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화장’ 제작보고회에 참석한 안성기, 임권택 감독, 김훈 작가.(왼쪽부터)
영화 ‘화장’ 제작보고회에 참석한 안성기, 임권택 감독, 김훈 작가.(왼쪽부터)
영화 ‘화장’ 제작보고회에 참석한 안성기, 임권택 감독, 김훈 작가.(왼쪽부터)

영화계 거장 임권택 감독과 문단계 거장 김훈 작가가 만났다. 국민배우 안성기와 ‘건축학개론’ 등을 제작한 명필름이 더해졌다. 겉으로 드러난 위용은 그 어떤 ‘블록버스터’ 보다 화려하고, 탄탄하다. 전 세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102번째 메가폰을 든 임권택 감독이 제28회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김훈 작가의 ‘화장’을 영화화한다. 현재 시나리오 막바지 작업 중이며, 주인공 오상무 역으로 안성기가 캐스팅됐다. 2014년에는 임권택 감독의 102번째 작품을 극장에서 볼 수 있을 전망이다.

제18회 부산국제영화제 한창인 4일 오전, 부산 신세계 백화점 문화홀에서 새로운 출발을 알린 ‘화장’을 만나볼 수 있었다. ‘화장’은 시체를 불에 살라 장사를 지낸다는 뜻과, 화장품을 바르거나 문질러 얼굴을 곱게 꾸민다는 이중적 의미를 지닌다. 서로 다른 의미를 통해 두 여자 사이에서 번민하는 한 중년 남자의 심리를 그린다.

여든을 바라보는 노장이지만 영화를 향한 임권택 감독의 눈빛은 여전했다. 크랭크인 전이지만 벌써부터 어떻게 촬영하고, 이야기를 만들어나갈지 신난 모습이다. 나이는 들었지만 영화를 대하는 마음은 여전히 ‘청년’이다. 이런 임 감독의 설렘에 안성기가 힘을 보탠다. 임권택 감독과 안성기는 ‘만다라’, ‘태백산맥’, ‘취화선’ 등 여섯 편을 함께 했다. 이번이 일곱 번째 만남이다. 호흡이 기대된다. 안성기, 개인에게도 큰 도전이다. 본인 스스로도 어려울 것이라고 엄살이다. 그러면서도 “잘 해봐야겠다는 욕심이 생긴다”고 흥분된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임권택 감독과 안성기의 기분 좋은 열정에 김훈 작가는 “불가사의한 업적을 남기신 두 분이기 때문에 저의 소설을 좋은 영화로 만들어 줄 거라 기대한다”고 믿음을 보냈다. 아래는 임권택 감독, 안성기, 김훈 작가와 함께 나눴던 말들이다.

Q. 먼저 영화 ‘화장’ 제작보고회를 하게 된 소감을 부탁드린다.
임권택 감독 : 평소 김훈 선생의 작품을 거의 다 읽었다. 그리고 ‘칼의 노래’를 영화화했으면 하는 생각을 오래 전에 했다가 여의치 않게 됐는데 이번에 ‘화장’ 연출을 맡게 됐다. 김훈 선생의 문장이 주는 엄청난 힘과 박진감 등을 영화로, 영상으로 담아낸다면 해볼만하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영화화에) 대들었는데 그 힘이나 박진감, 심리적 묘사 등을 표현한다는 게 어렵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잘만 담아낼 수 있다면 지금까지 해온 영화가 아닌 또 다른 영화가 될 수도 있겠다 싶다. 잘 못되면 욕을 바가지로 먹을 거고, 잘하면 칭찬도 받을 수도 있겠는데 어찌됐던 워낙 큰 과제다.
안성기 : 감독님하고 일곱 번째 작품을 하게 됐는데 늘 나에게 행복한 느낌을 주었다. 102번째 작품도 함께 하게 돼 기쁘다. 감독님이 마지막에 ‘못 만들면 덤터기 쓴다’고 했는데 덤터기 안 쓰도록 열심히 해볼 생각이다. 또 김훈 작가님의 작품을 한다는 것도 영광이다. ‘화장’은 이상문학상 대상 받았을 때 읽었는데 그때 영화화했으면 어렵겠지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이대도 비슷하니 주인공하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그게 현실화 되니까 가슴이 벅차기도 한다. 그동안 연기를 해 왔지만 잘해봐야 겠다는 욕심도 생긴다.
김훈 작가 : 불가사의한 업적을 남기신 두 분이기 때문에 좋은 영화로 만들어 줄 거라 기대한다. 드러나지 않는 게 더 많은 소설이다. 생로병사의 고통도 멀리서 어른거리면서 서서히 다가오는 풍경이다. 이런 것들을 감독님과 배우님이 어떻게 눈에 보이게끔, 삶의 전면으로 끌어내는 게 어려움이 될 거라 생각하고 있다.

영화 ‘화장’의 주연을 맡은 안성기(왼쪽)와 임권택 감독.
영화 ‘화장’의 주연을 맡은 안성기(왼쪽)와 임권택 감독.
영화 ‘화장’의 주연을 맡은 안성기(왼쪽)와 임권택 감독.

Q. 1~2편 영화 찍고 그만두는 감독들도 많다. 그래서 남다른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 102번째라는 숫자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다.
임권택 감독 : 영화라는 것은 살아온 세월동안 쌓인 체험 등이 누적돼 영상으로 드러나는 건데, 102번째 영화를 한다는 것은 나이만큼 알찬 영화를 찍어낼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다. 나이만큼 쌓인 삶의 누적이 나한테 말해주고 있는 것을 영상으로 옮기는 일이다. 젊었을 때의 순발력이나 패기는 미치지 못해도 사려 깊음 등을 담아낼 수 있는 영화를 만든다는 뜻이기도 하다.

Q. ‘서편제’, ‘천년학’, ‘달빛 길어올리기’ 등 주로 한국 문화를 다뤘다. 이번 영화에서도 한국 문화를 표현하고자 하는 게 있나? 아니면 어떤 변화를 주려고 하나.
임권택 감독 : 문화라는 것은 시대가 옛날로 가든, 현대로 가든 사람이 살아가면서 일궈진 것이다. 그래서 비단 판소리나 한지 등을 담아내지 않고, 우리가 살아가는 어떤 일상을 영화로 담아낸다고 해도 그것 역시 한국 사람의 생활이고, 한국적 문화다. 그러기 때문에 한국적 문화는 담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번 영화는 깊은 문화 뿌리를 바탕으로 해서 삶을 드러내는 영화가 아니고, 현대를 살면서 또 인간으로 살면서 어쩔 도리 없이 나오는 감정, 마음의 결을 찍어낸다고 할 수 있다. 아마도 기존에 해 왔던 영화와는 면모나 형식이 다를 수밖에 영화가 나올 거라 본다.

Q. 임권택 감독의 102번째 영화를 본인의 작품으로 한다고 했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나. 그리고 영화화하기 힘들다고 하는데 원작자로서 조언을 해준다면.
김훈 작가 : ‘칼의 노래’가 영화화되길 기대했다. 그게 영상화하기 쉬울 것 같았다. 그리고 ‘화장’은 어렵겠거니 생각했다. 두 거장의 경력이나 실력을 믿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오상무에 대해 말하고 싶은 건 오상무는 세속적인 일상성에 찌들어서 아주 타락한 인물이다. 그런데 회사에서는 그의 타락이 유능으로 인정받고 있다. 극단적인 양쪽을 해야 하니까 큰일 났구나 싶다. 그리고 오상무와 여자 후배의 관계가 전혀 진전이 안 된다. 연애미수에 그치는데 영화에서는 불쌍하게 그리지 말고, 로맨스가 이뤄지고 진전이 있었으면 좋겠다.(웃음)

임권택 감독
임권택 감독
Q. 영화감독으로서 어떤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고 싶나.

임권택 감독 : 임권택이란 영화감독은 영화 촬영이 다 끝났을 때 비로소 시나리오가 완성된다는 소리를 한다. 김훈 선생의 ‘화장’이란 미지의 세계에 들어가서 지금서부터 내 색깔을 드러내고, 찾아내려고 한다. 김훈 선생이 담아낸 깊은 작품 세계 안으로 나 자신도 철저하게 들어갈 거다. 지금 어떤 빛깔의 영화가 찍힐 것 같은가란 질문에는 대답할 길이 없다. 영화를 보고 나서야 내가 이런 것을 하려고 했구나 하는 것이 그려지지 않을까 한다.

Q. 배우로서 기존 연기와 어떤 다른 것을 하고 싶나.
안성기 : 감독님이 모르신다고 하니 내가 뭘 알겠습니다.(웃음) 김훈 작가가 말했듯 이 인물은 지금까지 해 왔던 어떤 인물과도 다른 인물 같다. 그리고 작품에서는 잔잔하지만 영화적으로는 얼마나 역동적이 될지 모르겠다. 영화가 다 끝나고 나서 ‘아 정말 좋았다’란 이야기를 듣고 싶은 작품이다.

Q. 임권택 감독의 102번째 작품 ‘화장’ 제작보고회를 축하하기 위해 김동호 부산영화제 명예 집행위원장이 찾았다.

김동호 부산영화제 명예 집행위원장 : 어디를 가나 항상 임권택 감독을 ‘절친’이라 하는데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해서 곤혹스럽습니다만. (웃음) 하여튼 ‘절친’이자 존경하는 임 감독이 102번째 영화를 만들게 돼 존경과 감사의 말을 드린다. 이 영화가 성공되리라고 확신하는 건 3~4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세계 영화제를 많이 돌아다녔지만 102번째 제작보고회를 한다는 건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기네스에 올라가도 오래전에 올랐어야 할 대사건이 아닌가 싶다. 데뷔한지 52년(임권택 감독), 58년(안성기) 된 원로 감독과 배우가 모아졌고, 문단의 거장인 김훈 작품을 영화로 만든다. 그런 점에서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또 지금까지 예술성과 대중성, 두 마리 토끼를 항상 가져온 한국의 명품 제작사인 명필름에서 제작하기 때문에 틀림없이 명 영화가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칸 영화제에 갈 거다. 내년 5월에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거머쥐고, 이 자리에 다시 와서 영화팬들에게 보고 하시길 기대한다.

부산=글. 황성운 jabongdo@tenasia.co.kr
부산=사진. 팽현준 pangpang@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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