법행위를 저지른다. 그는 자신의 행동을 시청률, 나아가 돈과 명예를 핑계로 정당화한다. 시청률을 위해선 어떤 죄책감도 느끼지 않고, 출연자들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가는 석진의 모습은 관객들이 마치 소시오패스처럼 느낄 수 있다. 이처럼 극단적인 석진의 캐릭터는 보는 이들의 분노를 자아내지만, 동시에 ‘이것은 허구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관객들은 이어 악한 석진의 파멸을 자연스럽게 예상한다.

‘트릭’은 ‘방송’이란 마약에 중독된 사람이 누구인지 관객들에게 묻는다. ‘병상일기’를 만드는 석진일까, ‘병상일기’에 출연하며 스타가 된 영애와 도준일까. ‘병상일기’를 철석같이 진실이라고 믿었던 시청자들도 중독돼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방송의 어두운 단면을 들춰내며 변해가는 인물들의 심리를 흥미롭게 묘사한 영화 ‘트릭’은 오는 14일 개봉 예정이다. 15세 이상 관람가.

윤준필 기자 yoon@ten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