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우 감독, 임권택 감독, 김지미, 이병훈 영상자료원장, 한규호 대표, 이혜영, 김수용 감독, 최하원 감독.(왼쪽부터)
정진우 감독, 임권택 감독, 김지미, 이병훈 영상자료원장, 한규호 대표, 이혜영, 김수용 감독, 최하원 감독.(왼쪽부터)
정진우 감독, 임권택 감독, 김지미, 이병훈 영상자료원장, 한규호 대표, 이혜영, 김수용 감독, 최하원 감독.(왼쪽부터)

[텐아시아=황성운 기자] “그때 만들어진 영화는 될 수 있으면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생각하고 살았는데….”(웃음)

102번째 영화 ‘화장’ 개봉을 앞둔 임권택 감독이 자신의 14번째 연출작 ‘전장과 여교사’(1965)를 다시 꺼내본 마음이다.

7일 오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는 50년의 시간이 흐른 옛 작품을 들춰보는 자리가 마련됐다. 이는 그간 유실돼 실체를 확인할 수 없었던 한국 극영화 94편을 포함, 총 450편의 필름을 기증 받은 한국영상자료원이 이중에서 올해 공개할 다섯 작품을 미리 선보이는 자리였다.

정진우 감독의 ‘외아들’(1963)을 비롯해 임권택 감독의 ‘전장과 여교사’, 이만희 감독의 ‘잊을 수 없는 연인’(1966), 김수용 감독의 ‘만선’(1967), 최하원 감독의 ‘나무들 비탈에 서다’(1968)이 5분가량의 짧은 영상으로 편집돼 이날 공개됐다.

임권택 감독의 ‘전장과 여교사’ 스틸.
임권택 감독의 ‘전장과 여교사’ 스틸.
임권택 감독의 ‘전장과 여교사’ 스틸.

임권택 감독은 “62년도에 데뷔해 얼마 후에 찍은 영화인 것 같다”면서 “그때 만들어진 영화는 될 수 있으면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고, 또 발굴이 안 돼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살았는데”라고 웃음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임 감독은 “부끄러운 건 부끄러운 것이고, 그때 배경이나 우리 영화 촬영 현장 등 려 사정들이 잘 드러나는 상당히 소중한 자료가 드러났다”며 “그때를 들여다 볼 수 있는 문화적인 것들이 많은데, 정말 발굴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그 가치를 평가했다.

이날 자리에 함께 한 정진우 감독, 김수용 감독, 최하원 감독, 배우 김지미, 이혜영 등도 남다른 소회를 전했다. 이들 모두 한 때를 풍미했던, 거장으로 불리던 감독들이다.

50년 전 자신의 데뷔작을 만난 정진우 감독은 “24살에 만든 영화인데 세월이 흘러 54년이 흐르고 나니까 이 영화를 찍을 때 기억도 사라진 것 같다”면서 “데뷔작을 기억 안 하는 감독은 없을 것”이라고 소회를 말했다.

이어 정 감독은 “당시 액션 영화 조감독을 많이 했고, 겉으로 봐서도 주먹 좀 쓰게 생긴 모습이었다. 그래서 액션 영화 감독하라는 권유가 많았다”며 “인간애 회복 등을 다뤄보겠다고 생각했고, 그러면서 어머니를 생각했다. 어머니 이야기를 영화로 만드는 데 주력했다”고 데뷔 당시를 추억했다.

‘외아들’에는 최무룡 김지미 김석훈 등 당대 최고 배우가 출연했다. 이날 자리에 함께 한 김지미는 “가슴이 울렁울렁, 눈물이 나려고 한다”면서 “23살 때 영화에 출연했고, 지금 세월이 흘러 75살이다. 옛날을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영화가 주셨고, 한국영화 역사를 다시 조명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외아들’ ‘잊을 수 없는 연인’, ‘나무들 비탈에 서다’ ‘만선’ 스틸.(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외아들’ ‘잊을 수 없는 연인’, ‘나무들 비탈에 서다’ ‘만선’ 스틸.(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외아들’ ‘잊을 수 없는 연인’, ‘나무들 비탈에 서다’ ‘만선’ 스틸.(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비평과 흥행, 모두를 잡은 ‘만선’은 김수용 감독 본인이 꼽는 대표작이다.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자신의 대표작을 본 소감은 남다를 수밖에 없을 터. 김수용 감독은 “영화는 인생과 더불어 이어지는 예술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남겼다.

1960년대 후반 한국영화사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데뷔작으로 꼽히는 ‘나무들 비탈에 서다’ 최하원 감독은 “첫 작품이니까 아낄 수밖에 없다. 이게 없어져서 지금껏 아쉬웠고, 정말 보고 싶었다”며 “정말 반갑고, 감동이다.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뭔가를 만들려고 했고, 공부하던 시절이 새삼 느껴진다”고 추억했다.

또 올해는 이만희 감독 타계 40주년이다. 이만희 감독의 딸이자 영화배우인 이혜영은 “어제(6일) 외길을 걸어오신 한 노장의 102번째 영화를 봤습니다. 그 영화를 보면서 아버지 생각을 많이 했다”며 “그 영화를 보면서 감독님의 지나온 역사, 노장의 지혜를 느끼면서 쓰러진 그 순간까지 노인이 영화를 만들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아버지가 살아계신다면 84살 되시는데, 84살이 영화를 만들어서 보여준다면 우린 얼마나 큰 걸 배울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해봤다”고 기억했다.

영상자료원은 지난 3월 11일 1970년대 종로에서 순회 영사업을 하던 연합영화공사 한규호 대표로부터 한국 극영화 94편을 포함, 총 450편의 필름을 기증받았다. 이번에 수집된 영화는 1949년 작품부터 1981년 작품까지 다양한 시대를 넘나드는 작품들로, 이번 수집을 계기로 한국영화사의 사료적 공백을 메꿀 것으로 기대된다.

영상자료원은 23일부터 이만희 감독 타계 40주년을 기념해 열리는 ‘이만희 감독 전작전’에서 ‘잊을 수 없는 연인’ 일반 공개를 시작으로 올해 내 5편을 일반 관객에게 공개할 예정이다.

황성운 기자 jabongdo@
사진제공. 한국영상자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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