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
변호인
1980년대 초 부산에서 돈 잘 버는 세무 변호사로 승승장구하던 변호사 송우석(송강호)은 가족같이 정을 나누던 단골 국밥집 아들 진우(임시완)가 용공조작사건에 휘말리면서 새로운 전환을 맞는다. 부동산 등기부터 세금 자문 등 주로 돈 되는 의뢰만 받아오던 속물 변호사인 송우석은 아무도 맡지 않으려는 진우의 변호를 맡으면서 돈이 아닌 다른 가치를 추구하게 된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앞장서 ‘상식’이 통하지 않는 당시 사회에 맞서게 된다. 이 작품은 1981년 제5공화국 정권 초기 부산 지역에서 벌어진 ‘부림사건’을 모티브로 사건과 인물을 영화적으로 재구성했다. 15세 관람가, 18일 개봉.

10. 80년대를 바르게 살고자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 ∥ 관람지수 8

영화 ‘변호인’ 스틸 이미지.
영화 ‘변호인’ 스틸 이미지.
영화 ‘변호인’ 스틸 이미지.

‘변호인’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야기다. 맞는 말이다. 영화사, 홍보사 그리고 출연 배우들도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피하고 있지만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다. 1981년 부산지역 용공조작 사건인 부림사건과 당시 인권 변호사로 활약했던 노 전 대통령의 이야기란 것을. 실제 고인의 행적이나 일화를 스크린에 옮기기도 했다. 또 송우석 변호사를 연기한 송강호의 모습에서 얼핏 고인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렇다고 ‘변호인’이 노 전 대통령을 영웅시하거나 찬양하는, 그런 선동적인 영화는 결코 아니다.

중요한 건 ‘변호인’은 노 전 대통령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아니기도 하다. 노 전 대통령의 젊은 시절 이야기라고 한정짓는 건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의 색안경이다. ‘변호인’은 특정인물 한 사람을 넘어 80년대를 바르게 살고자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상식이 통하지 않던 당시 시대에 맞선 사람이 한 둘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80년대의 보편적인 감성을 담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흥미로운 건 ‘변호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들이 지금도 유효하다는 거다. 이 영화를 통해 큰 울림을 받는다면, 이 때문이 아닐까. 이처럼 ‘변호인’은 시대와 특정인물을 떠나 공통의 주제를 담고 있다. 영화의 모티브가 되는 부림사건에 대해 잘 알지 못하더라도 전혀 상관없다. 또 노 전 대통령의 이야기란 사실을 알고 극장문을 열었다 하더라도 극장문을 나올 땐 우리 모두의 이야기란 느낌을 안게 될 것이다.

‘변호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상식’이다. 순수한 독서모임을 불온서적이나 탐미하는 빨갱이 단체로 덮어씌우고, 온갖 협박과 고문으로 거짓 자백을 받아내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도무지 상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세상이다. 여하튼 ‘돈’ 버는 일에만 관심 있던, 주위에서 속물이라고 손가락질 받던 세무 변호사 송우석은 가족과 다름없던 국밥집 아들 진우가 용공조작사건에 휘말리는 것을 접한 뒤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과는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이미 결정된 판결로 향하는 공판에서 오로지 송우석만이 ‘상식’적인 목소리를 낸다. 영화를 보면서 송우석을 지지하게 되고, 가슴 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오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그가 노 전 대통령을 모델로 해서가 아니다. 돈 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송우석이 말하는 상식은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공통된 것이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건 2013년, 오늘도 매한가지란 점이 씁쓸하기까지 하다.

송강호, 오달수, 임시완, 곽도원 등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는 영화의 감정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왜 송강호를 최고 배우라 하는지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다. 능청스런 생활 연기로 웃음을 만들기도 하고, 뜨거운 가슴으로 눈물을 짓게 한다. 또 송강호 스스로 “그분을 묘사하려고 하지 않았고, 냉정하게 연기하려고 했다”고 했지만 노무현의 색채를 어느 정도 담고 있기도 하다. 특히 인상적인 건 송강호와 곽도원의 법정 격돌이다. ‘국가의 의미’를 놓고 격돌하는 송강호와 곽도원의 법정 공판 장면은 빨려 들어갈 정도다. 무시무시한 힘의 격돌이다. 격렬한 액션 장면이 아님에도 그 어떤 액션 시퀀스보다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차동영 경감을 연기한 곽도원의 악랄함, 굉장히 인상적이다. 제국의 아이들 멤버인 임시완도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했다. 피멍으로 가득한 모습에 소녀 팬들은 속상할지 모르겠으나 혹독한 고문으로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를 무리 없이 소화했다.

소재가 무겁다고 해서 영화마저 진지할 거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물론 후반부 법정 공판 장면은 당연히 무거울 수밖에 없다. 이를 제외한다면 유쾌한 웃음이 가득하다. 코믹한 상황을 연신 엮어가는 송강호와 오달수의 모습을 보고 웃지 않을 관객이 과연 있을까 싶다. 송우석의 변화와 성장에 맞게 감정의 흐름도 원활하게 흘러간다. 웃음에서 울분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자연스러울 뿐만 아니라 관객들의 감정도 놓치지 않고 잘 이끌고 간다.

글. 황성운 jabongdo@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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