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석
김윤석
김윤석

[텐아시아=정시우 기자]그러니까 시작은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였다. 2008년 ‘추격자’의 (예상치 못한) 흥행은 충무로에서 미운 오리새끼 취급받던 스릴러 장르를 한 순간에 흥행 노다지로 둔갑시켰다. 제작비를 많이 들이지 않아도 잘만 하면 월척을 낚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형성됐다. 스릴러에 투자가 쏠리기 시작했다. 제작사들이 서랍 깊숙한 곳에 잠자고 있는 스릴러 시나리오를 뒤지기 시작했다는 소문이 들렸다. 소문의 진위를 확인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추격자’ 이후 스릴러 영화들이 줄줄이 사탕처럼 충무로 문턱을 넘었다. 다들 포스트 ‘추격자’ 자리를 노렸다. 적자(嫡子)이길 원했다. 문제는 대부분이 사생아로 전락했다는 점이다.

‘추격자’ 이후 8년. 그동안 우리는 너무나 많은 스릴러들을, 악마들을, 형사들을 만났다. 한 장르가 흥행하면 우르르 몰려가는 행태는 스릴러 붐을 일으켰고, 경쟁 속에서 보다 자극적인 것들이 제작됐고, 그것이 또 스릴러 영화의 반전 강박증을 키웠다. ‘컨트를 V+컨트롤 C’를 했다고 봐도 무방한 악마와 형사 캐릭터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며 스릴러물의 침몰을 자초했다.

그래서였다. 김윤석의 발언에 귀가 솔깃한 것은. 8일 오전 CGV 왕십리에서 열린 ‘극비수사’ 언론시사회에서 김윤석은 “충무로에서 10년째 유행하고 있는 게 수사물(스릴러)이다. 수사물에 대한 걱정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알다시피 김윤석은 스릴러 장르에 도화선을 일으킨 ‘추격자’의 주역이다. ‘추격자’에서 김윤석은 출장 안마소를 운영하는 전직 형사 엄중호를 연기했다. 엄중호는 김윤석이란 존재를 세상에 알린 일등공신. 누구보다 스럴러 장르의 혜택을 입은 그의 입에서 스릴러 장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니, 귀가 쏠리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극비수사’에서 그가 연기한 인물 공길형 역시 형사 아닌가.

‘극비수사’ 공길형
‘극비수사’ 공길형
‘극비수사’ 공길형

‘추격자’ 엄중호
‘추격자’ 엄중호
‘추격자’ 엄중호

이날 기자간담회에서는 김윤석의 생각들, 그러니까 다시 한 번 형사의 옷을 입기까지 그가 느낀 고민들이 여러 번 감지됐다. “한국 남자 배우들 중에 형사를 안 해본 배우는 거의 없을 거다. 최소 2번씩은 형사 역을 해봤을 것이다. 나도 따지고 보면 이번이 두 번째다. 그래서 비슷한 캐릭터가 겹치면 어쩌나 걱정했다”고 밝힌 그는 “만약 ‘극비수사’가 굉장히 하드보일드한 액션 같은 것들이 가미됐었다면 고사했었을 것이다”라고 속마음을 털어놨다.

천편일률적으로 쏟아져 나오는 스릴러 영화에 대한 우려의 시선이 읽혔다. 그렇다면 그가 공길형 형사를 받아들인 결정적인 이유는 뭘까. 김윤석은 “요즘 형사가 나오는 영화들은 반전을 숨긴다든지 아드레날린을 분비시키는 극적인 장치들이 많은데, 이 영화는 소금만 찍어 먹어도 되는 닭백숙 같은 영화였다. 캐릭터와 스토리가 탄탄하다는 느낌이 들어서 선택을 했다”고 전했다.

‘1978년 부산에서 벌어진 실제 유괴 사건을 바탕으로 하는 곽경택 감독의 신작 ‘극비수사’에서 김윤석이 연기한 공길형 형사는, 아이를 구하기 위해 소신 있는 수사를 펼치는 인물이다. 공길형 형사의 소신이, 김윤석이 연기에 대해 품고 있는 소신을 만나 기존의 형사들과는 또 다른 결을 지닌 인물을 만들어냈다. ‘추격자’와 ‘극비수사’ 사이, 김윤석의 얼굴을 자꾸 뒤돌아보게 되는 이유다.

정시우 siwoorain@
사진. 팽현준 pangpang@, 영화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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