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르 다크월드
토르 다크월드
‘어벤져스’에서 토르(크리스 헴스워스)를 보며 품었던 의문 하나. ‘아니, 토르는 지구로 돌아왔는데 왜 제인(나탈리 포트만)을 만나러 가지 않는 거지?’ 제인 역시 같은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2년 만에 토르와 재회한 제인이 묻는다. “당신이 뉴욕에서 악당과 싸우는 걸 TV로 봤어요. 왜 나를 보러 오지 않은 거죠?” 제인에 대한 미안함을 보상하려는 듯, ‘토르: 다크 월드’(이하 ‘토르2’)에서 토르는 제인을 향해 전력투구한다. 부제를 붙이다면 ‘제인 구출작전!’ 쯤 될까. 사연은 이렇다. 제인이 악마의 무기 에테르를 우연히 얻게 되면서 위기에 처하자 토르는 아스가르드 왕국으로 그녀를 데려온다. 이로 인해 왕국은 위기에 처하고, 토르는 사랑하는 여인과 왕국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여심을 흔드는 건 (토르의)이두박근이 아니라, (로키의)흔들리는 눈빛이라는 사실! 관람지수 7
토르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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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하자. 1편 ‘토르: 천둥의 신’은 ‘어벤져스’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에 가까웠다. 모든 상황이 ‘어벤져스’를 위해 복무했다. 마치 ‘어벤져스’를 위한 두 시간짜리 거대 광고 같았다. 그래서 ‘토르’는 실패한 프로젝트냐고? 설마. 마법은 영화가 끝나고 일어났다. 반전의 키는 ‘어벤져스’가 쥐고 있었다. ‘어벤져스’의 폭발적인 흥행은 토르의 주가 상승으로 이어졌다. ‘토르2’의 기대감을 높이는 파급효과도 낳았다. ‘어벤져스’를 위한 ‘토르1’의 희생(?)은 원금에 보너스까지 두둑이 얹어서 돌아왔다. 저 광활한 마블 유니버스를 하나로 응집시킨 마블의 사업수완은 실로 놀라웠다.

하지만 ‘토르’ 시리즈에게 ‘어벤져스’는 여전히 양날의 검이다. ‘어벤져스’라는 슈퍼히어로들의 챔피언스리그를 목격한 이후 팬들의 눈높이는 부쩍 높아졌다. 개별리그로 복귀해 각개 전투를 벌여야 하는 히어로들로서는 부담이 만만치 않다는 얘기다.(이는 아이언맨, 헐크, 캡틴 아메리카도 예외는 아니다.) 마침 비슷한 딜레마로 고심하던 ‘아이언맨 3’가 성공적인 복귀전을 치러내면서 ‘토르2’의 사령탑에 앉은 앨런 테일러의 스트레스는 늘었다.

위기돌파를 위해 앨런 테일러가 선택한 무기는, (의외로) ‘아이언맨’이 구사하는 캐릭터 유머다.(‘아이언맨’의 유머는 ‘어벤져스’의 전체적인 분위기에도 큰 영향을 미친바 있다.) 1편에도 유머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이번처럼 노골적이진 않았다. ‘토르2’는 작심한 듯, 가는 길목 길목에 유머를 흩뿌린다. 다행히 유머 타율이 높다. 실패할 때보다 먹힐 때가 더 많다. 토르가 지하철을 타는 장면, 망치를 옷걸이에 걸려고 하는 장면 등에서 객석이 하나 되어 웃었다.

대개의 슈퍼히어로들은 2,3편에 이르러 정체성에 대한 고민에 휩싸인다. 피터 파커, 울버린, 브루스 웨인, 심지어 자기 잘난 맛에 사는 토니 스타크 마저 ‘나는 누구인가’라는 화두 앞에서 고민하고 번민하고 배회했다. 토르가 지닌 개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태어날 때부터 ‘신(神)이라 불리운 사나이’는 정체성에 대한 존재론적 고뇌로부터 자유롭다. ‘토르2’는 이러한 자신만의 특징을 십분 활용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부각된 것이 바로 (비극을 예고하는) 러브 스토리다. 토르와 제인의 사랑은 그 자체로 애잔한 구석이 있다. 인간에게 주어진 삶의 유효기간은 길어야 100년 남짓. 5,000년의 수명을 지닌 토르에게 이 사랑은 시한부나 다름없다. (다음 문장에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엔딩 크레딧 이후 나오는 쿠키영상, 토르가 아스가르드 신전을 떠나 지구에서 살기로 결심하면서 ‘토르2’는 다음 편에 대한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 마치, 토르의 이야기는 지금부터라는 듯.

액션의 전체적인 완성도는 그리 크지 않다. 하지만 여러 시공간을 오가며 벌이는 토르와 말레키스의 최후 혈투는 ‘어벤져스’ 뉴욕 시가전 못지않게 박력 있게 묘사됐다. 3D 컨버팅의 ‘잘못된 예’를 보여줬던 전작과 달리 3D효과도 안정세를 찾은 모양새다. 악당 캐릭터 존재감에 대한 의심은 ‘어벤져스’의 수혜주인 로키(톰 히들스턴)를 활용함으로써 막아냈다. 여심을 흔드는 건 (토르의)이두박근이 아니라, (로키의)흔들리는 눈빛이라는 사실을 톰 히들스턴이 다시금 일깨운다.

그럼에도 전반적으로 너무 가볍고 쉽다는 인상은 있다. 본작은 토르만의 세계관을 드러내 보이는 것에는 성공하지만 ‘어벤져스’나 ‘아이언맨 3’와 비교하면 여전히 미약하다는 느낌이다. 극 초반 이야기 전개가 다소 따분하고 내러티브도 개연성이 떨어지며 캐릭터들이 덜컥거리기도 한다. 심오한 의미를 담은 희대의 걸작을 만들기보다 대중지향적인 오락영화를 만드는 것이 마블의 전략이기는 하지만, 토르만의 중심을 잡을만한 무게감 있는 한 방이 아쉽다. 물론 ‘어벤져스2’가 기다리고 있는 이 시점에서 ‘토르2’에 대한 완전한 평가는 아직 섣부르다. 마블 캐릭터 중에서 평판(인기)이 바닥이었던 토르는 불과 2년 만에 ‘마블’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구성원으로 성장했으니까. ‘어벤져스2’에 관심이 없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은 관객들에게 ‘토르2’는 필견(必見)의 영화다.

글. 정시우 siwoorai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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