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또 하나의 약속’
영화 ‘또 하나의 약속’


영화 ‘또 하나의 약속’

7년 만의 사과다. 삼성전자가 백혈병 피해에 대해 보상하겠다고 발표했다.

삼성전자 권오현 대표이사(부회장)는 지난 14일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에서 근무하다 백혈병 등 산업재해로 의심되는 질환으로 투병 중이거나 사망한 당사자와 가족에게 합당한 보상을 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 직원의 백혈병 사망에 대한 논란은 2007년 이후 7년 동안 계속돼 왔다. 지난 2월에는 이를 소재로 한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이 상영되기도 했다. 하지만 권오현 부회장이 직접 사과와 보상약속을 함으로써 오랜 시간 논란을 빚어온 백혈병 문제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됐다.

#삼성전자, 백혈병 사과하기까지…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백혈병 논란은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7년 3월 기흥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던 황유미 씨(당시 23세)가 급성백혈병으로 사망한 것이 논란의 발단이었다. 황 씨가 사망하자 그의 부친 황상기 씨는 같은 해 6월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 유족급여를 신청했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측은 산업재해로 인정하지 않았고 급여지급도 거절됐다.

이를 계기로 그해 11월 ‘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진상 규명과 노동기본권 확보를 위한 대책위원회’인 반올림이 발족됐고, 그동안 황씨 등의 피해에 대한 삼성의 사과와 대책을 끊임없이 요구해 왔다. 삼성전자의 백혈병 문제는 외국 언론과 학자들의 관심을 받으며 국제적인 이슈가 되기도 했다.

영국 유력 일간지 가디언 온라인판 메인화면에 등장했던 ‘또 하나의 약속’
영국 유력 일간지 가디언 온라인판 메인화면에 등장했던 ‘또 하나의 약속’
영국 유력 일간지 가디언 온라인판 메인화면에 등장했던 ‘또 하나의 약속’

이 사안에 사회적 관심을 끌게 된 것은, 지난 2월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이 개봉하면서부터다. 황유미 씨의 실화를 스크린에 옮긴 영화는 대기업에 얽힌 민감한 소재 탓에 어느 투자제작사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다. 하지만 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영화는 완성됐고, 관객 입소문을 타며 화제의 중심에 올랐다.

특히 영화 개봉을 앞두고 ‘삼성가의 큰 지분을 가지고 있는 멀티플렉스가 갑작스럽게 영화 상영을 중지시켰다’는 외압설이 터지면서 또 하나의 논란을 낳기도 했는데, 이는 오히려 영화에 대한 관심을 끌어올리는 촉매제가 되기도 했다. 마침, 영국 유력 일간지 가디언이 ‘또 하나의 약속’을 상세 보도하며 영화에 대한 관심과 삼성을 향한 비판에 불을 지폈다.

#삼성전자는 왜 7년 만에?

실제로 삼성전자가 백혈병 문제에 전향적으로 돌아선 것은 법원 판결을 비롯한 외부의 비판 여론이 부담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보는 의견이 많다. 삼성은 글로벌 초일류기업이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그동안 문제를 덮는 데만 급급했다. 백혈병이 직업병이 아니라고 줄곧 주장해 온 삼성에 대해, 국내를 대표하는 재벌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그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또 하나의 약속’이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삼성반도체 직업병 피해자 구제결의안’을 추진하자, 삼성전자가 더 이상 백혈병 문제를 끌고 갈 수는 없는 상황에 이른 것으로 해석된다.

질문을 던지는 영화들
질문을 던지는 영화들
질문을 던지는 영화들

이번 사건을 보면 영화가 지니는 힘을 다시금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영화 한편이 세상을 완벽하게 바꾸지는 못한다. 하지만 한 사람 하나 사람을 변화시키기는 한다. 실제로 영화가 현실을 선도하는 사례는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 영화 ‘도가니’는 2011년 ‘도가니법’의 통과를 이끌어냈고, 1997년 4월 실제 일어났던 이태원 햄버거가게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한 ‘이태원 살인사건’은 사건 재수사를 이끌어내며 범인 검거에 일조했다. ‘부러진 화살’이 법관의 독립성에 대해 강한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 역시 영화의 힘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또 하나의 약속’의 경우, ‘거대 자본인 골리앗을 상대로 불굴의 의지로 맞서는 다윗을 보여 줬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 남겨진 과제는?

JTBC ‘뉴스 9’ 고(故) 황유미씨 아버지 황상기 인터뷰
JTBC ‘뉴스 9’ 고(故) 황유미씨 아버지 황상기 인터뷰
JTBC ‘뉴스 9’ 고(故) 황유미씨 아버지 황상기 인터뷰

삼성전자가 피해 보상을 발표했지만 구체적인 방법을 정하는 등의 과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같은 날, JTBC ‘뉴스 9’은 발 빠르게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인 황상기 씨와의 인터뷰를 시도했다. “삼성 쪽의 입장발표 예고를 어떻게 보는가?”라는 손석희 앵커의 질문에 황상기 씨는 “아직까지는 평가하기 이르다”며 “반올림하고 어떤 대화도 없었고, 반올림에 어떤 얘기를 제안한 적도 없었다. 그러니까 삼성의 오늘 발표만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기는 아직 이르다”고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뉴스 9’은 지난 2월에도 지상파 3사가 외면한 영화 ‘또 하나의 약속’ 논란을 보도해 눈길을 끈 바 있다.

삼성전자의 이번 백혈병 피해 보상 발표가 기업 이미지 쇄신을 위한 보여주기식 이벤트가 될지, 기업윤리 혁신을 위한 시발점이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글. 정시우 기자 siwooraim@tenasia.co.kr
사진제공. 영화 스틸, ‘뉴스 9′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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