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잡스’(왼쪽), ‘소셜 네트워크’ 포스터
영화 ‘잡스’(왼쪽), ‘소셜 네트워크’ 포스터
영화 ‘잡스’(왼쪽), ‘소셜 네트워크’ 포스터

2010년, 페이스북 창시자 마크 주커버그를 다룬 영화 ‘소셜 네트워크’가 만들어졌다. 사람들의 생활양식을 바꿔버린 젊은 IT천재 이야기는 그 자체로 충분히 흥미롭다. ‘소셜 네트워크’ 제작진은 여기에 날개를 달았다. 데이빗 핀처 감독의 속도감 있는 연출은 훌륭했고,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최우수 각색상을 받은 시나리오 작가 아론 소킨도 녹슬지 않은 필력을 보여줬다. 그로부터 3년 후, 애플 설립자 스티브 잡스를 다룬 영화 ‘잡스’가 8월 29일 개봉됐다. 굳이 그의 업적을 일일이 언급하진 않겠다. 사망 후 전 세계에 동시 출간된 자서전이 불티나게 팔렸던 기억만으로도 잡스의 인생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매력적인 재료를 사용한 영화 ‘잡스’의 맛은 싱겁다. 김치찌개야 맛있는 김치만 넣고 끓이면 만사 오케이라지만, 영화는 그렇지 않다.

영화 ‘잡스’ 스틸
영화 ‘잡스’ 스틸
영화 ‘잡스’ 스틸

능력 있는 조력자, 인터넷, 초기 자본금. 마크 주커버그에겐 있지만 스티브 잡스에겐 없었던 것이다. 잡스가 처음 애플을 설립하던 시기에는 인터넷은커녕 퍼스널 컴퓨터도 보급되지 않았다. 방향을 제시할 조력자는커녕 앞길을 막는 회사 경영진들과 맞서 싸워야 했다. 주커버그에게는 절친한 친구 에두아르도가 낸 초기 자본금이 있었지만, 잡스는 투자자를 유치하기 위해 전화통을 하루종일 붙들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잡스는 충분하지 못한 외적 환경에서도 애플을 설립해 성장시켰고, (영화에는 잠깐 언급될 뿐이지만)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의 성공을 이뤘다. 두 명을 그린 영화도 비슷하다. ‘소셜 네트워크’에는 있지만 ‘잡스’에는 없는 것들이 몇 가지 눈에 보인다. 차이가 있다면, 영화 ‘잡스’는 스티브 잡스와 달리 그 ‘부재’를 극복하지 못했다. 미흡한 부분이 확연히 드러난다.

페이스북은 개방적이지만 잡스가 처음 만든 개인용 컴퓨터 ‘애플’은 폐쇄적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페이스북과 달리, 잡스가 처음 만든 퍼스널 컴퓨터 애플은 철저히 개인적인 성격을 띤다. 그래서일까. ‘소셜 네트워크’ 속 마크 주커버그가 에두아르도, 숀 파커와 끊임없이 의견을 주고받았던 것과 달리 ‘잡스’에서는 그의 주변 인물이 보이지 않는다. 항상 혼자 생각하고 혼자 행동한다. 사실 잡스에게 독단적인 성향이 있긴 했지만, 그는 팀플레이가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생전에 한 인터뷰에서 했던 “위대한 일은 결코 혼자서 이룰 수 없다. 그것은 팀이 이루어 내는 것”이라는 말에서도 드러난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팀 대신 잡스만 보인다. 잡스가 ‘무엇을’ 강조하는지는 보이지만 ‘왜’ 그것을 강조하는지는 보이지 않는다. 영화에서 잡스는 ‘신’이고 그가 하는 말은 ‘진리’다. “잡스가 하는 일이라면 모두 옳은 것”이라는 생각까지 엿보인다. 그래서 애플의 경영자 존 스컬리(매튜 모딘)는 이유 없이 악인처럼 그려지고, 잡스의 철학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은 낙오자 내지는 무능력자처럼 느껴진다. 잡스는 신이 아니다. 그가 만든 것들은 그 외에도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이룩한 것이다. 관객들이 영화에서 보고 싶은 잡스는 ‘영웅’이 아니라 ‘인간’ 스티브 잡스 아닐까.

영화 ‘잡스’(왼쪽), ‘소셜 네트워크’ 스틸
영화 ‘잡스’(왼쪽), ‘소셜 네트워크’ 스틸
영화 ‘잡스’(왼쪽), ‘소셜 네트워크’ 스틸

축구 해설가들이 흔히 하는 말 중에 “시작하자마자 5분, 끝나기 전 5분이 중요하다”는 말이 있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시선을 사로잡을 만한 오프닝, 여운을 남기는 엔딩은 영화 전체에 대한 인상을 좌우한다. ‘소셜 네트워크’는 주커버그와 그의 여자친구 에리카의 말다툼에서 시작한다. 이 오프닝은 작은 것에 집착하고 지나치게 논리적인 주커버그의 성격을 드러내면서도, 그의 찌질함을 부각시켜 IT천재에 대한 환상을 깨부순다. 또한 엔딩에서 옛 여자친구 에리카의 답신을 기다리며 F5버튼(새로고침)을 눌러 보는 마크의 담담한 눈빛은, 많은 걸 이뤘지만 모든 걸 얻지는 못한 청년의 마음을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그에 비해 ‘잡스’의 오프닝과 엔딩은 임팩트가 없다. 검정색 터틀넥 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잡스의 모습은 이제 너무나 익숙하다. 전혀 새롭지 않은 이 장면을 마지막도 아니고 영화 시작부터 들이민 감독의 선택이 아쉽다. 영화는 애플에 복귀한 뒤 변화를 다짐하는 잡스를 비추며 끝나는데, 얘기를 하다 만 느낌을 준다.

글. 기명균 kikiki@tenasia.co.kr
사진제공. 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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