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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 />영화 <아이언맨3> 스틸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마약 중독으로 재활원에 들락날락 거린, 그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당신 농담해?” 마블 스튜디오 임원들은 의심 가득한 눈빛으로 감독 존 파브로를 바라봤다. 존 파브로가 “설마요. 농담일리가”를 외쳤는지의 여부는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그가 아이언맨 캐스팅에 다우니를 끝까지 고집했다는 것 외에는. 그러거나 말거나 각종 전과기록이 있는 슈퍼히어로는 제작사로서는 부담이었다. 임원들은 아이언맨이 여심을 자극하는 꽃미남이길 원했다. 이미지 좋은 배우이길 바랬다. 영화계 간판스타이길 희망했다. 하지만 존 파브로의 생각은 달랐다.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돌아온 다우니는, 흥청망청 방탕한 삶을 전전하다가 개과천선하는 토니 스타크 그 자체였다. 톰 크루즈와 니콜라스 케이지가 토니 스타크 역에 군침을 삼켰지만, 감독은 오매불망 다우니만 바라봤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스크린 테스트 기회가 주어졌다.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까지 올랐던 다우니는 신인의 마음으로 카메라 앞에 섰다. 그제서야 마블 스튜디오는 마흔이 넘은 이 배우에게 ‘철갑슈트’를 허했다. 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캐스팅 중 하나로 꼽히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표 아이언맨’은 그렇게 당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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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 />영화<아이언맨3> 스틸

그로부터 5년. 마블 임원들이 다시 원탁에 둘러앉았다. 이번에도 다우니가 문제였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의 몸값이 문제였다. 1편 때만해도 조연 테렌스 하워드(제인스 로드)보다 몸값이 낮은 다우니였다. 하지만 시리즈의 인기와 함께 그의 몸값은 물가상승률 따위는 고려하지 않고 널뛰기했다. 물론 다우니가 <어벤져스> 창립에 기여한 개국공신임을 감안하면, 그의 몸 값 하나 올려 주는 건 일도 아니다, 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다. 다우니의 임금 인상이 하나의 선례를 만든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의 출연료를 올려주면 <어벤져스> 동료 히어로들이 너도나도 요금 인상을 요구할 게 자명하기 때문이다.(실제로 그런 분위기다.) “내가 아이언맨인가, 수트가 아이언맨인가!”를 고민했던 토니 스타크의 고민은 이제, 마블 스튜디오에게 넘어갔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아이언맨인가, 수트가 아이언맨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말이다. 물론, 팬들은 외친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없는 아이언맨은 아이언맨이 아니”라고. 불멸의 캐스팅이 남겨 놓은 딜레마 앞에 마블은 고민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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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스틸.

마블 스튜디오에 비하면, 월트디즈니 픽처스는 조금 더 유연하다. 디즈니는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의 조니 뎁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아낌없는 배팅을 해왔다. 시리즈를 통과할수록 조니 뎁의 출연료는 콩나물처럼 쭉쭉! 쭉쭉! 돌아오는 5편에서는, 네? 1,000억 원 이라굽쇼? 네네. 드립죠. 굽신군신. 조니 뎁의 잭 스패로우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아이언맨과 더불어 블록버스터 영화 사상 가장 반전에 가까운 캐스팅으로 거론될만하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조니 뎁’ 그리고 ‘토니 스타크와 잭 스패로우’ 사이에는 적지 않은 공통분모가 존재한다. 해적선에 승선하기까지 조니 뎁 역시 디즈니 간부들의 반대를 뚫어야 했다. 당시 조니 뎁은 흥행과는 거리가 먼 배우였다. 하물며 ‘조니 뎁이 나오는 영화는 인디영화’라는 인식도 있었다. 그런 배우에게 천문학적인 돈이 투여된 블록버스트 주연을 넙죽 맡긴다? 정말이지 그건, 술 취한 선원에게 항해키를 쥐어 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번에도 남다른 안목을 발휘한 건 감독이다.(이래서 감독이 중요하다.) 고어 버빈스키는 끝까지 조니 뎁을 고집했다. 그리고 그 믿음은 옳았다. 조니 뎁은 잭 스패로우에게 롤링스톤즈의 기타리스트 키스 리처드를 덧입혔다. ‘브아걸’ 가인 뺨치는 아이라인,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금니, 뒤뚱뒤뚱 걸음걸이, 아방가르드한 레이어드룩, 미운 짓을 해도 밉지 않은 요상한 매력. 아, 이런 선장도 존재할 수 있구나. 대체 불가능한 선장 캐릭터의 탄생이었다. 지금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의 성공을 얘기하는데, 조니 뎁을 빼놓을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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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 />영화 <007 스카이폴> 스틸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조니 뎁과 달리, 이미 인지도를 얻고 있는 캐릭터를 맡아 차별화에 성공한 이들도 있다. 당장 <007> 6대 제임스 본드 다니엘 크레이그가 떠오른다. 다니엘 크레이그는 선천적으로 제임스 본드에 어울리지 않은 DNA를 가진 남자다. 그래서였다. 그에게 더블오(00) 살인면허가 주어지자, <007> 게시판이 융단폭격을 맞은 건. ‘키가 작다!’(숀 코너리, 로저 무어, 피어스 브로스넌 등 역대 007들은 모두 185cm가 넘는다. 다니엘은 180cm) ‘금발이다!’(역대 007들은 갈색머리다.) ‘촌스럽다!’(아니, 이건 무슨 근거로?) 심지어 본드를 ‘bland’(건조한, 재미없는)로 바꿔서 악평을 해대는 언론들까지. 평생 먹을 욕을 한 번에 듣는다는 게, 아마 이런 것일 게다. 그러나 영화가 세상에 나오자, 대중은 다니엘 크레이그 표 007을 사랑하게 됐다. 그가 첫 번째 임무를 맡은 <카지노 로얄>부터 <퀀텀 오브 솔러스> <스카이폴>까지 시리즈는 승승가도를 달렸다. 다니엘 크레이그는 선배 007, 피어스 브로스넌이 만들어놓은 슈퍼히어로적 007 이미지를 부수고 본드 캐릭터에 리얼리티를 입혔다는 점에서도 높게 평가받는다. 조롱과 패러디의 대상으로 전락해가던 본드가 고독하면서도 강인한 남자의 상징으로 재평가 받기 시작한 것도 다니엘 크레이그 덕분이다. 그야말로, 007 비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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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 />영화 < 다크 나이트> 스틸

하지만 이 부분 최고는 누가 뭐래도 <다크 나이트>의 조커, 히스 레저가 아닐까. 사실, 불과 5년 전만해도 우리 기억속의 조커는 잭 니콜슨이었다. 잭 니콜슨이 아닌 조커는 상상할 수 없었다. 실제로 커티스 암스토롱, 로저 스톤버터 등 여러 배우가 조커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잭 니콜슨과 비교만 당하고 나가 떨어졌다. 잭 니콜슨은 요즘 하는 말로 ‘넘사벽’이었다. 히스 레저가 조커를 맡는다는 소식에 전 세계가 우려를 표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짠. <식스센스> 버금가는 반전이 일어났다. 히스 레저는 잭 니콜슨에게는 없는 개성을 조커에게 불어넣으며 매혹적인 캐릭터를 창출해낸다. 언론은 <다크 나이트>를 보고 나면, 크리스찬 베일이 아닌 히스 레저에게 마음을 빼앗길 거라고 보도했다. 가히 메시아다운 예견이었다. 대중은 배트맨을 보러 갔다가, 조커에 홀딱 반해 극장을 빠져나왔다. 검은 망토를 두르고 가래 끓는 소리를 열심히 우려낸 크리스찬 베일만 괜히 멋쩍게 됐다. 그리고 2008년 1월 22일에 일어난 비극. 히스레저는 자신의 아파트 침대 위에서 숨진 채로 발견된다. 약물과다복용이 사망의 원인이었다. 조커 연기에 대한 압박이 약물 투여로 이어졌다는 보도가 나왔다. 영화 속에서 조커는 배트맨에게 이런 말을 한 바 있다. “언젠가 다시 또 보게 될 거야. 넌 나를 죽일 수 없어.” 히스 레저는, 그리고 그가 연기한 조커는 죽음과 동시에 영원불멸이 됐다. 이전에 없었던, 이후에도 없을, 캐스팅이다.

흔히 성공한 캐스팅을 얘기할 때, ‘신의 한 수’라는 표현을 쓴다. 그리고 많은 배우들이 그 ‘한 수’를 얻기 위해 피 터지는 눈치작전을 벌인다. 하지만 블록버스터 영화의 주인공을 거머쥐거나, 슈퍼히어로를 연기하는 것이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은 절대 아니다. 이미 벤 애플렉(데어데블), 제니퍼 가너(엘렉트라), 에릭 바나(헐크), 니콜라스 케이지(고스트 라이더) 등이 실패의 후유증을 몸으로 증명해 보이지 않았던가. 토니 스타크를 톰 크루즈가 연기했어도 이토록 사랑스러운 캐릭터가 탄생할 수 있었을까. 조커가 히스레저라는 배우의 몸을 빌리지 않았더라도 관객의 심장에 비수처럼 꽂힐 수 있었을까, 라고 반문하게 되는 이유다.

글. 정시우 siwoorain@tenasia.co.kr
편집. 홍지유 jiyou@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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